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출신의 황제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는 '리키니우스 가문' 출신으로 오랜 세월동안 원로원 의석을 세습해온 로마 귀족의 한명이다. 리키니우스 가문은 로마 공화정 후기의 '삼두정치'로 유명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를 배출한 가문으로, 로마의 오래되고 유력한 소수의 귀족 가문 중 하나인데, 발레리아누스는 로마가 제정으로 변한 이후에, 특히 군인 황제 시절에는 드믄 로마 귀족 출신의 황제이다. 발레리아누스는 195년경 태어났는데, 그도 다른 군인 황제 시대에 역사의 전면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들처럼 경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는 로마의 오랜 귀족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로마 귀족 자제들이 받는 교육을 받고, 공직 경험을 차례차례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베루스 왕조의 몰락과 군인 황제 시대 235년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당하고, 군단의 병사들에 의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새 황제로 추대되었다. 로마 황제의 근위대인 '프라이토리아니'나 로마 군단의 병사들에 의해 황제가 추대되는 것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긴 하였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235년부터 284년까지의 시기를 '군인 황제 시대'라고 한다. 약 50년에 걸친 이 시기에는 무려 26명에 달하는 황제가 등장하였고, 로마 제국은 외적의 침략과 내전, 역병 등의 상당한 혼란에 휩싸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3세기의 위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인 황제 시기의 첫 황제인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로마 제국의 변방인 '트라키아' 지역의..
가짜 로마인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174년경에 태어났는데 로마의 변방인 '트라키아'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둘다 로마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도 로마 속주민 출신이 된다.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트라키아에서도 변방지역에서 양치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 뿐만 아니라 트라키아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시골 촌놈으로 반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좋은 교육을 받았을리가 없고, 그리스어는 커녕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조차 서툴렀기 때문에, 그가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로마 군단의 보조병으로 입대하여 군 경력을 쌓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신 다른 것을 타고 났는데,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으며 힘이 ..
황제 즉위와 선정 '마르쿠스 율리우스 게시우스 바시아누스 알렉시아누스'는 '엘라가발루스' 황제와 사촌으로, 엘라가발루스의 어머니 '율리아 소아이미아스'의 여동생인 '율리아 마마이아'의 아들로, 208년 로마의 시리아 속주에서 출생하였다. 219년 엘라가발루스가 할머니인 '율리아 마이사'의 계략으로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 황제를 축출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같이 로마로 입성한 것 같다. 그러나 엘라가발루스가 그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와 이따른 기행과 실정으로 로마 시민과 원로원, 나아가서 지지기반이었던 로마 군단병들의 인기까지 잃으며, 정권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율리아 마이사는 바시아누스 알렉시아누스를 엘라가발루스의 양자로 들이게하여, 새로운 후계자에 쏠린 관심을 이용하여 권력을 계속 유지하..
가짜 안토니누스 '바리우스 아비투스 바시아누스'는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아내인, 황후 '율리아 돔나'의 여동생 '율리아 마이사'의 장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의 아들로, '카라칼라' 황제의 외가쪽 친척에 해당한다. 아비투스 바시아누스의 아버지 '섹스투스 바리우스 마르켈루스'는 원로원 의원이었는데,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 총독으로 있던 중 병사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에메사'(현제의 시리아 홈스)로 돌아와서, 제사장이었던 어머니쪽 가계의 지위에 따라 태양신을 섬기는 대사제로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215년 황제인 카라칼라가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을때, 전 황후이자 황제의 어머니인 율리아 돔나도 동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217년 로마와 파르티아가 전쟁 중이었던 시기에 카라칼..
황제가 된 근위대장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는 165년 로마의 북아프리카 지역 속주에 있던 항구도시 '카이사레아'(현재의 셰르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류층이 평민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어린시절 변호사 수업을 받아 변호사로 일하다가,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근위대장이었던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의 재산 관리인이 되었다고 한다. 황제의 자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마크리누스가 말석이지만 처음으로 황제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는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밑에서 일하면서 로마의 지도층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윽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행정관료에 임명되어 출세를 시작하였다. 이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후계자인 차기 황제 '카라..
