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한 청년시절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폰 비스마르크'는 1815년에 프로이센 왕국 작센 주의 쇤하우젠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지역 지주에 해당하는 '융커' 귀족 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도 영지에서 농장을 운영하였다. 반면 비스마르크의 어머니는 베를린의 학자 집안 출신이었는데, 비스마르크와 형제들은 그녀의 교육 방침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기숙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언어에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의사소통 및 서신 교환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하며, 그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지리나 통계학에 능했으며, 역사에도 관심을 두었던 것 같지만 대체로 공부에 큰 관심이 없어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남북조시대 '후경'(侯景)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인물로 본래 흉노의 하나인 '갈족' 출신이지만, 이들은 선비족과 동화되어 함께 중원에 진출하였다고 한다. 후경은 남북조 중 북조에 해당하는 북위에서 국경을 지키는 일반 병사였는데, '육진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북위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같은 갈족 출신인 '이주영'을 도와 공을 세웠고, 이후 이를 인정받아 출세하여 정주자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북위의 황제였던 '효장제'는 자신보다 권세가 있는 이주영을 경계하였고, 530년에는 그를 암살하면서 북위는 큰 혼란이 시작되게 된다. 곧 이주영의 인척들인 이주씨들이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지만, 다시 이주영의 부하였던 '고환'이 득세하여 532년에 새 황제를 세웠는데, 그가 북위의 마지막 황제인..
영국의 왕족 '에드워드 8세'는 1894년 영국의 런던 외각에 있는 리치먼드 파크의 화이트 로지에서 '조지 5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영국의 통치자는 '빅토리아 여왕'이었는데, 여왕의 장남인 '에드워드 7세'가 그의 할아버지였고, 아버지 '조지 5세'가 왕세손으로, 그는 태어나자마자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3위의 위치에 있었다. 에드워드 8세의 본명은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윈저'인데, 에드워드라는 이름은 할아버지와 겹치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주로 마지막 이름인 데이비드로 불렸다고 한다. 에드워드 8세는 왕족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교육은 주로 가정교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1907년에는 오스본에 있는 왕립 해군 학교에 입학하였으며, 2년..
대단한 명문가 출신 '순욱'(荀彧)은 중국의 후한말 삼국시대인 163년경에 태어났는데, 예주 영천군 영흠현 출신으로 자는 '문약'(文若)을 썼다. 순욱이 집안은 대단한 명문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조부 '순숙'은 '순자'의 11세손이라고 하고, 당대에 신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며, 죽은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려 사당을 세웠다고도 한다. 아버지 '순곤'은 상서에 제남상을 지냈고, 숙부인 '순상'은 '동탁'이 정권을 잡았을 때 사공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순욱이 아직 4살이었을 때 당시 권세를 휘두르던 환관인 '당형'이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다고 하며, 후에 그의 주군이 되는 '조조'보다도 좋은 가문 출신이다. 순욱은 개인적으로도 뛰어났던 것 같은데, 그는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하다고 ..
위테나예모트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회의체를 갖고 있었는데, 대체로는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유력자들이 모이는 귀족정의 형태였지만, 일부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있는 민회의 형태를 띠기도 하였다. 이 회의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민주주의로 운영되던 그리스의 회의체들이며, 이웃나라인 공화정 로마의 원로원이나 민회들도 매우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제가 회의나 신라의 화백 회의 등이 존재했다. 영국에도 이러한 회의체가 있었는데, 고대 브리튼인들 사이에서도 부족 간의 협의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43년경부터 로마가 브리튼 섬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적어도 로마인이 다스리던 지역에서는 로마식의 회의체가 운영되었을 것이다. 이후 점차 ..
만천과해 '태사자'(太史慈)는 중국의 후한말 삼국시대인 166년경 태어났는데, 동래군 황현 출신으로 자는 '자의'(子義)를 썼다. 태사자는 키가 180Cm가 넘는 장신에 아름다운 수염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닦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거기에 무예도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궁술이 매우 뛰어났는데, 활쏘기에 적합한 원숭이 같이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백발백중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186년 태사자는 동래군의 주조사로 지냈는데, 한 번은 동래군과 상급 관청인 청주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빨리 낙양에 보고를 올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 군의 대응이 주보다 늦어 문제가 될 뻔하였는데, 태사자가 재빨리 낙양으로 달려가서 주에서 온 사자를 속여 공문을 훼손하였고, 이후 책임을..
