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의 시대 '장열'은 667년경 중국 당나라 시대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당나라 '고종'의 통치기로 이미 황후인 '측천무후'가 정치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683년에 고종이 사망하자 '중종'이 후계를 이었으나 곧 측천무후에 의해 폐위되었고, 다시 '예종'이 그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에 당나라 정권은 사실상 측천무후가 모두 장악하고 있었고, 일부 황족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진압당했다. 측천무후는 여성인 자신이 전면에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전통적인 기득권층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신분이나 재산이 큰 ..
체루스키 부족 출신의 게르만족 '아르미니우스'는 기원전 18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게르만족의 하나인 '체루스키 부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을 로마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기원전 11년경부터 있었던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大드루수스)의 '게르마니아' 원정 때 그의 동생 '플라부스'와 함께 인질로 로마로 보내졌다고 한다. 이후 두 형제는 로마에서 교육받으며 자랐는데, 젊었을 때부터 로마 군에 입대하여 보조병으로 근무하였고, 4년경에는 로마 보조병 부대의 지휘를 맡을 정도로 승진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판노니아' 지역에서 근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군 경력 덕분에 로마 시민권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소위 기사계급(에퀴테스)라고 불리..
월나라를 구한 범려 '범려'(范蠡)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자는 '소백'(少伯)을 썼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기원전 517년경에 초나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범려는 초나라 사람임에도 월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본래 초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문종'의 눈에 띄어 관직에 올랐다가, 도중에 오나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오나라에는 이미 '오자서'가 있어서 월나라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범려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월나라와 오나라의 전쟁 때인데, 기원전 496년에 초나라를 정벌한 오나라의 왕 '합려'는 오나라가 전쟁 중인 동안 오나라에 침입했던 월나라에 대한 정벌에 나섰다. 당시 월나라는 오나라에 비해..
후한삼군팔준 '유표'(劉表)는 중국의 후한말인 142년경 태어났는데, 연주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자는 '경승'(景升) 또는, '경숙'(景叔)을 썼다고 한다. 유표는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경제'의 사남 노공왕 '유여'의 아들 욱랑후 '유교'의 자손이며, 명망 높은 유학자로 젊었을 때부터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세가 꼭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았는데, 당시에는 사대부 출신의 관료들과 환관 세력이 권력을 가지고 대립하던 시기였고, 166년에 환관들에 의해 '당고의 화'(당고의 금)로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벼슬길이 끊기게 되었다. 당시에 이 사건에 연루되어 피해를 입은 이들을 가리켜 '후한삼군팔준'이라고 부르며 칭송하였는데, 유표는 그중에 '팔급'에 해당한다. 이후 유표는 '황건적의 난'이..
마틸다 황후 '마틸다'는 1102년경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딸로 태어났다. 1108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5세'가 헨리 1세에게 마틸다와 결혼을 요청하였는데, 당시 20대 중반인 하인리히 5세가 6세의 마틸다에게 청혼한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철저한 정략결혼으로 헨리 1세는 딸을 좋은 가문에 시집보내는 것과 동시에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든든한 동맹을 얻을 수 있었고, 하인리히 5세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지참금을 받아 이후 로마 원정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마틸다는 1110년 잉글랜드를 떠나 신성 로마 제국으로 향했으며, 리에주에서 만나 정식으로 약혼하였고, 마틸다는 8세의 나이로 독일의 왕비가 되었다. 이후 하인리히 5세는 로마 원정을 성..
초나라와 원수지다 '오자서'(伍子胥)의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오운'(伍員)이지만, 자를 '자서'로 써서 흔히 오자서로 불린다. 오자서의 가문은 대대로 초나라에서 벼슬을 한 명문으로 초의 장왕을 모신 명장 '오삼'이나, 초의 영왕을 보조한 '오거' 등이 유명하고, 아버지인 '오사'는 당시 태자인 '웅건'의 스승인 태부로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 초나라는 점차 쇠퇴하고 있었는데, 기원전 527년에 초나라를 다스리던 평왕은 신하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나라의 힘을 빌리기 위해 태자와 진나라의 공주를 혼인시키기로 하였고, 자신의 측근으로 오사 밑에 소부로 있던 '비무기'(비무극)이란 자를 진나라로 보냈다. 그런데 진나라로 간 비무기는 공주가 대단한 미인인 것을 알게되자, 평왕에게..
