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는 396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여러 속주에서 총독을 지냈으며 집정관에도 취임했을 정도의 상당한 유력자였다. 이러한 배경 앞에서 페트로니우스도 411년에 치안관을 맡았으며, 415년경에는 군사 호민관에 임명되었고, 이후로도 계속 공직을 역임하여 433년에는 집정관에 임명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 총독을 맡았고, 443년에는 두번째로 집정관에 취임하였으며, 445년에 귀족 칭호를 받으면서, 당시 서로마 제국의 실권을 쥐고 있던 서로마 군단 총사령관인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453년에 서로마 제국 황제인 '플라비우스 플라키디우스 발렌티니아누스'(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딸과 아에티우스의 아들이..
6세의 나이에 취임한 황제 '플라비우스 플라키디우스 발렌티니아누스'(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419년 서로마 제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로마 군단 총사령관인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우스 3세)이고, 어머니는 서로마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의 여동생인 '갈라 플라키디아'였다. 421년에 호노리우스는 콘스탄티우스 3세를 공동황제로 임명하여 서로마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때 동로마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2세)는 콘스탄티우스 3세의 황제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콘스탄티우스 3세는 동로마로의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우스 3세가 급사하였고, 호노리우스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낀 갈라 플라키디아는 423년에 자녀들을 ..
스틸리코의 빈자리를 체운 서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우스 3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내용은 거의 알려진바 없다. 콘스탄티우스 3세는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1세) 집권시절에 로마 군단에 입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테오도시우스 1세 사망 후 로마 제국이 동방과 서방으로 나뉘면서 서로마의 군단에 소속된 것 같다. 그는 서로마 황제인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휘하에서 군단 지휘관으로 활동한 것 같은데, '플라비우스 스틸리코'가 호노리우스의 후견인으로 서로마를 운영하는 동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그러나 스틸리코 사후 410년에 서고트족의 왕인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시가 약탈된 직후에 호노리우스의 측근으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갈리아' 지역을 차지한 '플라비우..
고대 로마 제국 52대 황제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는 384년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들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테오도시우스 1세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로 임명되었고 394년에는 단독 황제로 로마 전체를 통치 영역으로 두었지만, 호노리우스는 희대의 암군으로 불리울 정도로 능력이 모자란 것으로 유명하다. 395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하면서, 로마 제국의 영토를 동과 서로 나누어 통치하였는데, 형인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동방을 관리하였고, 동생인 호노리우스는 '메디오라눔'(현재의 밀라노)에서 서방을 맡아 통치하였다. 이시기의 로마시는 로마 제국의 명목상 수도에 불과하게 된지 오래되었고, 실질적인 수도는 ..
반달족 출신의 로마 군단 총사령관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는 359년 게르만족의 하나인 '반달족' 출신의 로마 군인과 로마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틸리코가 같은 시기의 로마인들에게 반야만족으로 멸시당했음에도 로마의 편에서 게르만족들과 싸운 것을 보면 로마인으로서 확고한 정체정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이며, 스틸리코의 아버지도 친로마 성향으로 반달족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스틸리코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으며, 아버지처럼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384년에 '페르시아'와 '아르메니아 왕국'의 분할에 관한 평화 교섭의 사절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이때 스틸리코는..
게르마니아의 사령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는 7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코르불로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모두 황가와 인연이 있었으며, 로마 제국에서 법무관까지 지낸 상당히 영향력 있는 원로원 가문 출신이다. 코르불로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칼리굴라'의 집권기로 39년에 두명의 집정관이 황제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두 집정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이때 공석을 체우기 위해 코르불로가 집정관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험한 시기에 집정관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코르불로는 갈리굴라에게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이즈음에 코르불로의 여동생이 칼리굴라와 연인 관계가 되었으며, 임신하였기 때문에 곧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그러나 41년에 칼리굴라와 함께 ..
황제의 동생 '티투스 플라비우스 도미티아누스'는 51년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베스파시아누스)는 이때 이미 황가에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이듬해에는 집정관에 취임할 정도 였기 때문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와 다르게 태어날때부터 로마의 상류층의 자녀로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덕에 도미티아누스는 아버지나 형과 다르게 로마 군단에 입대하지 않아서 군사적 경험을 쌓은 적이 없다. 대신 '네로' 황제가 죽고나서 벌어진 로마의 혼란기에 로마에 있었는데, 69년에 베스파시아누스와 '아울루스 비텔리우스'가 대적하였을때, 목숨을 위협받았기 때문에 밤새 유피테르 신전에 숨어있다가 변장을 하고 로마를 탈출했다고 ..
2인자 티투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는 39년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베스파시아누스)로 당시 로마에서 안찰관을 지내고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공직에 진출하여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공직 경험을 쌓고 있었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황가의 도움도 있어 빠르게 승진하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티투스도 어렸을때부터 황궁에서 황제의 후계자들과 함꼐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이때 후계자 중 한명이었던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게르마니쿠스'(브리타니쿠스)와 특별히 친분이 깊었는데, 브리타니쿠스가 '네로'에게 독살당할때 티투스도 같이 중독되었으며, 오랫동안 마루에 쓰러진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후 61년부터 베스파시아누스 휘하..
평범한 집안 출신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는 9년 이탈리아의 '레이타' 근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금 징수를 대행하는 일을 하였고, 그 일을 그만둔 후에는 고리대금업을 하였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가문은 귀족이 아닌 부유한 평민으로 세금 징수 일을 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못했으며, 그나마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집안이었다. 그러나 돈은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고, 그 재산을 바탕으로 상당히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것 같다. 베스파시아누스의 형인 '플라비우스 사비누스'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원로원 의원이 되었는데, 이런 형의 성공 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도 집안에서 압박을 받은 것 같다. 36년부터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복무하였고, 37년에는 회계감사관으로 공..
로마 제국 게르마니아 군단의 지휘관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는 15년 로마에서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베테리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십분 발휘하여 당대에 원로원에 편입된 신흥 귀족이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황제의 통치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황가와 조력자로서 가까이 지냈으며 이때 집정관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로 인해 비텔리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미소년들로 구성된 티베리우스의 소년 군단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카프레이아 별궁'에서 황가의 자식들과 함께 교육 받기도 하였다. 비텔리우스는 아버지로부터 아첨하는 재주를 물려받았다고 하는데, 그들 부자는 '네로' 황제까지 이어지는 역대 황제..
황가와 가까운 집안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는 32년에 에트루리아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살비우스 오토는 에트루리아계로 원래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집정관에 취임하였으며,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살비우스 오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둘 다 어렸을 적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황비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집에서 생활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황가의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살비우스 오토의 아버지도 이러한 지원을 계속 받은 것 같은데, 속주 총독이나 군단 지휘관 등을 요직을 역임하면서 역대 황제들에게 충성을 바쳤으며, 황제들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워서 귀족의 지위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살비우스 오토도 어렸을때부터 '네로'와 자주 교류하였고, 네로가 황제로 즉위한 이..
로마의 전통 귀족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기원전 3년에 태어났다. 갈바의 가문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 명문 귀족으로 상당히 부유한 집안 이었다고 한다. 그의 가문에는 집정관이나 독재관을 지낸 인물도 있었고, 원로원 의원을 지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또 갈바의 증조부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갈리아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코린토스'를 함락시킨 영웅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의 증손녀였고, 이러한 이유로 갈바는 본인이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갈바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일찍 사망하였는데, 아버지는 갈바이 가문보다 도 명문이었던 리비우스 가문의 '리비아 오켈리나'와 재혼하였고, 이때 갈바는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