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붉은 왕 '윌리엄 2세'는 1060년경 노르망디의 공작인 정복왕 '윌리엄 1세'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1세는 노르망디의 공작으로 시작하여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왕이 되었지만,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양쪽 모두를 직접 통치하였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의 왕 '필리프 1세'는 윌리엄 1세의 장남 '로베르 커토즈'를 부추겨 아버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는데, 로베르는 아버지가 이미 잉글랜드의 왕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당장 노르망디의 공작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로베르의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윌리엄 1세는 자신의 사후에 노르망디의 공작위를 물려줄 것을 약속하여 아들을 회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차남인 '리처드'는 일찍 사망하였기 때문에, 1087년에 윌리엄 1세가 죽자, 윌리엄 2세..
오하아몽 '여몽'(呂蒙)은 178년경 태어났는데, 예주 여남군 부피현 사람으로 자는 '자명'(子明)을 썼다. 여몽은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매형인 '등당'에게 의지하였는데, 당시 등당은 '손책' 휘하에 있었다. 여몽이 열대여섯 살 무렵 등당은 '산월족'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는데, 여몽이 몰래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등당이 나중에 이를 발견하고 크게 꾸짖었는데, 그래서 멈추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여몽의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때 여몽은 어머니에게 가난하고 천하면 살기 어려우니 공을 세워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며,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등당의 부하는 어린애가 그래봐야 호랑이 먹이가 될 뿐이라고 무시했다고 하는데, 이후 여몽과 ..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 1세'는 1028년경 노르망디 공작인 악마공 '로베르 1세'와 평민인 '에를르바'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에를르바는 무두장이의 딸로 추정되는데, 아마 공작의 저택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 되었든 윌리엄 1세는 공작과 정식 혼인사이가 아닌 평민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생아왕'이라는 별명으로 계속 고통받기도 했다. 그러나 윌리엄 1세는 로베르 1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는데, 이는 달리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아들이 없었던 탓으로, 1035년에는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던 로베르 1세가 귀환 도중에 사망하면서, 8세의 나이로 공작위를 계승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윌리엄 1세는 로베르 1세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으며, 그의 부하들에게도 충성서약을..
대상인 여불위 '여불위'(呂不韋) 중국의 전국시대 후반에 태어난 인물로, 그 태생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사기'에 의하면 한나라 양적 출신이라고 하고, 전국책에는 위나라 복양 출신이라고 적혀있다.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천금의 부를 쌓아뒀다고 하는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행상으로 상당한 상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인 여불위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장사를 하였을 때,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왕족 '영이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기이한 물건이니 사둘만 하다'(奇貨可居)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영이인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진나라의 왕족이기는 하였으나, 아버지가 '소양왕'의 차남 '안국군'이었으며, 그나마도 서자로 형제들도 2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미 육군 장교 '재커리 테일러'는 1784년 미국 버지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지역 유력자로 매우 부유하였으며, 여러 흑인 노예들과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후 켄터키 주 루이빌로 이주하였다. 테일러의 아버지는 '미국 독립전쟁'에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테일러는 아버지의 농장일을 도우며 군대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당시 켄터키 주의 교육 시스템이 확립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초기에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학교를 다니기도 하였지만, 상당히 산발적인 형태로 교육을 받았다. 테일러는 인디언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켄터키 주의 민병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1808년에는 정식으로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중위로 임명되었다. 1810년에는 대위로 승진..
긴 망명 생활 '에드워드'는 1003년경 잉글랜드의 왕 '애설레드 2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노르망디의 '엠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끊임없는 데인족 바이킹의 침략을 받고 있었고, 데인족인 덴마크의 왕 '스벤 트베스케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기도 하였다. 애설레드 2세는 데인족의 침략에 대해 일부는 격퇴하고, 일부는 조공을 바치고 평화를 얻는 등 고군분투하였지만, 1013년에 스벤은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잉글랜드를 정복하였고,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도주하였다. 이듬해 스벤이 사망하자 애설레드 2세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왕위를 되찾아오기도 하였지만, 그 이듬해인 1015년에 스벤의 아들 '크누트 대왕'이 돌아와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고, ..
