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춘추오패의 첫번째 패자, 제나라의 환공 「강소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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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제나라의 환공

'환공'의 이름은 '강소백'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13번째 군주인 '희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나라는 현재의 산둥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주나라의 '문왕'이 상나라(은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나라를 세우면서 공신인 '강상'(태공망)에게 내린 봉토이며, 환공은 강태공의 12세손이라고 한다. 기원전 697년경 희공이 사망하고 맏아들인 '양공'이 그 뒤를 이었는데, 환공을 보좌하고 있었던 '포숙아'는 양공이 무능하고 절제가 부족하니 난이 일어날 것이라며, 환공과 함께 거나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아직 주나라 왕실이 남아있었지만 그 권한이 쇠퇴해 군웅할거가 시작되던 시기로, 그중에서도 제나라는 상당히 강력한 국가였는데, 양공은 그 힘을 이용하여 주변 여러 나라를 공격하거나 군주의 일족을 살해하는 등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와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만을 품은 부하 '연칭'과 '관지보'가 반란을 일으켜 기원전 686년에 살해당했다. 이들은 희공과 가까웠던 '공손무지'를 새로 제나라의 군주로 삼았는데, 그도 얼마 안 가 사망하였고, 이에 제나라의 명망 있는 가문들에서 환공을 새 군주로 삼기 위해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때 환공의 둘째 형인 '강규'는 '관이오'의 보좌를 받아 노나라로 피신해 있었는데, 환공과 강규는 서로 먼저 제나라로 들어가 군주가 되기 위해 달리기 경주를 하는 셈이 되었다. 그러나 거나라가 노나라보다 제나라에 가까워 경주는 환공이 유리해 보였고, 이 때문에 관이오는 자신이 모시는 강규를 군주로 만들기 위해 아예 환공을 찾아가 암살하기로 마음먹었다. 관이오는 제나라로 향하지 않고 환공을 찾아가 멀리서 활을 쏘았는데, 그가 배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기뻐하며 강규에게 돌아가 보고하였고, 이에 경쟁자가 사라진 강규와 관이오는 느긋하게 제나라를 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환공은 살아있었는데, 관이오가 쏜 화살이 우연히 허리띠에 있던 쇠고리에 맞아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환공은 재빨리 제나라로 향해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노나라 국경으로 병사들을 보내 강규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명재상 관이오

한번 실패한 관이오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노나라의 협력을 얻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로 쳐들어 왔다. 그러나 노나라가 당시 강대국이었던 제나라에 이길 수 없었고, 당시 노나라의 군주였던 '장공'은 싸움에서 져 급하게 도망치느라 자신이 타고 온 수레도 놓고 갔다고 한다. 환공은 자신에게 도전한 강규와 관이오를 모두 죽이려고 하였는데, 그의 측근인 포숙아가 만류하였다고 한다. 포숙아는 관이오는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에, 강규는 죽이더라도 그들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직접 노나라로 건너가 장공을 협박하였다고 한다. 이때 노나라의 '시백'이라는 자가 관이오는 천하의 기재이기 때문에, 노나라에서 쓰지 못할 것이라면 죽여서 시체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포숙아가 이를 막아 그를 살려서 제나라로 데려왔고, 자신을 대신하여 재상으로 추천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관포지교'의 주인공이다. 관이오는 하루아침에 역적에서 재상의 몸이 되었지만,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있었다고 한다. 이에 환공이 이상하게 여겨 관이오에게 물었더니, 관이오가 낮은 지위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문답으로 깨달은 환공은 관이오를 가장 높은 벼슬인 상경의 지위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관이오는 그저 묵묵히 있었는데, 환공이 다시 한번 물어보자, 이번에는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를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할 수 없다고 대답하여 큰 재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이오는 계속해서 묵묵부답하였는데, 궁금해하는 환공에게 다시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이 있어도 귀족들은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환공은 관이오에게 '중보'라는 호칭을 내렸는데, 이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관이오는 군주가 공경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된다. 이로서 관이오는 사실상 제나라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였는데, 그는 이 막강한 권력으로 법규를 제정하고, 상공업을 육성하였으며, 상비군을 조직하는 등 안 그래도 대국인 제나라를 더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 번은 환공의 신임을 받는 간신 '역아'와 '수초'가 찾아와서,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되는데, 관이오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니 군주나 마찬가지라며 음해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환공은 관이오는 자신의 팔다리나 다름없다며 호통을 쳐서 내쫓았다고 하는데, 환공이 역아와 수초, '개방'같은 간신들을 곁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이오나 포숙아 같은 인재들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맡겼기 때문에 제나라는 번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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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오패

