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코 잭 '존 래컴'(John Rackham)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데, 그가 영국인이고 1682년 경에 태어났다는 정도만 추정할 수 있다. 그는 이름보다 '캘리코 잭'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데, 그것은 그가 '캘리코'(옥양목)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존은 바하마 일대에서 활동한 영국 해적 '찰스 베인'의 휘하에서 해적 활동을 한 것 같은데, 1718년 베인의 브리간틴 함선인 '레인저호'의 병참장교로 뉴프로비던스 섬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시기 영국의 왕 '조지 1세'가 해적들에게 사면을 제안하는 명령을 내렸는데, 베인과 그의 부하들은 이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었고, 결국 사면을 받아들여 해적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이내 다시 해적질을 시작하였고,..
사마팔달 '사마의'(司馬懿)는 중국의 후한말 삼국시대인 179년경에 태어났으며, 자는 '중달'(仲達)을 썼다. 사마의의 집안은 당대의 손꼽히는 명문가 중 하나로, 그 근거지는 하내군 온현으로 수도인 낙양에서 조금 거리가 있기는 하였지만, 할아버지인 '사마준'도 영천태수로 관직 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 지역 향리들과 일족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으며 지역 호족들의 리더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아버지인 사마방도 정직하고 공정한 관리로 평판이 자자했는데, 본인 스스로는 물론 자식들의 교육도 매우 엄격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사마의를 비롯한 8명의 형제들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고 '사마팔달'이라고 불렀으며, 그중에서도 사마의가 가장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사마방은 문관직인..
이름 모를 선장의 사생아 '메리 리드'(Mary Read)가 태어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1690년경에 런던에서 어느 선장의 사생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메리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 중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고 하며, 오빠인 '마크 리드'(Mark Read)가 어려서 사망하자, 친가의 경제적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메리가 대신 마크 행세를 하며 남자로 살아갔다고 한다. 메리와 그녀의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할머니를 속이는 데 성공하여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었던지 13살 무렵에 프랑스로 팔려나가 전함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다시 도망쳐서 영국 육군에 입대하였다고 한다. 또는 급사로 취직해 일하다가 선원이 되었고, 다시 영국군에 입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
풍류인 사안 '사안'(謝安)은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인 320년경에 '동진'의 회계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안석'(安石)을 썼다. 그의 가문은 명문인 양하 사씨 집안인데, 본래는 예주 진군에 살았지만 '영가의 난'이 일어나자 전란을 피해 강남으로 도망쳐 회계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사안은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여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성장하여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왕희지 등과 어울리며 청담을 논하기만 하였다고 한다. 사안도 왕희지처럼 명문가의 자제로서 태어날 때부터 부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취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이윽고 40세가 다돼서야 관직에 나아갔는데, 동생 '사만'이 조정에서 실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당시 동진의 ..
철없는 앤 '앤 보니'(Anne Bonny)는 1700년경에 아일랜드의 '코크'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어머니는 그의 하녀로 불륜관계에서 생겨난 아이였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괜찮은 생활을 한 것 같은데, 아버지는 그녀를 정식 자녀로 인정했으며, 아버지의 본처도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계속 함께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앤의 가족들은 곧 런던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앤에게 남장을 시키고 변호사 서기로 교육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본처에 의해 저지되었고, 이들은 다시 명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인 캐롤라이나 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캐롤라이나에서 아버지의 변호사 생활은 신통치 않았던 것 같은데, 대신 마을 외각에 저택과 농장을 마련하는 등 전업..
명문 낭야 왕씨 일족 '왕희지'(王羲之)는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될 즈음인 303년경에 '서진'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서주 낭야군 임기현을 근거로 하는 낭야 왕씨로 당대의 조정에서 큰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왕희지도 효자로 유명한 삼공을 지낸 '왕상'의 이복동생인 '왕람'의 증손자로 어렸을 때부터 매우 유복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윽고 서진이 멸망하고 이민족들이 화북지역을 장악하였을 때는 장강 이남으로 피난하였는데, 당시 강남에서 서진의 명맥을 이어가던 '동진'이 건국되는데 '왕도'나 '왕돈' 같은 낭야 왕씨들이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왕희지는 동진에서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왕희지는 동진에서 순조롭게 벼슬길에 올랐는데, 당시에는 '상품에 한문없고, ..