원나라시절 과거에 합격한 수재 '유기'(劉基)는 1311년 중국 원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절강성 온주 문성현 남전 출신으로, 자는 백온(伯溫)을 쓴다. 유기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는데, 14살 때는 한번 배운 춘추를 줄줄 외웠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글로 써 다시 책으로 만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1333년에는 23세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진사시에 합격해 관직을 받았는데, 그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당시 원나라에서 과거시험이 잘 열리지 않았을뿐더러, 그 와중에 남송 지역 출신자들이 상당히 차별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의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원수부도사'의 직책에 있을 때, 남방에서 날뛰는 해적 '방국진..
테네시 주의 유력 정치가'제임스 녹스 포크'는 1795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파인빌에서 태어났다. 포크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한 측에 속했는데, 아버지 '새뮤얼 포크'는 농장을 경영하여 측량사로 일하였다. 1803년 포크 집안은 함께 테네시 주의 '덕 리버 벨리'로 이주하였고, 곧 지역 유력자였던 '앤드루 잭슨'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포크는 어렸을 때는 허약한 체질로 고생하였지만, 성장하면서 건강해졌으며,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농장 경영과 측량에 대해 배웠으며, 이후 집 근처 교회의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교육받기 시작하여, 1816년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하였다. 1818년에는 대학을 졸업하여 내슈빌로 돌아왔고, 지역의 저명한 변호사인 '펠릭스 그런디' 밑에서 법률 공부..
잉글랜드와 덴마크, 노르웨이 '크누트 대왕'은 995년경 덴마크의 왕 '스벤 트베스캐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들은 '데인족'으로 불리는 바이킹으로 이 시기에는 윌란 반도를 중심으로 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며, 스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지역에 지배권을 행사하였고,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끊임없이 잉글랜드 지역으로 침략을 이어가고 있기도 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왕은 '애설레드 2세'였는데, 그는 계속되는 덴마크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조공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그로 인해 얻은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1002년에는 '성 브릭티우스 축일의 학살'이라고 불리는 데인족 정착민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1013년에 이르러서는 스벤은 아예 잉글랜드의 왕위를 탈취하기로 결심한 것 같..
중국 전국시대부터 이어져오는 명문가 '마원'(馬援)은 기원전 14년경 중국 한나라(전한) 말기에 태어났다. 마원의 집안은 본래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 '조서'의 후손인데, 그가 '마복군'에 봉해지고 나서 후손들이 마씨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대시대에는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는데, 당시에는 성이나 이름으로 쓰는 글자들이 많지 않기도 했기 때문으로, 서양의 로마 제국에서는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로 원정 간 이들 중에 코끼리와 싸워 이겼다는 의미로 성으로 '카이사르'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마씨 일족은 계속 번성했던 것 같은데, 한무제의 통치시기에 몰락하게 된다. 기원전 91년 '무고의 화'로 인해 태자의 일가가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후에 이것이 '강충'이라는 자의 음모였던 ..
알프레드 대왕의 손자 '애설스탠'은 894년경 잉글랜드의 웨식스 왕국에서 '에드워드'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잉글랜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고대 로마 시대로, 기원전 55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 중에 바다를 건너 침공하였고, 이후 기원전 43년경에 로마 제국이 본격적으로 잉글랜드로 진출하여, 선주민족인 '브리튼인'들을 복속시켰다. 그러나 웨식스 왕국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앵글로섹슨족의 나라였는데, 게르만족들은 로마가 잉글랜드를 지배할 때부터 조금씩 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왔으며, 로마가 잉글랜드에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후에 유입이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브리튼인들은 사실상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하여 서쪽의 웨일스 지역으로 밀려났고, 브리튼섬 중남부의 잉글랜드 지역에는 앵글로섹슨족..
번진과 절도사 오대십국시대는 '당나라' 멸망 이후부터 '송나라'가 다시 통일할 때까지 중원의 혼란기를 이르는 말로, 당나라의 기틀을 이은 다섯 나라인 '오대'와 중원의 변방지역에서 세력을 일으킨 열개의 나라 '십국'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이 혼란을 불러일으킨 이들이 바로 '절도사'로, 이들은 본래 당나라의 관료들이었다. 당나라는 태종 '이세민'의 통치시기에 그 영토가 크게 넓어졌는데, 이 때문에 기존의 제도로는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당나라에서는 따로 '번진'이라고 불리는 군사구역을 설치하였으며, 중앙에서 절도사를 파견하여 병사들의 모집과 관리를 하도록 군권을 맡겼고, 또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해당 구역의 조세징수권도 주었다. 이러한 제도는 초기에는 상당히 효과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