환공은 관이오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그 뜻에 따랐는데, 기원전 681년 제나라가 수나라를 공격해서 멸망시키고, 이어 노나라를 쳐서 영토를 빼앗았는데, 이에 장공이 화친을 청해 만나서 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노나라의 신하인 '조말'이라는 자가 난입하여 환공의 목에 칼을 겨누고 영토를 돌려달라고 협박하였다고 한다. 환공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승낙을 하고 그 자리를 모면하였는데, 숙소로 돌아와서는 크게 화를 내며 조말을 죽이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관이오가 말리면서 말을 했는데, 작은 영토를 얻기 위해서는 조말을 죽이면 되지만,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이에 환공은 관이오의 말을 들어 영토를 노나라에 돌려주었는데, 많은 이들이 환공을 신의를 지키는 인물로 받아들여 여러 제후들에 의해 패자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진나라의 왕만이 중원이 왕이었고, 나머지 나라들은 귀족에 해당하는 제후들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패자라고 하는 것은 제후들이 인정한 사람으로 여러 제후국들 사이의 관계를 중재하고, 혼란스러운 진나라 조정을 대신하여 중원 밖의 이민족의 침략을 막는 등의 행위를 하는 일종의 조정자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는 단순히 국력이 강하다던가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만큼 환공이 인덕을 쌓아 여러 제후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원전 663년에는 연나라가 산융족의 침략을 받았을 때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 구원하였는데, 이후 연나라의 군주가 환공을 배웅하다가 제나라의 국경을 넘게 되자, 연나라의 군주는 연나라 국경선까지만 배웅해야 한다며, 그가 밟은 제나라의 땅을 모두 연나라에 주었다고 한다. 또 노나라에서 계승 분쟁이 발생했을 때도 개입하여 노나라를 안정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기원전 659년에는 위나라가 북적에게 수도를 잃고 나라가 망하게 되자 초구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조정 방식은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환공은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춘추오패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그러나 패자에 대한 정의는 시대가 지나면서 주나라 왕실의 권한이 축소되고, 이민족으로 취급받던 초나라나 월나라, 오나라 같은 국가들이 중원에 합류하면서 점점 변하게 된다.

관이오의 죽음과 몰락

기원전 656년 제나라는 노나라, 진나라, 위나라, 정나라 등을 이끌고 조나라와 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그 명분은 주나라 왕실에 공물을 바치지 않는 초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후 이들이 초나라에 당도하자 초나라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물을 바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 이미 제나라는 패자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즈음부터 주나라 왕실에서 위기를 느끼고 제나라를 견제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제나라와 환공의 행보에는 관이오의 영향이 컸는데, 기원전 645년에 관이오가 사망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하게 된다. 관이오는 병석에서 역아와 수초, 개방같은 간신들을 쳐내고, 자신을 대신하여 습붕을 재상으로 쓰게 하였는데, 환공은 처음에는 관이오의 말을 들어 그대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습붕이 죽자, 환공은 다시 간신들을 불러들여 중용하였고, 이에 포숙아가 간언 하였으나 듣지 않아, 포숙아는 화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결국 환공의 측근들에는 간신들만 남게 되었는데, 기원전 643년에 환공이 병에 들자 이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며 그를 밀실에 감금하였고, 결국 환공은 병에 걸린 채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5명의 아들들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면서, 환공의 시체는 67일간이나 방치되어 시체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고 한다. 결국 제나라는 쇠퇴하여 패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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