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최고의 영웅들의 피를 이어받은 여성 '율리아 아그리피나'는 부계와 모계를 모두 통해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은 카이사르 가의 직계 황족이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혈육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大율리아)이고, 아버지인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옥타비아'의 외손자가 된다. 그녀는 부계와 모계를 통해 로마의 명문 귀족인 '율리우스 가문'과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인 '율리아 안토니아'(小안토니아)를 통해 '안토니우스 가문'의 피도 이어받았다. 이러한 가계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로마 최고의 영웅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의 혈통에, 아버지는 로..
로마의 명문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당주이자 영웅의 동생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본명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로 역대 로마 황제중 최초로 '카이사르'를 가문의 성씨가 아니라 황제를 뜻하는 명사로 사용하였다. 본래 이름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였는데 이후 성장하여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 바꾸었다. 그의 이름에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데, 먼저 '삼니움 전쟁' 당시 '아피아 가도'를 건설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나,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하여 로마시민들에게 '로마의 검'이라고 불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등으로 유명한 로마의 명문 귀족인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당주이다. 로마 제국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도 원래..
평민 출신의 집정관 로마는 기본적으로 귀족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였지만, 공화정시기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법'이나 '호르텐시우스법' 등 일련의 개혁이 진행되면서 점차 평민들의 정치참여도가 높아졌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는 '라티움' 지방의 소도시인 '투스쿨룸' 출신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공직과는 좀 먼 위치에 있는 듯하였다. 카토는 스스로 농업론을 저술할 정도로 농업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로마의 명문 귀족인 '발레리우스 가문'의 후원을 받아 '쿠르수스 호노룸'이라고 하는 소위 로마의 출세 코스를 밟으면서 로마 정계에 뛰어들었다. 쿠르수스 호노룸은 재무관, 조영관, 법무관, 집정관, 감찰관의 직위를 순서대로 거치면서 공직경험을 쌓는 것으로 로마 원로원에서는 이를 명예로운..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혈통의 여인 고대 로마는 초기 왕정시절부터 공화정에 이르기까지 폭군 할만한 인물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데,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집정관을 복수로 두고, 또한 공직자들을 임기제로 운영하였기 때문에 권력의 개인화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원로원이나 민회 등에서 끊임없이 경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가 제국으로 바뀌면서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고, '네로'나 '칼리굴라' 같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인물들이 눈에 띄게 된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부터 5대 황제인 '네로'까지의 5명의 황제는 '율리우스' 가문이나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라고 불리는데,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혈족의 ..
제2차 포에니 전쟁의 발발 '시칠리아' 섬에서 시작된 작은 분쟁이 당시 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한 대국인 '카르타고'와 막 이탈리아 반도를 석권한 떠오르는 강자였던 로마의 대결로 번진 '제1차 포에니 전쟁'으로부터 22년이 지나, 기원전 219년 로마와 카르타고는 다시 한번 누가 진짜 강자인지 겨루게 되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카르타고의 명장인 '한니발 바르카'가 전쟁의 시발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동안 사실상 로마와 한니발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카르타고는 본국인 북아프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히스파니아'(지금의 이베리아 반도) 지역에서도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한니발 바르카를 위시로 한 바르카 가문이 히스파..
로마의 명문 파비우스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대대로 원로원 의원이나 집정관을 역임했던 귀족가문인 파비우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그다지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명문가의 자제로서 여러 공직의 단계를 거쳐,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서 집정관에까지 선출되었다.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단초가 되는 '사군툼' 함락을 계기로 하는 로마의 '카르타고'에 대한 선전포고 때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217년에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 북부로 쳐들어왔고, 이어진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로마 군단이 패배하면서 로마는 본격적인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로마는 파..
명문가 코르넬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로마 역사상 가장 많은 집정관을 배출한 명문인 코르넬리우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후에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승리자로 북아프리카에 있던 카르타고와 누미디아를 석권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존경을 담아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를 재패한 자)라고 불렀다. 고대 로마 시절에는 성명의 가짓수가 많지 않고, 같은 이름의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데, 스키피오 가문만 하더라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3가지 이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도 있어서 인지 남들과 다른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칭호들이 붙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버지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로마 공화정의 마르켈루스 고대 로마를 유지하던 구성원 중에는 몇몇 유력한 귀족 가문이 있었다. 그중에는 '이탈리아의 방패'라고 불린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속한 파비우스 가문, 한니발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낳았던 스키피오 가문, '삼니움 전쟁'중 '아피아 가도'를 건설하여 전쟁에 공헌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있는 클라우디우스 가문 등이 있는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그중에 클라우디우스 가문이었다. 클라우디우스 가문은 고대 로마 초창기부터 내려온 전통 있는 명문 귀족으로 로마 제국에서도 여러 황제를 배출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다.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인물들은 귀족적이고 고집이 세며, 강인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로마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난 남자 '한니발 바르카'는 로마와 '카르타고'사이에 있었던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카르타고의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이다. 전쟁 막바지에 참전한 하밀카르는 전쟁 수행 의지가 떨어지는 본국의 지원을 받으며 막강한 로마 군단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지만, 카르타고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후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공격당하여, 본국에서 벗어나 '히스파니아'(현재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카르타고의 영향력을 넓히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하밀카르는 9살밖에 안된 아들 한니발을 신전에 데려가 카르타고의 신인 '타니트'에게 로마에 복수할 것을 맹세하게 시켰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로마에 전해 내려온다. 하밀카르는 히스파니아에..
로마의 영향력 확대와 삼니움 족과의 충돌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데는 거의 500년 가까이의 긴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로마 군단은 무작정 강한 군대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로마 군단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면서, 그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전술을 고안하고 받아들이며 발전하였다. 로마 공화국은 중부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같은 중부 이탈리아에 근거를 둔 '삼니움족'과 부딪히게 된다. 삼니움족은 원래 '아펜니노 산맥'을 근거지로 하여 지형이 험한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부족으로, 기원전 354년부터 이탈리아 북쪽의 '갈리아족'에 맞서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기원전 343년 삼니움족이 목초지를 찾아 '캄파니아' 지역으로 진출하며, 먼저 있던 ..
피로스 전쟁 피로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인으로 '에페이로스'의 왕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친척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피로스 전쟁'은 기원전 280년부터 약 5년간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시칠리아 섬에 걸쳐 피로스 왕이 벌인 전투의 총칭이다. 당시 산악 민족인 '삼니움족'과 40년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마그나 그라이키아'라고 불렸던 이탈리아 반도 남쪽을 장악한 그리스 도시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로마는 이미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로마 근처의 라틴계 소도시들을 모두 점령하고, 삼니움족까지 흡수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장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군사 강국이었다. 이런 로마와 전쟁을 치르게 된 그리스계 도시였던 '타렌툼'은 바다 건너 에페이로..
페니키아인들의 국가 콰르트하다쉬트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경에 현재의 튀니지 부근에 세워진 페니키아의 도시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원래 동 지중해의 해안인 현재의 시리아와 레바논, 이스라엘 북부에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항해술이 뛰어나 동 지중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번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페니키아인들은 인류 최초로 알파벳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기원전 650년경에 페니키아로부터 독립해서, 북아프리카 일대와 이베리아 반도 일부, 그리고 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 섬의 일부를 영토로 하며 지중해 연안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이 부르는 말로, 원래 페니키아 말로는 '콰르트하다쉬트'이며 그리스인들은 '칼케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