19세기 태생의 첫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1804년 미국의 뉴햄프셔 주의 힐스보로에서 태어났다. 피어스의 아버지 '벤자민 피어스'는 지역 유력자였는데, 그는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전쟁 이후에는 준장으로 지역 민병대의 지휘관으로 있었다. 또 저명한 민주공화당 정치인으로, 뉴햄프셔 주의 하원의원을 역임하고, 두 번이나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냈다. 피어스는 이러한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힐스보로에서 학업을 시작하였고, 12세에는 핸콕에 있는 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필립스 엑스터 학교로 옮겨 대학 입학을 준비하였다. 1820년에는 메인 주에 있는 '보딘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초기에는 공부보다 사회운동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성적이 나빴지만, 후에 다시 공부에 집중하여 1824년에는..
극적인 신분의 변화 '유순'(劉詢)은 본래 이름이 '유병이'로 기원전 91년경에 태어났는데, 전한 무제 '유철'의 아들 태자 '유거'의 손자이다. 그는 별일 없이 자랐다면 다음 황제의 손자로 본인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거나 못해도 왕으로 봉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가 태어난 해에 벌어진 '무고의 화'로 인해 완전히 다른 운명을 겪게 되었다. 무제의 측근이었던 '강충'은 유거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당시의 흉흉한 상황을 이용해서 유거를 무고하였고, 이 일이 커지면서 유거는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유거의 일가는 역모로 처벌되었고, 갓난아이였던 유순만이 감옥을 담당하던 관리인 '병길'의 조치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유순은 감옥에서 두 명의 여죄수의 젓동냥을 받으며 연명하였고, 이후 유거가 무죄였..
명장의 후예 '마초'(馬超)는 176년 중국의 '후한' 말기에 태어났는데, 자는 '맹기'(孟起)를 썼다. 마초의 집안은 후한의 개국공신인 '마원'의 후예로, 아버지 '마등'은 '관중십장'이라고 불리던 지역 유력자 중에 한 명이었다. 마등의 어머니는 '강족'으로 어렸을 때부터 이들과 어울리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후한 말 이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군에 투신하였고, 이후 그와 관련하여 벼슬을 받아 '정서장군'이 되었으며, 세력을 모아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 인근에는 '진서장군' '한수'가 있는데, 그도 관중십장 중 한 명으로, 마등과 비슷한 경위를 밟아 세력을 이루고 있었고, 마등과는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일종의 라이벌과 같은 관계였다. 마등과 한수는 한때 의형제를 맺기도 하였으나, 이내 다시 사이..
영지 없는 귀족 '헨리 1세'는 1068년경 잉글랜드의 왕이자, 노르망디의 공작인 '윌리엄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주로 잉글랜드에서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알려진 바 없다. 윌리엄 1세는 1087년에 사망하였는데, 노르망디의 공작위는 장남인 '로베르 커토즈'가 상속받았고, 잉글랜드의 왕위도 형 '윌리엄 2세'가 이어받았기 때문에, 헨리 1세에게는 남은 영지가 없었고, 대신 상당한 금액의 돈을 유산으로 상속받았다. 헨리 1세는 아버지로부터 영지를 상속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실망했을 것 같은데, 그는 대신 잉글랜드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가 윌리엄 2세에게 어머니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가난한 어린 시절 '밀러드 필모어'는 1800년 미국의 뉴욕 주 북부에 있는 핑거 레이크 지역에서 태어났다. 필모어 집안은 처음에는 코네티컷 주에 정착했던 것 같은데, 이후 그의 아버지대에 버몬트 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뉴욕 주로 옮겨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뉴욕 주로 이주하면서 구매한 토지의 소유권에 문제가 있어 상실하였고, 그 때문에 필모어의 유년기에 상당히 가난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필모어의 아버지는 소작농으로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때때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필모어는 이러한 가난 때문에 14세에 군에 입대하려고 하였던 것 같은데, 그의 아버지는 필모어를 설득하여, 뉴욕 주 스파르타에 있던 재단사 밑에서 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러..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싸움 '유철'(劉徹)은 기원전 156년경 한나라 황제인 '경제'의 10번째, 또는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는 정실부인인 박황후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지만, 6명의 후궁들과의 사이에서 1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한나라의 승계 원칙으로 장자인 '유영'이 후계자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유철이 황제가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후 박황후가 폐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는데, 유철의 어머니 '왕지'는 경제의 누나인 '관도공주'와 협력하기로 하였는데, 왕지는 유철과 관도공주의 딸인 '진아교'를 혼인시키기로 하였고, 관도공주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왕지를 새 황후로 책봉되게 하였다. 결국 왕지가 새 황후가 되면서, 유영은 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유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