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최악의 악녀 「발레리아 메살리나」
- 역사
- 2023. 1. 18.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혈통의 여인
고대 로마는 초기 왕정시절부터 공화정에 이르기까지 폭군 할만한 인물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데,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집정관을 복수로 두고, 또한 공직자들을 임기제로 운영하였기 때문에 권력의 개인화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원로원이나 민회 등에서 끊임없이 경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가 제국으로 바뀌면서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고, '네로'나 '칼리굴라' 같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인물들이 눈에 띄게 된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부터 5대 황제인 '네로'까지의 5명의 황제는 '율리우스' 가문이나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라고 불리는데,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혈족의 인간에게 권력을 세습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지만, 가문의 구성원들이 여러 이유로 사망하여 뜻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혈족인 '아그리피나'(大아그리피나)에게서 태어난 것이 3대 황제인 '칼리굴라'였지만, 그는 방만한 제국 경영을 일삼다가 제위 한 지 4년 만에 암살당했다. 그 이후에 황제가 된 것이 바로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였던 '리비아 드루실라'의 손자로 영웅 '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이며, 명문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당주이기도 한 '클라우디우스'이다. 이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는 35세 연하로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옥타비아'의 피를 잇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가 바로 '발레리아 메살리나'이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황후 메살리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능력이 우수 했는지 아니면, 어리석었는지에 대해서는 후대의 평가가 갈린다. 그중에서 그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이유 중에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고, 말을 더듬었으며 한쪽 발을 끌고 다니는 버릇 등, 그의 외견적 이유와 인재 등용에 소홀하였던 점 등을 들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아내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총 4번의 결혼을 하고 있는데, 다음 황제인 네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小아그리피나)도 클라우디우스의 아내였으며, 발레리아 메살리나는 그의 3번째 아내이다. 고대 로마도 다른 고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기록은 남성 중심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임에도, 그의 두 아내는 모두 로마의 악녀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도 더불어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마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자신과 결혼한 아내들에게 상당히 관대했던 것 같은데, 메살리나의 행동은 보통의 황후나 귀부인들이 파티를 즐기거나 사치를 즐기는 수준을 벗어난 것 같다. 이 부분은 그녀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으로 인해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과장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만나는 남자마다 관계를 가지며 바람을 피우기를 반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창부가 되어 창관에 들어가서 손님들 받아서, 많을 때는 하루 20명의 손님을 상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치 고대 중국의 '북제'의 '무성황후'인 '호태후'를 방불케 한다.
도를 넘는 행위들의 반복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브리타니아 정복을 기념하는 개선식을 로마에서 개최하였다. 로마의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지휘관과 병사들이, 로마 시민들에게 그들의 승리와 영광을 인정받고, 생존하여 귀환하였음을 보고하는 매우 신성한 의식에 하나였다. 개선식에는 오로지 전쟁에 실제로 종군한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었으며, 제국이 된 이후에는 황제만이 할 수 있는 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메살리나는 전쟁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채 개선식에 참가하여,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양 대놓고 환호받았다. 또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황후의 위치를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고, 죄 없는 여러 황족들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그들이 재산을 몰수하여 자신이 낭비하고 다녔다고 한다. 네로 황제의 황후의 어머니인 '포파이아 사비나'나, 갈리아 지역 출신 첫 집정관으로 두 번이나 집정관으로 재임한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등은 칼리굴라 암살이나, 현 황제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암살에 관한 음모에 관련되어 재판을 받고 사망하였는데, 이 사건에도 메살리나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메살리나의 최후
브레이크가 망가진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던 메살리나는 멈출 줄을 몰랐는데, 결국 그녀의 오만방자한 행태가 그녀의 최후를 불러오게 되었다. 48년 메살리아는 잘생긴 원로원 의원인 '가이우스 실리우스'와 불륜을 저질렀던 것 같은데,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공무를 위해 로마를 떠나 있는 틈에 정식으로 결혼식까지 올리게 된다. 이미 살아있는 황제와 결혼한 몸으로 중혼을 하려고 한 메살리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에 동조한 가이우스 실리우스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가이우스 실리우스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메살리나를 유혹해서 결혼했다는 설도 있는 것 같지만, 만약 그랬다면 먼저 암살을 성공하고 결혼을 진행하는게 이치에 맞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러한 소식들은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 항구'에 있던 클라우디우스에게 지체 없이 알려졌고, 이는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심약한 클라우디우스는 메살리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서도 집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메살리나에게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황제의 측근들은 메살리나가 발레이우스 아시아티쿠스에게서 빼앗은 '루쿨루스 별장'에 숨어있는 것을 알고, 그곳을 습격하여 메살리나 황후를 살해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28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후 황후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원로원의 만장일치로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의 의향과 그녀의 아들이자 황제의 후계자였던 '브리타니쿠스'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로 형식적인 처벌에 그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와 별개로 그녀에 대한 추모는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황족의 무덤에 들어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