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운반선의 항해사 '바솔로뮤 로버츠'(Bartholomew Roberts)는 1682년 영국의 웨일스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다른 해적들처럼 그의 출신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13세 무렵인 1695년부터 선원으로서 바다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719년 로버츠는 노예 운반선의 2등 항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탄 선박이 항해 도중 해적의 습격을 받아 서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인 '골드코스트'(가나)의 '아노마보' 인근에서 나포되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로버츠는 해적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당시 그의 선박을 습격했던 해적들의 선장이었던 '하웰 데이비스'가 로버츠의 항해사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해적으로 전직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로버츠는 그..
한쪽 눈을 잃은 맹하후 '하후돈'(夏侯惇)은 중국의 후한말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인데, 패국 초현 출신으로 자는 '원양'(元讓)을 썼다. 당시는 황건적이 난을 일으키는 등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는데, 하후돈은 이 군웅할거의 시기에 세력을 일으킨 '조조'의 친척으로, 조조가 거병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합류하였으며, '하후연', '조인', '조홍'과 함께 초기부터 조조의 휘하에서 활약한 사천왕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후돈은 190년 조조가 '반동탄 연합군'의 일원으로 분무장군으로 있을 때 사마로 종군하여 보좌하였으며, 병사가 부족해지자 양주에 가서 모병을 통해 병사들을 모아 오기도 하였고, 백마에 주둔하면서는 절충교위에 동군태수로 있었다고 한다. 하후돈은 어렸을 때부터 강직한 성품이었던 것 같은데, 14..
젠트리 계급 '올리버 크롬웰'은 1599년에 영국의 헌팅던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평민으로 '젠트리' 계급이었다고 한다. 젠트리는 귀족이 아닌 평민 중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있는 이들을 부르는 말인데, 통상적으로 중산층 정도로 평가되는 유산계급인 '요먼'과는 달리 사회 상류층으로 평가된다. 당시 영국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인 계급사회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회적 지위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요먼으로 취급받았으며, 어떤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젠트리와 귀족은 따로 구분되었다. 크롬웰의 집안은 본래 양조업자인 윌리엄 집안이었는데, 올리버의 고조부인 '모건 앱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의 총리였던 '토머스 크롬웰'의 누이인 '캐서린 크롬웰'과 결혼하면서 윌리엄과 ..
정체불명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는 해적 생활을 하다가 체포 중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그가 사망할 때 35세에서 40세 정도의 나이였던 것을 감안하여 168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티치의 선원으로서의 능력을 근거로 하여 당시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중요한 국제 항구였던 브리스틀 출신으로 추정하는 이가 많으며, 그가 읽고 쓰기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근거로 생각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도 있다. 또 같은 이유로 티치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 영국 소속의 사략선을 타고 전쟁에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위의 사항 중 그 어떤 내용도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전쟁이 끝난..
조조의 친척 '하후연'(夏侯淵)은 중국 후한말인 삼국시대에 위나라에서 활약한 인물인데, 예주 패국 초현 사람으로 자는 '묘재'(妙才)를 썼다. 그는 위나라의 군주인 '조조'와 친척관계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냈던 것 같은데, 어릴 적 조조가 저지른 죄를 대신 받으려고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조조와의 사이는 매우 돈독했던 것으로 보이며, 후에 조조가 거병하자 '조인', '조홍', '하후돈' 등과 함께 진영에 합류하여 활약하였고, 이들 네 명은 조조 휘하에서 위나라의 사천왕 정도로 취급받게 된다. 하후연은 거병 당시에는 별부사마에 기도위를 지냈으며, 이내 진류 태수와 영천 태수를 지내는 등 조조 진영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지만, 최전방에서 활약한 다른 이들과 다르게 주로 후..
아버지와 다른 아들 '찰스 1세'는 1600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603년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여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본래 찰스 1세는 차남으로 왕위와는 한발 멀리 있었는데, 1612년 형인 '헨리 프레더릭'이 18세의 나이에 병으로 요절하면서 후계자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한 번에 통치하는 첫 번째 왕이었으며, 그 안에서 '종교 개혁'으로 갈등을 빚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사이를 중재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의회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여 전제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제임스 1세가 왕이었음에도 의회와 권력을 두고 다투었다는 것..