정통성 없는 황제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바시아누스'는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들로 188년에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의 '루그두넨시스'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는 동생인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가 태어났고, 193년에 '다섯 황제의 해'가 시작되자, 아버지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황제를 참칭한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5년 자신의 황제자리에 걸림돌이자,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던 '가이우스 페르켄니우스 니게르'를 물리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자신들의 황제 자리에 대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스스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양자로 입적했다고 하며, 아들인 바시아누스의 이름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로 개명하게 하였다.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황제의 자리를 공고히..
세베루스 왕조의 시작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로마의 북아프리카 속주인 '트리폴리타니아' 출신으로, 상당히 부유하였지만 로마의 정치계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집안 출신이다. 146년 태어난 그는 줄곧 북아프리카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속주의 유력자 가문 태생이었기 때문에, 속주에서도 상류층의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18세가 되자 로마로 향했는데,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시절 집정관을 지낸 친척들의 후원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공직 생활은 평범했는데, 회계감사관과 호민관을 거쳐 법무관을 지내면서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그는 '갈리아 루그두넨시스'와 '시칠리아' 등에서 총독을 역임하다가, 191년에 '판노니아'의 총독으로 취임하였다. ..
부유한 집안의 자제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는 133년 이탈리아 북부의 '메디올라눔'(현재의 밀라노) 출신으로, 밀라노의 지역 유지로 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지냈던 것 같다. 그는 다음 황제가 되는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같은 세베루스 가문 출신으로, 15세 무렵에 로마로 와서 생활하였는데, 그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친모인 '도미티아 루킬라'의 집에서 잠시 생활한 적이 있어, 후에 이러한 인연으로 출세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재무관이나 법무관 등의 공직 경험을 거쳐, 172년 경에는 제국의 주요 거점이었던 '게르마니아' 주둔 군단에서 지휘관을 역임하였으며, 175년에는 집정관으로 취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전임자인 '푸블리우..
다섯 황제의 해의 첫번째 황제 일반적으로 고대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평민이나, 하물며 노예가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물론 이러한 점은 현대사회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는 해방노예의 자식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간 매우 드믄 예 중에 하나이다. 페르티낙스는 이탈리아의 북서부 도시인 '알바폼페이아'(현재의 알바)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서, 거의 30세가 다되도록 가정교사로 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늦은 나이었지만 출세하기 위해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반 병사부터 시작하였지만, 부모의 옛 주인이었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차츰 진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런 도움 뿐만 아니라 그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적자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는 로마 제국이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아들로,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현직에 있을때인 161년에 출생하였기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황태자로서 로마 황궁에서 생활하며, 그에따른 대우를 받으면서 자랐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는 14명이나 되는 자식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어릴때 사망하여, 콤모두스는 외아들로서 명실상부 황제의 후계자로서 자랐다. 콤모두스가 황제로 취임한 후에 있었던 폭정들 때문에, 여러 안좋은 소문들이 많이 있으나, 기록에 이하면 그는 큰 키에 체격이 좋고 완력이 강했으나, 성격은 착하고 유순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혈통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는 하겠으나, 그는 15대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아내 아우구스타 '안니아 아우렐리아 갈레리아 루킬라'는 로마 제국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황비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 미노르'와의 사이에서 14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많은 자식들이 어렸을때 사망하여, 최종적으로 4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만이 살아남아 성장하였는데, 루킬라도 어렸을때 언니와 쌍둥이 오빠가 죽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녀가 되었다. 이후 그녀의 동생으로 외아들이 된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가 후에 성장하여 17대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녀가 태어났을때는 아버지인 아우렐리우스는 아직 황제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파우스티나의 아버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시기로, 사실상 아우렐리우스가 다음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