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25대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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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가짜 로마인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174년경에 태어났는데 로마의 변방인 '트라키아'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둘다 로마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도 로마 속주민 출신이 된다.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트라키아에서도 변방지역에서 양치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 뿐만 아니라 트라키아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시골 촌놈으로 반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좋은 교육을 받았을리가 없고, 그리스어는 커녕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조차 서툴렀기 때문에, 그가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로마 군단의 보조병으로 입대하여 군 경력을 쌓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신 다른 것을 타고 났는데,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으며 힘이 쎄서, 말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겼다던가, 맨손으로 마차 한대를 끌고다녔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부대로 시찰을 왔을때, 호기롭게 나서서 로마의 정규 군단병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게 요청을 하였고, 군단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병사들과 겨루어 우승하였다고 한다. 이런 타고난 신체능력이 출중한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마음에 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자신의 직속 경호원을 삼았다고 한다. 뛰어난 물리적 능력 덕분에 전방 군단에서 백인대장을 하며 지냈지만, '카라칼라' 황제 때에도 그 이상 별다른 출세를 하지는 못하였다. 로마 군단의 지휘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적능력의 부족이 한 원인이 되었을 것 같은데, 또한 그의 출신으로 인한 차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후에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 황제 통치시기, 혹은 '엘라가발루스' 통치 시기에 군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설에 의하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카라칼라를 암살한 마크리누스 밑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렸다고 하기도 하고, 엘라가발루스가 뛰어난 신체를 가진 막시미누스 트락스를 황궁으로 불러, 그의 체력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 앞에서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은퇴했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황제에 취임하고 나서 다시 로마 군단으로 복귀 했다고 한다. 그는 로마의 '게르만족' 최전선에 해당하는 '레누스'(현제의 라인강) 방어선에서 신병교육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육체적 능력과 오래 군생활에서 오는 연륜으로 로마 군단의 일반 병사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일부 역사가에 의하면 신병으로 구성된 군단의 대대장이었다고도 한다. 235년 게르만족과의 전쟁 중에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가 게르만족과 평화협상을 하려는 것에 반발한 병사들이, 60세의 그를 황제로 추대하면서 로마인이 아니고, 귀족도 아닌 일개 병사 출신이며, 원로원은 커녕 제대로 된 공직을 겪은 적도 없는 순수한 군인 출신의 황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막시미누스 트락스 본인이 직접 했는지, 혹은 병사들이 암살을 시행하고나서 그를 황제로 추대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사실상 전장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명확히 알 수 없다. 로마의 원로원은 새 황제의 출신이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로마 군단의 힘을 등에 엎은 막시미누스 트락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황제로 선포하였다. 그는 그 출신 때문에 가짜 로마인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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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황제의 해

막시미누스 트락스 본인도 그러한 차별이나 차별적 시전에 대해 많이 느껴왔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는 별로 발전이 없는 사람이었다. 60대에 와서도 부족한 라틴어 실력은 여전했고, 정치나 행정, 법률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더해 차별에 대한 피해의식도 상당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황제로 집권하는 동안 로마는 커녕 이탈리아 반도에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계속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군단을 지휘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들려오는 원로원의 행동에 대해 꼬투리를 잡으며 비난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원로원 의원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동들 때문에 실제로 암살 모의도 몇번 있었던 것 같은데,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그런 시도에 대해 법을 무시하고 즉결처분하였으며, 가담정도에 관계없이 모조리 처형하는 등의 잔인한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에 인기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게르만족과의 싸움에서는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 황제인 그에 대해 원로원에서도 상당히 유화책을 펼쳤다. 황제로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사망한 그의 아내를 신격화 해준다던가, 아들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에게 황족의 칭호를 내려 정통성을 인정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라틴어도 제대로 모르는 천박하고 난폭한 황제가 야만족과의 계속 된 싸움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있는 상황이 유지되면서, 국고가 탕진되었고 세금부담으로 인해 각지에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결국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집권한지 3년이 지난 238년 아프리카 속주에서 본격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현지의 농장주들이 높은 세금에 반발하여 세금징수관들을 살해하고, 아프리카 속주의 총독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셈프로니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여 '고르디아누스 1세'가 되었다. 고르디아누스 1세는 자신의 아들을 '고르디아누스 2세'로 공동 황제로 선포하고, 로마 시민들을 선동하고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하려고 하였다. 원로원은 이에 대해 고르디아누스 부자에 대한 황제 취임을 승인하고, 막시미누스 트락스를 로마의 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 반란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고르디아누스 부자는 막시미누스 트락스를 보다 먼저, 평소에 자신과 갈등을 벌였던 '누미디아'의 총독인 '카펠리아누스'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결국 카펠리아누스는 반란 진압의 명목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로마 군단을 이끌고 '카르타고'로 쳐들어갔으며, 고르디아누스 부자가 이 전투에서 목숨을 일으면서, 반란이 끝나게 되었다. 한편 게르마니아 전선에 있던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반란과 원로원에서 로마의 적으로 선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예 군단을 소집해 로마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로원에 날아든 소식은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사망소식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로원은 한때 침체되었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몰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타계책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유능한 원로원 의원인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데미쿠스 카엘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피우스'를 황제로 선포하였다. 그런데 이번엔 로마 안에 있던 고르디아누스의 지지자들이 방해하였다. 고르디아누스의 지지자들을 원로원이 마음대로 황제를 선포한 것에 대해 따지면서, 고르디아누스 가문의 사람을 황제로 세우라고 협박하였다. 이에 두 황제는 다시 고르디아누스 1세의 외손자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피우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하여 '고르디아누스 3세'가 되었다. 238년은 이렇게 한해 동안 6명의 황제가 탄생하여 '여섯 황제의 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허무한 최후

로마 시민들을 진정시킨 두 황제는 역할을 나누어 막시미누스 트락스를 막기로 하였다. 푸피에누스는 군사적 경험이 많은 원로원 의원들을 이끌고 군대를 모아 이탈리아 북부로 진군했고, 발비누스는 로마에 남아서 행정을 담당하면서, 로마의 치안과 보급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푸피에누스는 북부의 항구도시인 '아퀼레이아' 근처에 진을 세우고 방어를 준비하였다. 곧 도착한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맹공을 퍼부었지만 4주가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로마의 적으로 선포된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이끄는 군대는 로마의 다른 도시에서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였는데, 전쟁이 길어지나 보급이 바닥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적으로 취급하는 로마 시민들의 모습을 본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군단의 병사들의 인기가 떨어지자 막시미누스 트락스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병사들은 막시미누스 트락스와 아들인 베루스 막시무스를 살해해 버렸고, 그의 통치는 이렇게 허무하게 3년만에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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