신대륙의 발견과 스페인의 전성기 1492년 스페인은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레콩키스타'를 완수할 수 있었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항로를 개척하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스페인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데, 통일을 완수한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에 힘입어 엄청나게 국력이 성장할 수 있었고, 두 사건 모두 이슬람과의 분쟁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공고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압스부르고 왕조'(합스부르크 가문)가 들어서면서 명실 공히 유럽 최강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대신 기독교 국가의 선봉장이 되어 이슬람 세력의 맹주였던 오스만 제국과 최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스페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십자군 원정과 신성 동맹에 참여하였으며, 한때 '프레베자 해전'에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 '제임스 찰스 스튜어트'(James Charles Stuart)는 1566년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이고, 아버지는 '헨리 스튜어트'(단리 경)로 왕가의 방계인 단리의 스튜어트 가문 출신으로 두 사람은 사촌관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결혼은 사실 철저한 정략결혼으로 서로 사이도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메리는 본래 생후 6일 만에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이후 섭정인 어머니의 의향에 따라 6세 때부터 어머니의 친정인 프랑스에 보내져 키워졌다. 메리는 한때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와 혼인하여 프랑스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남편이 일찍 요절하고 어머니가 사망함에 따라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는데, 이때 ..
한번 배신당한 해적 선장 '윌리엄 키드'(William Kidd)는 1654년경에 영국 스코틀랜드의 '던디'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키드 본인이 주장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해적들과 마찬가지로 불분명한데, 성장하여서는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인 뉴욕으로 건너가 정착하였으며, 이 시기에 이미 해적선에서 선원으로 경험을 쌓고 있었다고 한다. 키드는 1689년까지 영국-프랑스 해적의 일원으로 프랑스 출신의 해적 선장 휘하에서 주로 공동의 적인 스페인 함선을 습격했지만, '9년 전쟁'이 발발한 것이 계기였는지 항해 중 다른 선원들과 공모하여 선상 반란을 일으켜 선장을 쫓아냈으며,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네비스'로 가서 정식으로 선장으로 임명되어 ..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혁명 전쟁 1789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있었던 '루이 16세'가 주최한 '삼부회'에서 귀족과 성직자들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평민 대표들을 소외시키자, 그들은 따로 모여 '국민의회'를 결성하였고, '테니스 코트 서약'을 맺어 구체제 타파를 위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갔다. 이에 구체제를 옹호하는 소위 '왕당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제3신분'에 속하는 평민들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군을 파리로 불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는 '푀양파'와 '지롱드파', '자코뱅파' 등 여러 파벌이 자신들의 신념과 이익을 위해 정치를 펼쳤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권을 잡게 된다. 이 시기..
사략 해적 '헨리 모건'(Henry Morgan)은 1635년경에 태어났는데, 그의 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영국의 웨일스 출신으로 부농의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모건이 서인도 제도로 건너간 경위도 불분명한데, 그가 바베이도스에서 7년여간 계약노동자로 살았다는 설도 있으며, 1658년경에 자메이카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자메이카를 점령한 것은 1655년인데, 모건이 건너간 것은 그 3년 후로 영국의 자메이카 초기 이민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전히 이유나 행적에 대해서는 불분명 부분이 많으나, 모건은 이후 유명한 해적 선장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밍스'의 휘하에서 해적으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영국의 자메이카 총리가 독자적으로 사략 허가장을 발부했기..
혼란스러운 왕실 '엘리자베스 튜더'(Elizabeth Tudor)는 1533년 영국의 그리니치에서 영국 왕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딸로 태어났다. 헨리 8세는 총 6명의 왕비를 두었는데, 당시 유럽은 기독교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동양과 달리 황제나 왕들도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결국 헨리 8세가 새로운 왕비를 얻기 위해서는 이혼을 통해 이전의 결혼을 무효화해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앤 불린은 엘리자베스가 3살 무렵인 1536년에 헨리 8세에 의해 간통죄로 고발되어 유폐되었다가 겨우 3주 만에 처형되었다. 앤 불린이 처형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사생아 취급 되었으며, 공주의 칭호와 왕위 계승권도 박탈당하는 등 불안정한 신분이 되었다. 이 시기 왕실에는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