노예 밀무역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는 1540년경 영국 남부의 타비스톡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본래 농부였으나 후에 개신교의 목사로 전직하였다고 한다. 드레이크는 12명의 형제들 중 장남으로 10세 무렵부터는 친척이자 작은 배의 선장이었던 '윌리엄 호킨스' 휘하에서 뱃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고 하는데, 호킨스 선장은 드레이크의 업무태도를 꽤 마음에 들어 한 것 같고, 가족이나 후계자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유산으로 배를 드레이크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이 배를 팔아버리고서는 여행에 나섰고, 이후 또 다른 친척인 '존 호킨스'의 휘하에 합류하여 노예 운송선에서 선원 생활을 계속하였다. 당시에 스페인은 신대륙의 노예무역에 대해 자신들과 포르투갈에만 허용하고 있..
비상한 재치 '가후'(賈詡)는 중국의 후한말인 147년경에 태어났는데, 양주 무위군 고창현 사람으로 자는 '문화'(文和)를 썼다. 가후는 전한 시대 뛰어난 학자였던 '가의'의 12대손이라고 하는데, 가의가 출세운이 없었던 데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기 때문에 집안의 도움을 얻지 못한 것 같고, 가후도 젊어서부터 재능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효렴으로 낭이 되었다가 병으로 다시 낙향하였다고 한다. 귀향하는 도중 가후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저족의 반란군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재치를 발휘하여 자신은 태위 '단경'의 외손자이니, 자신을 죽이거든 시체를 잘 보존했다가 큰돈을 받고 돌려주라고 하였다고 한다. 단경은 오랫동안 변방의 장수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인데, 이 말을 들은 저족들은 크게 겁을 먹었..
잉글랜드 연방의 붕괴와 왕정복고 '찰스 2세'는 1630년 영국 왕인 '찰스 1세'와 프랑스 출신의 왕비 '앙리에타 마리'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 마자 콘월과 로세이의 공작이 되었으며, 얼마 후 정식 후계자로 웨일스 왕자의 지위에 올랐는데, 아버지인 찰스 1세의 실정으로 1639년 '주교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지위가 점점 위태로워 졌다. 찰스 1세는 통치하면서 잉글랜드 의회와 반목을 이어갔는데, 마침내 스코틀랜드와도 불화를 일으켰고, 사태는 점점 커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사이에 혼란을 불러와 '삼왕국 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찰스 2세도 후계자로서 15세 무렵인 1645년부터 명목상 지휘관으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
바다의 약탈자 해적 '해적'(Pirate)이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바다 위에서 도적질을 하는 자들을 뜻하는 말로, 산에서는 '산적', 들에서는 '초적', 바다에서는 해적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력을 이용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 이들은 중범죄자로 취급되며, 그에 따라 체포될 경우에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이는 오늘날의 문명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질이 조금 나아진 만큼 처벌도 관대해졌지만, 그들이 여전히 범죄자로 구제되어야 할 대상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해적들의 역사는 인류가 배를 타기 시작한 역사와 비슷하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들은 작게는 어선이나 소형 무역선을 약탈하는 일부터, 크게는 군함을 공격하거나 해안도시를 습격하는 일까지 다양한 범죄를..
촉한과 원수진 하후패 '하후패'(夏侯霸)는 중국의 후한말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패국 초현 출신이며, 자는 '중권'(仲權)을 썼다. 위나라의 공신가문인 하후씨 일족이자, 맹장 '하후연'의 차남으로 어렸을 적부터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 자랐을 것으로 보인다. 하후패는 성장한 이후에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 군사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하후연이 활약한 관서 지역인 양주와 옹주 일대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촉한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219년에 있었던 '한중 공방전'에서 하후연과 동생인 하후영이 전사하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더 극심해졌을 것이다. 이후 220년에 편장군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는데, 하후연의 후계자로 상당..
17세기 영국의 문제들 현대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이를 줄여서 흔히 '연합왕국'(United Kingdom)으로 부르며 U.K.로 표기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그냥 그레이트 브리튼 섬 혹은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를 합친 것을 영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일랜드를 영국의 일부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4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7세기에는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이 따로 있었으며, 웨일스는 거의 잉글랜드 왕국에 흡수되어 있었다. 이 세 개의 왕국은 상당히 미묘한 관계에 있었는데, 아일랜드는 12세기 무렵부터 잉글랜드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1542년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