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의 유력자 '존 타일러'는 1790년 미국의 버지니아 주 찰스시티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타일러의 집안은 버지니아 초기 정착자 중 하나로, 그의 아버지도 대농장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존 타일러'는 '토마스 재퍼슨'의 대학 친구이자 룸메이트 였으며, 버지니아 하원 의원의 의장, 버지니아 주지사, 버지니아 동부 지역의 판사를 역임하였다. 타일러는 가정교사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고, 이후 '윌리엄&메리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졸업하고 나서는 아버지 밑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1809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버지니아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당시에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 주지사 였으며, 타일러는 사실상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여러 특혜를 누렸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
앵글로색슨 7왕국과 데인족 침략 '알프레드 대왕'은 '앨프레드'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848년경 잉글랜드 남부의 웨식스 왕국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앵글로색슨족으로, 이들은 고대 로마가 '브리튼섬'에 진출한 이후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로마가 이곳을 포기하고 물러나자 선주민들인 '브리튼인'을 외각지역으로 몰아내고 자신들이 차지하였다. 앵글로섹슨족은 노섬브리아, 머시아, 이스트앵글리아, 에식스, 웨식스, 켄트, 서식스의 7개의 왕국을 세웠는데, 이를 '앵글로색슨 7왕국'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섬 안에서 서로 패권을 얻기위해 경쟁하였다. 알프레드 대왕의 할아버지인 웨식스의 왕 '에그버트'는 당시 말로하면 '브레트왈다'(Bretwalda)로 7왕국의..
거란을 건국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872년경 '거란족'을 구성하고 있던 부족 중 하나인 '질랄부'의 부족장 '야율균덕식'의 손자로 태어났다. 당시 거란족은 8개의 큰 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그 중에 요련씨가 전체 부족을 통솔하고 있었다고 한다. 야율아보기가 아직 어렸을때 거란족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야율균덕식이 살해당하고, 아버지인 '야율살랄적'과 형제들이 모두 달아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야율아보기의 할머니가 그를 숨겨서 키우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돌아온 야율살랄적이 뒤를 이어 질랄부의 부족장이 되었고, 야율아보기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족장이 되었다. 또 그는 거란족 부족들 간에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우월'이라고 불리웠는데, 당시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의 실질..
버지니아의 정치가 집안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1773년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버지니아의 버클리에서 '벤저민 해리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630년대부터 버지니아에서 활동한 영국계의 저명한 가문이었고, 벤저민 해리슨은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버지니아 주 대표로 '대륙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명이기도 하다. 이후 버지니아 주지사와 하원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계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해리슨도 어린시절부터 진압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1787년에는 '햄프던-시드니 단과대학'(Hampden-Sydney College)에서 학업을 이어나갔고, 도중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당의 재상 '풍도'(馮道)는 당나라 말기인 882년경에 태어났는데, 영주 경성 사람으로 평범한 집안의 태생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 당나라에서는 '황소의 난'이 진압되기는 하였으나, 각지의 군벌들이 제 힘을 믿고 날뛰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었다. 결국 907년 당나라의 신하였던 '주전충'은 황제를 협박하여 선양을 받아내었고, '후량'을 건국하면서 당나라는 공식적으로 멸망하였다. 당나라의 멸망을 시작으로 지방의 군벌들도 더 이상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뛰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는 유수광이라는 인물도 있었다. 유수광은 본래 당나라의 노룡절도사 '유인공'의 아들로, 아버지의 첩을 탐하여 집안에서 쫒겨났다가, 무리를 이끌고 아버지를 공격하여 옥에 가두고, 후에 아버지를 구하러 온 형까지 죽인 극..
관롱집단 '양견'(楊堅)은 541년 '서위'의 실력자 중 한명인 '양충'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견의 집안은 본래 '선비족' 출신으로 '전연' 때부터 관직에 종사하였는데, '북위'가 건국되면서 6진이 설치되자, 그 중 '무천진'으로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이후 북위의 '효문제'의 한화 정책으로 한족의 성씨인 양씨성을 하사 받았고, 이때부터 흥농 양씨를 본관으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6진에 이주하여 북방 이민족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은 선비족의 호족들은 자부심이 매우 강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만 혼인을 시킬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효문제의 한화 정책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불만은 점차 쌓이다가 523년에 반란의 형태로 폭발하였는데, '육진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
네덜란드계 미국인 '마틴 밴 뷰런'은 1782년 미국 뉴욕 주의 킨더후크에 있는 네덜란드 공동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네덜란드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왔는데, 네덜란드 공동체에서 계속 네덜란드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밴 뷰런도 어린시절부터 네덜란드어를 사용하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네덜란드어가 뷰런의 모국어였다고 할 수 있다. 뷰런의 아버지는 킨더후크 지역에서 선술집과 여관을 운영하였고, 그외에도 흑인 노예를 사역하여 채소를 기르는 작은 농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밴 뷰런은 마을에 있는 학교를 다니며 영어와 기본 교육을 받았는데, 14세에는 지역의 저명한 변호사였던 '피터 실베스터'의 사무실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801년에는 '요하네스 페트루스 존 피터 반 네스'의 권유를 받아 ..