이민족들의 중원 유입 현대의 중국은 매우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원이라는 개념은 과거에는 훨씬 좁은 영역을 의미했으며, 그중에서도 중원의 중심 민족으로 다루어지는 '한족'의 경우는 황하 일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더 좁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나라와 주나라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남방의 이민족인 오나라와 월나라 등이 한족의 역사로 편입되었고,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한족화되어 역사적 구분이 희미해졌으며, 삼국시대 이후 서진이 멸망하는 시기에 다시 대대적으로 이민족들이 중원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때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흉노', '선비', '저', '갈', '강' 등의 다섯 이민족이 위세를 떨쳤기 때문에 이 시기를 '오호십육국시대'라고 부른다. 이들 ..
에게 해의 선원 '흐르즈 레이스'는 1478년경에 오스만 제국령인 에게 해의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본래 제노바의 '가틸루시오 왕조'의 소유였지만, 1462년 오스만 제국이 레스보스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슬람의 영토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야쿠프 아아'는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로 투르크계나 알바니아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레스보스 정복 전쟁에서 공을 세워 섬 내의 보노바 마을을 영지로 하사 받았고, 레스보스 섬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미틸리니'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후 야쿠프 아아는 에게 해를 바탕으로 해상 운송업 중심의 사업을 영위하는데, 흐르즈를 포함한 그의 아들들도 그와 함께 배를 타면서 선상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었고, 성장하여서는 선원 생활을 하며 ..
수나라의 멸망 '이세민'(李世民)은 598년경에 태어났는데, 당시는 중국 수나라시대로 한참 수나라가 중원 장악을 마무리해 가는 시기였다. 이세민은 당국공 '이연'의 둘째 아들인데, 그 가문은 '북주' 팔주국에 속하는 굉장한 명문가 출신으로, 수나라의 두 번째 황제인 '수양제'가 이연과는 이종사촌이 된다. 이러한 대단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세민도 어렸을 적부터 부유한 생활을 하며 충분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따로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어 확인할 수 없으며, 그가 남긴 말이나 이룩한 업적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학문적인 부분보다는 활동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16년에 이연이 태원유수로 임명되어 태원에 있는 진양궁을 관리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 수나라는 수양제의 폭정으로 인해 ..
북송의 멸망 '진회'(秦檜)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090년 북송 시절에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현령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1115년에 26세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했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같은 해에 만주에서는 금나라가 건국되었고, 이는 이후 송나라와 진회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진회는 출세를 거듭하며 승승장구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1126년 '정강의 변'으로 사실상 북송은 멸망하게 되었으며, 도군황제 '휘종'을 비롯하여 '흠종'과 신하들까지 모두 금나라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때 금나라는 장악한 중원의 화북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장방창'을 황제로 하여 괴뢰국인 '위초'를 세우게 하였는데,..
레스보스 섬의 형제들 '오루츠 레이스'는 1474년 경에 오스만 제국령인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 출신으로 1462년에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트 2세'가 레스보스를 점령하면서 이곳에 영지를 하사 받아 정착하였고, 현지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여 차남 오루츠를 포함한 네 명의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오루츠와 그의 형제들은 레스보스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미틸리니'에서 성장하였으며, 이후 아버지의 도자기 사업을 돕기 위해 선원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선원으로 일반적인 운송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하였지만, 기독교 세력과 대립하며 사략선을 운영하는 등 점차 해적화 되었다. 오루츠는 에게 해를 중심으로 선원 생활을 하면서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등을 ..
왕족의 후예에서 환관으로 고력사(高力士)는 690년경 중국의 당나라에서 태어났는데, 고주 양덕현 출신이다. 고력사의 본명은 '풍원일'로 본래 북연의 왕족의 후예라고 하며, 당나라에서도 대대로 벼슬을 하며 살았지만, 그의 아버지인 '풍군형'이 죄를 저질러 가산을 몰수당했다고 한다. 이때 고력사는 10살 남짓한 나이였는데, 그는 노비가 되어 거세되었으며, 이내 환관으로 궁으로 보내졌다. 고력사는 환관이 되면서 개명하게 되었는데, 그가 궁으로 들어갈 때 다른 환관과 함께 '금강역사'에서 이름을 따와 지어졌다고도 하고, 당시 황제였던 '측천무후'가 그렇게 지었다고도 한다. 어느 게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궁에서 환관 선배인 '고연복'의 양자가 되었는데, 그에게 고씨 성을 받았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