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보스 섬의 형제들 '오루츠 레이스'는 1474년 경에 오스만 제국령인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 출신으로 1462년에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트 2세'가 레스보스를 점령하면서 이곳에 영지를 하사 받아 정착하였고, 현지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여 차남 오루츠를 포함한 네 명의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오루츠와 그의 형제들은 레스보스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미틸리니'에서 성장하였으며, 이후 아버지의 도자기 사업을 돕기 위해 선원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선원으로 일반적인 운송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하였지만, 기독교 세력과 대립하며 사략선을 운영하는 등 점차 해적화 되었다. 오루츠는 에게 해를 중심으로 선원 생활을 하면서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등을 ..
왕족의 후예에서 환관으로 고력사(高力士)는 690년경 중국의 당나라에서 태어났는데, 고주 양덕현 출신이다. 고력사의 본명은 '풍원일'로 본래 북연의 왕족의 후예라고 하며, 당나라에서도 대대로 벼슬을 하며 살았지만, 그의 아버지인 '풍군형'이 죄를 저질러 가산을 몰수당했다고 한다. 이때 고력사는 10살 남짓한 나이였는데, 그는 노비가 되어 거세되었으며, 이내 환관으로 궁으로 보내졌다. 고력사는 환관이 되면서 개명하게 되었는데, 그가 궁으로 들어갈 때 다른 환관과 함께 '금강역사'에서 이름을 따와 지어졌다고도 하고, 당시 황제였던 '측천무후'가 그렇게 지었다고도 한다. 어느 게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궁에서 환관 선배인 '고연복'의 양자가 되었는데, 그에게 고씨 성을 받았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효심이 대단한 왕상 '왕상'(王祥)은 중국의 '후한' 말기인 184년 경에 태어났는데, 서주 낭야국 극양현 사람으로 자는 '휴징'(休徴)을 썼다. 당시 후한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이 해에는 '황건적'이 대대적으로 난을 일으키면서 혼란이 극에 달하였다. 왕상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는데, 이후 아버지 '왕융'은 주씨와 재혼하였고, 이 계모 주씨는 왕상을 미워하여 항시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주씨는 왕상에게 외양간 청소를 시키는 등 궂은일을 하도록 시켰는데, 왕상은 이에 대해 아무런 불평 없이 시킨 일을 전부 맡아서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부모를 극진히 모셔, 부모가 병이라도 들면 옷을 갈아입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간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효자 왕상과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는데, 그중에는 지극한 ..
의도되었으나, 의도치 않은 즉위 '조길'은 1082년 중국의 송나라에서 송나라 6번째 황제인 '신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조길은 황제의 자리와는 사실상 인연이 없었는데, 그는 11번째 아들로 위로 형이 10명이나 있었으며, 실제로 1085년에 신종이 사망한 후에는 6번째 아들인 '철종'이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송나라는 중원을 장악하고 태평성대나 다름없는 시대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근저에는 요나라와 서하라는 송나라의 국력을 갉아먹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고, 신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왕안석' 등을 등용하여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조정은 오히려 개혁을 주장하는 '신법파'와 이에 반대하는 '구법파'로 나뉘어 당파싸움을 벌이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는 철종의 치하에서도 별..
선비족의 유력자 독고신의 딸 '독고가라'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인 543년경 '서위'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 '독고신'은 서위의 유력자로 대도독에 대사마의 직위에 있었다. 독고신은 선비족의 명문 출신인 것 같은데, 그는 선비족이 세운 북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후에 본인은 '북주'의 유력자인 '우문호'에게 핍박받아 좋지 않은 말로를 걷게 되지만, 그 후손들은 중원을 호령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독고신은 특히 딸들을 잘 결혼시켰는데, 일곱 딸 중에 첫째는 북주의 황제인 '명제'의 황후가 되었으며, 넷째 딸은 당국공 '이병'에게 시집가 '이연'을 낳았고, 그는 수나라가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세우게 된다. 독고신의 일곱 번째 딸이 바로 독고가라인데, 독고가라는 14세의 나이로 대사공 '양충'의 아..
일찍부터 조조와 함께한 악진 '악진'(樂進)은 중국 후한말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나 활약하였는데, 동군 위현 사람으로 자는 '문겸'(文謙)을 썼다. 그는 '조조'가 본격적으로 할거하여 반동탁의 기치를 내걸었을 때 즈음하여 조조 휘하에 합류하였는데, 처음에는 조조를 따라다니며 장하리를 맡았다고 한다. 장하리는 군대에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역할로 일종의 행정병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악진의 용모와 체구가 작다고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눈에 봐서는 장수로 쓰기에 부적절해 보였던 것 같다. 그나마도 미덥지 못했는지 조조는 악진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병사들을 모아 오게 시켰는데, 양평에서 천여 명을 모집하여 데리고 돌아왔기 때문에, 조조는 그 공을 크게 사 그를 군가사마, 함진도위로 삼았다고 한다. ..
