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의 왕족 '전문'은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 정곽군 '전영'은 제나라 '선왕'의 이복동생이라고 한다. 전영은 높은 신분으로 설 땅을 영지로 하사 받아 그곳에서 살았는데, 전문은 그의 40여 명의 아들들 중 한 명에 불과하였으며, 전문의 어머니의 신분이 천했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 게다가 전문은 5월 5일에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이때 태어난 아이들은 문설주만큼 자라면 부모를 해 한다는 미신이 있어, 전영은 갓난아이인 전문을 없애버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의 어머니는 그를 버리지 않고 몰래 키웠으며, 전문이 장성한 이후에야 그를 전영에게 보여주었다. 전영은 전문을 보고 분노하여 왜 없애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전문은 차분하게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서 온 것이라면 ..
불비불명 '장왕'의 이름은 '미려'인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초나라의 '목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기원전 614년 목왕이 사망하였을때, 어린나이로 후계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당시 초나라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장왕이 즉위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홍수와 냉해로 인한 기근이 발생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졌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재상과 측근들이 궁궐을 비운 사이에 귀족인 '투극'이 왕자 '미섭'을 내세워 수도를 장악한 다음, 다른 신하들의 반발에 대비하기 위해 어린 장왕을 납치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상밀로 도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중에 다른 신하들에 의해 투극이 살해되고 장왕이 풀려나면서 결과적으로 반란은 진압될 수 있었지만, 이후 장왕은 모든 ..
투필종융 '반초'(班超)는 부풍 안릉 사람으로 자는 '중승'(仲升)을 쓰며, 중국 후한시대인 32년에 태어났다. 반초는 전한 '무제' 시절 월기교위를 지낸 반황의 증손자이며, 그의 아버지인 '반표'와 형 '반고'는 모두 후한의 역사가로 유명하다. 반표는 생전에 전한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인 '한서'의 저술을 시작하였는데, 54년에 반표가 사망하자 반고가 이를 이어받아 계속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반고가 한서를 저술하는 것을 보고 사사로이 역사를 저작한다며 고발하였고, 한때 반고는 체포되어 옥에 갇히기도 하였지만 반초가 상소를 올려 형을 구명하였다고 한다. 이는 악재였지만 전화위복으로 복이되어 돌아왔는데, 당시 후한의 황제였던 '명제'는 이를 통해 반고의 재능을 알아 볼 수 있었고, 그는 반고의 한서 저술 ..
예종의 후계자 '이융기'는 685년경 당나라 황제인 '예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690년 할머니인 '측천무후'가 새로 나라를 세우고 예종에게서 황제위를 빼앗았기 때문에, 예종은 다시 황태자로 강등되었다. 이융기는 어렸을 때부터 측천무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의 어머니가 측천무후를 저주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705년에 '신룡정변'이 일어나 당나라가 재건되어 예종의 형 '중종'이 다시 복위하였으며, 측천무후도 얼마 안 있어 사망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황궁에는 측천무후가 불러온 여권신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황후가 외척을 앞세워 정치에 개입하던 것에서 나아가, 측천무후처럼 스스로 여성황제가 되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중종의 아내인 '위황후'와 딸 ..
무정부시대를 지낸 잉글랜드의 후계자 '헨리 2세'는 1133년경 앙주의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과 잉글랜드의 왕이자 노르망디의 공작인 '헨리 1세'의 딸 '마틸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틸다는 헨리 1세의 공식 후계자였기 때문에, 순조롭게 간다면 헨리 2세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상속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헨리 2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1135년, 노르망디의 반란 진압 직후에 헨리 1세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상황이 어그러지게 되었다. 마틸다 부부는 헨리 1세 생전에 노르망디 공작위를 승계하기를 원하였지만 거절되었고, 이 때문에 노르망디의 반란군 편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헨리 1세의 공식 후계자인 마틸다가 여자였고, 어린 시절에 전남편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
진나라의 후계자 분쟁 '문공'의 이름은 '희중이'인데 중국 춘추시대 사람으로 '사기'에는 기원전 697년에 태어났다고 하고, '춘추좌씨전'에는 기원전 671년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는 진(晉)나라의 군주인 '헌공'과 적족의 '호희'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는데, 기골이 장대하여 아버지가 태자였을 때 이미 성인이나 다름없는 체격이었다고 하며, 젊었을 때부터 여러 인재들과 어울려 그들을 부하로 삼았다고 한다. 진나라는 주나라의 왕족이 세운 국가로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을 쓰는데, 본래 방계였던 문공의 할아버지인 '무공'이 직계를 모두 멸하고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무공의 뒤를 이은 헌공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먼저 제나라의 출신 정부인과의 사이에서 '희신생'을 낳았고, 다시 포로로 잡은 적..
