전문 군인 집안 출신 황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1세)는 347년에 '히스파니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大 테오도시우스)로 유능한 로마 군단의 지휘관으로 368년에 '브리타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이민족이 침략을 방어하기도 하였는데, 이때부터 테오도시우스 1세도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아버지 밑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인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군생활을 계속하여 374년에는 '모에시아'에서 로마군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다뉴브 강 너머의 '고트족'이나 '반달족' 등을 상대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아버지가 반역죄로 처형되었고, 이에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거기서 히스파니아 여자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378년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발렌스' 황제가 '하..
발렌티니아누스 1세 고대 로마가 여러 지역에 걸처 광대한 영토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대에는, 여러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로마 안으로 받아들인 포용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로마 안에 포함되어 로마와 하나가 되었으며, 현대에도 여러 국가들이 스스로 로마의 후예라고 자처하기도 한다. '플라비우스 발렌티니아누스'(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321년경 '판노니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그의 아버지가 젊었을때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발렌티니아누스 1세도 자연스럽게 로마 군단에서 군생활을 하였다. 당시는 이미 많은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영토 내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로마 군단에서 병사로 생활한지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로마의 적도 게르만족..
예정에 없던 황제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요비아누스'는 332년경에 '신기두눔'(현재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바로니아누스'인데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근위대장이었다고 한다. 요비아누스도 아버지를 따라 근위대에서 복무했으며,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황제의 근위대장이 되었다. 363년 율리아누스가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단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는데, 이때 요비아누스도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율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은 한때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까지 쳐들어갔으나 심한 저항에 부딫혔고, 이에 다시 로마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율리아누스가 적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적지에서 황제를 잃은 로마 군단은 이를 수습..
유폐된 어린 시절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는 331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복동생인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이고, 배다른 형제로 '콘스탄티우스 갈루스'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는 3명의 아들과 4명의 조카가 있었는데, 그는 제국을 5분할하여 각각 아들들과 두명의 조카가 다스리게 하여, 광대한 로마 제국의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337년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족 학살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으로 12세의 갈루스와 6세의 율리우스를 제외한 이들이 몰살 당했다. 이 사건의 배후로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3명의 아들 혹은, 그들중 한명인 '플라비우스 율리우스 콘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사망과 후계자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35년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자 충직한 신하였던 '플라비우스 달마티우스'의 두 아들에게 '카이사르'의 칭호를 내렸다. 그리고 각각 영토를 주어 관리하게 하였는데, 형인 '플라비우스 달마티우스 카이사르'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하여, '트라키아', '아카이아', 마케도니아의 관리를 맏겼고, 동생인 '플라비우스 한니발리아누스 카이사르'는 '폰토스'의 왕으로 하여, 흑해연안의 폰토스 일대를 관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337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사망하면서 세 아들에게 로마 제국이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첫째인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는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가 되어, '브리타니아'와 '갈리아', '히스파니아'와 북아프리카 ..
4명의 황제에 의한 통치 고대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뀐후에 즉위한 황제 중에는 근위대의 힘을 빌려 즉위하거나, 근위대에 의해 암살되어 폐위된 황제들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황제위를 둘러싸고 근위대나 로마 군단이 개입한 정도가 아닌, 근위대와 군단이 멋대로 황제를 세우고, 여러 황제들에 의한 내란과 폐단이 지속된 시기인 235년부터 284년까지를 '군인 황제 시대'라고 한다. 이 군인 황제 시대는 284년 군단 병사들의 추대로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즉위로부터 끝을 맺는 것으로 되어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로 즉위한 다음해인 285년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지휘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리우스'를 부제(카이사르)로 임명하여 제국의 통치를 돕게하였다. 그러나 ..
밀라노 칙령 '밀라노 칙령'은 313년 2월 3일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와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리키니아누스 리키니우스', 두명의 황제가 밀라노에서 가진 회담에서 발표된 것으로, 그 내용은 로마 제국에서의 기독교 신봉과 신봉자에 대한 관용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숭배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칙령은 이미 311년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에 의해 공포되었었지만, 그것이 단순히 제국내에서 신앙할 수 있는 자유에 불과 했다면,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 동안 핍박받고 있던 기독교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다. 이 칙령으로 인해 그 동안 몰수되었던 기독교인이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도록 하였고, 사실상 현직 황제의 비호를 받게 된 것이다..
로마 황제가 주최한 회의 325년 6월 19일에 '니케아'(현재의 터키 이즈니크)에서 당시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주최로 그의 니케아 별궁에서 기독교 주교들이 모여 공의회를 열었다. 본래 로마는 다신교를 숭배하는 국가로, 기존의 로마와 그리스 신들을 중심으로 이집트나 동방의 신들을 믿기도 했으며, 뛰어난 활약을 한 영웅이나 역대 황제들도 사후에 신으로 모셔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는 그 숭배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유일신 교리 때문에 사회적 갈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여러차례에 걸쳐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로마제국에서 박해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와 또 다른 로마 황제인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리키니아누스 리키니우스'에 의해 '밀라노 칙령..
황제의 자리를 요구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아우렐리우스'는 272년에 마케도니아 북쪽의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로마 군단의 지휘관이었던 흔히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이고, 어머니는 지역 여관 주인의 딸인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라고 한다. 293년에 콘스탄티우스가 정제(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서방의 부제(카이사르)로 임명되면서 헬레나와 이혼하고, 다른 정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리우스'의 딸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와 결혼하였다. 이때 발레리우스 아우렐리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휘하로 들어가 아나톨리아의 '니코메디아'에서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시기 발레리..
4명의 황제 중 한명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는 기원전 350년경 로마 변방 '세르디카' 근교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갈레리우스도 동시기 다른 많은 로마 황제들처럼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 태어난 미천한 신분으로 출세를 위해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하였다. 285년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군단의 지휘관이었던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리우스'를 부제(카이사르)로 임명하여, 로마 제국의 영토를 동과 서로 나누어 각각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범위한 영토를 가진 로마 제국은 국경의 여러지역에서 이민족의 위협을 받았고, 제국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는 등 혼란한 시기였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두 사람의 통치자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생..
군인 황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 '디오클레스' 혹은 '디오클레스 발레리우스'는 244년 '달마티아'(현재의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하층민 출신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로마 군단에 입대한 내용이나 군경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282년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는 '페르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는데, 디오클레스도 이 원정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정 도중 일어난 병사들의 폭동으로 프로부스는 암살되었고, 대신 '마르쿠스 누메리우스 카루스'가 황제로 추대되었다. 황제가 된 카루스는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원정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자신의 두 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를 후..
이인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리우스'는 로마의 속주였던 '판노니아'의 '다뉴브 강' 인근 지역에서 25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 가난한 하층민으로 태어난 그는 출세를 위해 일찍부터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군생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282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황제의 '페르시아' 원정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프로부스는 군단 병사들의 폭동으로 인해 암살되었고, 원정은 계속되었으나 다음 황제인 '마르쿠스 누메리우스 카루스'는 도중에 벼락을 맞고 사망하였다. 이에 후계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는 원정을 멈추고 로마로 돌아가기로 하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