외국인 안녹산 '안녹산'은 703년경에 태어났는데, 중원이 아닌 서역 출신으로 아버지는 소그드족으로 추정되며, 어머니는 돌궐족의 무녀였다고 한다. 본래 아버지는 강씨인데, 양부는 '안연언'이며, 어렸을 적에 이름이 '알락산'이었다고 하는 등 외국 출신의 안녹산에 대해서 정작 기록은 중국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의 정확한 이름이나 출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어렸을 적에는 계속 어머니의 일족과 함께 생활했던 것 같은데, 716년에 일족이 장이 사망하고 인근 부족과 불화가 생기면서 중원으로 망명하였고, 이때 정식으로 안씨 성을 사용했다고 한다. 안녹산의 녹산은 소그드어인 '로흐샨'(빛나다)를 음차 한 것으로 추정되며, 성을 받을 때 이름도 중국식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외국인 태생으로 ..
불세출의 천재 '문천상'(文天祥)은 중국 원나라시대인 1236년 남송의 강서성 노릉 길수현에서 태어났는데, 태몽으로 아기가 보라색 구름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운손'이라고 이름 지었다가 후에 '천상'으로 다시 고쳐지었다고 한다. 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 같은데, 어렸을 적부터 공부에 힘써 18세 무렵에 여릉의 향교시험에서 1등을 하였고, 1256년에는 21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 시기에 과거시험은 이미 상당히 오래된 제도로 중원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도전하였는데, 평균 합격 연령이 40세 정도였다고 하니, 21세에 장원으로 합격한 문천상의 재능이 대단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으며, 시험감독이었던 '왕응린'이 당시 남송의 황제였던 '이종'에게 대단한 인재를 얻은 것..
동진의 부마도위 '환온'(桓溫)은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12년에 '서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초국 용항에 자리 잡은 무인가계로 본래 화북출신이었으나, '영가의 난' 이후 서진이 몰락하면서 북방의 이민족을 피해 남하한 명문귀족 가문이다. 서진이 멸망하자 낭야왕 '사마예'는 세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하여 건업에 자리를 잡아 동진을 건국하였는데, 이 때문에 동진은 화북 출신의 피난민들과 강남의 원주민들이 한데 섞여 살게 되었다. 환온의 아버지는 선성태수 '환이'로 동진 '명제' 치하에서 323년 '왕돈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지만, 얼마 안 되어 328년에 '소준의 난' 때 '소준'의 부하인 '한황'에게 패해 처형되었다. 소준과 한황은 난이 진압되면서 죽었..
패자의 개념을 만들어낸 장공 '장공'의 이름은 '희오생'으로 정나라의 '무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나라는 주나라 '여왕'의 아들이자 '선왕'의 동생인 '희우'가 기원전 806년에 영지를 받아 세운 나라인데, 그는 장공의 할아버지이며 정나라의 군주 '환공'이면서 동시에 주나라의 신하로 사도를 겸했다고 한다. 정나라는 주나라에서 분리된지 얼마 안된 왕족들이 세운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주나라와 가까웠고, 이 덕분도 있어 무공은 주나라 경사의 직위를 가졌으며, 이는 장공에게도 세습되었다. 그러나 장공은 주나라 왕실보다는 자신이 다스리는 정나라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정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주나라의 관직인 경사의 권한까지 이용하였기 때문에 주나라 왕실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주..
나라를 어지럽힌 가문 출신 '양국충'은 중국 당나라시대에 태어났는데, 산서성 예성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양조'였다. 그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어머니는 '장역지'의 여동생이었다고 한다. 장역지는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측근이자 애인으로, 측천무후가 실권을 장악하고 '무주'를 건국하던 시기에는 위세를 떨쳤지만, 705년 궁중 쿠데타로 무주가 멸망할 때 잡혀 처형되었다. 즉, 양국충은 장역지의 일로 인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지탄까지는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때문에 양국충이 어렸을 때부터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였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술이나 도박에 빠져서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명나라 말기의 혼란 '이자성'은 중국 명나라시대인 1606년에 섬서성의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어느정도 넉넉한 형편이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인 '이수충'은 명나라의 세금징수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명나라에서는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납부를 기피하거나 유민이 되어 떠도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징수액을 맞추기 위해 큰 빚을 지게 되면서 집안이 몰락했으며, 이수충은 역참에서 역관으로 일하다가 사망하였고, 이자성도 역졸로 들어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명나라에서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역관들을 대거 폐쇄하였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된 이자성은 다시 군에 입대하였다. 이 시기 명나라는 이미 몰락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특히 여진족들이 세운 후금이 만주지역을 장악하면서 국경이 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