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말 삼국시대 마씨 일족의 마지막 인물 「마대」
- 역사
- 2023. 8. 24.
마씨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
'마대'(馬岱)는 마등의 조카이자 마초의 사촌동생으로, 그 태생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지만, 마초가 176년경에 출생했기 때문에 그보다 늦게 태어났을 것으로 생각되며, 마초와 같이 사례 우부풍 무릉현 사람으로 추정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대도 마등과 마초처럼 후한의 개국공신인 '마원'의 후예로 인데, 마등과 마초에 비해 별다른 업적이 없어서인지 사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대에 대한 내용은 크게 3가지 정도만 전해지는데, 먼저 222년에 마초가 사망하면서 마씨 일가가 조조에 의해 멸족되고 마대 밖에 남지 않았으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유비에게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마대는 마등이 조조의 권유를 받아들여 은퇴하고 업으로 향했을 때, 그전, 혹은 그 이후에 마초의 휘하에 합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마초의 조조와 싸우고, 한중에 의탁했다가 유비에게 귀순하는 여정에 함께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이러한 부분을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마초와 유비의 배려도 있어 마대는 이후 평북장군까지 승진했다고 하며, 마초의 자식들을 포함하여 마씨 가문은 마대가 이끌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연을 참하다
그 다음으로 마대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234년으로 북벌 중 촉을 배신하고 한중으로 달아난 '위연'을 추격하여 참수했다는 내용이다. 234년은 '제갈량'이 북벌 중 사망한 시기로, 이후 제갈량의 명령에 따라 '양의'와 '비의' 등이 군대를 이끌고 퇴각할 준비를 하였는데, 위연이 이에 반발하여 북벌 강행을 주장하며 휘하의 병사들을 이끌고 퇴로를 막고 난동을 피운 것이다. 위연의 이러한 행위는 실질적인 명분이 부족하였으며 사실상 반란 행위였기 때문에, 이를 진압하러 온 '왕평'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며 호통을 치자 병사들 사이에 두려움이 일어 모두 흩어졌다고 한다. 이후 위연은 가족들을 데리고 한중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마대는 양의의 명령을 받고 위연을 추격하였고, 끝내 그를 처형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짐작해 보면 마대는 마초 사후에도 촉의 장수로서 제갈량 휘하에서 군사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마대가 제갈량의 남만 공략에서도 활약하는 내용을 추가하였으며, 위연이 촉을 배신할 때에도 미리 제갈량에게 계책을 받은 마대가 거짓으로 합류하였다가 그를 처단하는 것으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진서 선제기에서의 마대
마지막으로 235년에 촉의 장수 마대가 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사마의'가 보낸 '우금'에게 패해 천여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위나라를 이은 진나라에서 쓰인 내용이기 때문에, 진나라의 시점에서 어느 정도 과장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내용들에 비추어보면 마대는 촉나라의 장수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마씨 일족 중에 마등이나 마초에 가려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은 기록양 때문에 마대의 능력이나 위상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로 기록 자체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위의 3가지 내용 외에 마대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더 이상 없으며, 실제로 그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내용도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