후한의 명문가 '주유'(周瑜)는 중국 후한말인 175년경에 태어났는데, 여강군 서현 사람으로, 자는 '공근'(公瑾)을 썼다. 주유는 태위 '주충'의 조카로, 집안 대대로 고위관료를 배출한 명문가의 자제였으며, 그 용모와 자태가 빼어나고 어려서부터 음악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184년경 '손견'이 '동탁'에 대항하여 거병하였을때, 아들인 '손책'과 가족들을 수춘으로 옮겨 살게 하였는데, 당시 10세였던 주유가 손책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만났으며, 이후 손책에게 자신이 사는 서현으로 이사할 것을 권유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유는 손책에게 큰 저택을 주어 살게 하였고, 주유의 인맥을 통해 손책도 많은 사대부들과 친교를 쌓을 수 있었으며, 특히 주유와의 사이가 각별하여 두사람의 사이 좋음을 '단금지교'로 표현하기도..
나라가 서고 몰락하기를 반복하는 난세 '조광윤'(趙匡胤)은 927년경 '후당'의 수도인 '낙양'의 협마영에서 '조홍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본래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마지막 왕의 후손으로, 탁군 고안현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조광윤의 증조할아버지때부터 여러 군벌 휘하에서 종군하며 명성을 쌓아, 아버지는 후당의 금군 장관이었고, '후진'과 '후한'에서도 어느정도 지위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후주'가 건국되고 나서도 계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광윤도 아버지 밑에서 어느정도 군사적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946년에 본격적으로 군생활을 시작하였는데 후한의 '추밀사'였던 '곽위'의 휘하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951년 곽위가 후주를 건국하자 개국공신으로 금군에서 근무하였으며, 곽위 사후..
천애고아 '앤드루 잭슨'은 1767년 미국의 아메리카 노스캐롤라이나 식민지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식민지 사이에 위치한 삼림지대에 있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 공동체가 있던 '왁스하우스'에서 태어났다. 잭슨의 집안은 본래 스코틀랜드 출신인데 아일랜드로 이민을 떠났는데,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아버지 '앤드루 잭슨'은 '엘리자베스 허친슨 잭슨'과 결혼한 후 두 아들 '휴 잭슨'과 '로버트 잭슨'을 낳았고, 1765년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 가족은 본래도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잭슨의 아버지가 잭슨이 태어나기 3주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삼형제는 모두 민병대로 활동하였는데, 13살의 잭슨도 전령병으로 활동하..
강동의 새끼 호랑이 '손책'(孫策)의 자는 '백부'(伯符)로 중국의 후한 말인 175년경 '손견'의 아들로 태어났다. 손견은 본래 양주 오군 부춘현 출신인데, 관리로서 여러 임지에서 일 했기 때문인지 일가족을 수춘에 머물게 하였고, 손책은 수춘에서 생활하면서 '주유'를 만나 친교를 쌓게 되었으며, 이후 주유를 따라 서현으로 옮겨가 인맥을 넓혔다고 한다. 이후 192년경 손견이 '유표'를 공격하다가 37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손책이 뒤를 이어 집안을 이끌게 되었다. 그러나 손견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자신의 용맹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벼슬을 하기도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당대에 한정된 것으로 물려줄 영지나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손책 자신도 능력을 증명할 만한 무용이 있는 것..
20세의 젊은 황제 '조욱'(趙頊)은 1048년 북송의 황족인 '조종실'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본래 이름은 '조중침'이다. 조종실은 북송 4대 황제인 '인종'의 사촌인 복왕 '조윤양'의 13번째 아들로, 황제의 자리와는 상당히 먼 위치에 있었지만, 인종이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어렸을적부터 양자가 되어 입궁하여 생활하였다. 이후 인종이 아들을 보면서 다시 궁 밖으로 나와 생활하였는데, 이 아들도 일찍 사망하였고, 1063년 인종이 결국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조종실이 양자로서 황제에 즉위하여 '영종'이 되었다. 이에따라 조욱도 신분이 상승하여, 1064년에는 '회양군왕', '영왕'에 봉해졌고, 1066년에는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어 이름을 '중침'에서 '욱'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이듬해인 1067년 영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