한서를 저술한 반고 '반고'(班固)는 부풍 안릉 사람으로 자는 '맹견'(孟堅)을 쓰며, 중국 후한시대인 32년에 태어났다. 반고의 집안은 전통적인 학자 집안으로 반고는 전한 '무제' 시절에 월기교위를 지낸 반황의 증손자가 되며, 아버지 '반표'는 '사기'의 후전을 편찬하는 등 역사 저술활동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반표의 행적은 반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반고는 아버지로부터 독서와 학문의 기초를 배워 아홉 살에는 이미 문장에 능했다고 하는데, 16세가 되자 낙양의 태학에 들어가 여러 서적을 보며 학문을 익혔지만, 54년 반표가 사망하자 태학에서 나와 삼 년 상을 치렀다고 한다. 반고는 전한의 성립부터 신나라가 멸망하기까지를 다룬 역사서인 '한서'(전한서)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또한 반..
집금오와 음려화 '유수'는 기원전 5년경 중국의 전한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전한 황실의 종친으로 전한 '무제'의 이복형인 장사정왕 '유발'의 후손이다. 당시 유수의 아버지 '유흠'은 진류군 제양현의 현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풍족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3년에 유흠은 남돈현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고, 유수의 가족은 숙부 '유량'이 있는 채양현으로 옮겨 생활하였고, 이때부터 유수는 큰형인 '유연'을 아버지처럼 따르게 됐다고 한다. 유수는 형을 도와 농사를 부지런히 지으며 집안 살림을 도우며 생활하였고, 이즈음인 8년에 '왕망'이 선양의 형태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신나라를 세우면서 전한이 멸망하게 된다. 이 시기에 유수는 농사를 ..
당 태종의 후궁 '무조'(武照)는 중국 당나라 시절인 624년경에 이주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무사확'은 본래 유명한 목재상이었는데, 수나라의 '양제'가 시행한 대공사로 큰 이익을 남겨 거부가 되었고, 이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자 당국공 '이연' 휘하에 합류하여 반란에 가담하였다. 이후 이연이 당나라를 세우면서 개국공신으로 광록대부로 태원군공에 봉해졌다가, 다시 공부상서에 응국공이 되어 이주와 형주의 도독을 역임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별로 수완이 뛰어나지는 못했는지 635년에 그가 사망하고 나서 남겨진 부인과 딸들은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한 것 같다. 이듬해인 636년에 무조가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하였는데, 이때 생활이 나아지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였다고 한다. 무조는 궁에서 용모가 빼어나다..
제나라의 환공 '환공'의 이름은 '강소백'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13번째 군주인 '희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나라는 현재의 산둥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주나라의 '문왕'이 상나라(은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나라를 세우면서 공신인 '강상'(태공망)에게 내린 봉토이며, 환공은 강태공의 12세손이라고 한다. 기원전 697년경 희공이 사망하고 맏아들인 '양공'이 그 뒤를 이었는데, 환공을 보좌하고 있었던 '포숙아'는 양공이 무능하고 절제가 부족하니 난이 일어날 것이라며, 환공과 함께 거나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아직 주나라 왕실이 남아있었지만 그 권한이 쇠퇴해 군웅할거가 시작되던 시기로, 그중에서도 제나라는 상당히 강력한 국가였는데, 양공은 그 힘을 이용하여 주변 여..
블루아의 스티븐 '스티븐'은 1096년경 프랑스의 귀족인 블루아 백작 '에디엔 2'세'와 잉글랜드의 왕 '윌리엄 1세'의 딸 노르망디의 '아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티븐의 아버지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사망하였는데, 이때 그는 10세 정도의 나이 밖에 되지 않았었고, 그 이후부터 숙부인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스티븐은 헨리 1세의 휘하에서 신하의 역할을 계속했던 것 같으며, 1115년에는 모르탱 백작으로 임명되었으며, 헨리 1세의 지원을 받으며 착실하게 입지를 다져나갔다. 1120년 이른바 '백선 사건'(White Ship)이 일어나 헨리 1세의 후계자 '윌리엄 아델린'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본래는 스티븐도 이 배에 탈 예정이었지만 만취하여 상태가 좋지 않아 승선 직전에..
마씨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 '마대'(馬岱)는 마등의 조카이자 마초의 사촌동생으로, 그 태생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지만, 마초가 176년경에 출생했기 때문에 그보다 늦게 태어났을 것으로 생각되며, 마초와 같이 사례 우부풍 무릉현 사람으로 추정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대도 마등과 마초처럼 후한의 개국공신인 '마원'의 후예로 인데, 마등과 마초에 비해 별다른 업적이 없어서인지 사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대에 대한 내용은 크게 3가지 정도만 전해지는데, 먼저 222년에 마초가 사망하면서 마씨 일가가 조조에 의해 멸족되고 마대 밖에 남지 않았으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유비에게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마대는 마등이 조조의 권유를 받아들여 은퇴하고 업으로 향했을 때, 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