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호십육국시대 동진의 재상 「환온」
- 역사
- 2023. 10. 2.
동진의 부마도위
'환온'(桓溫)은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12년에 '서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초국 용항에 자리 잡은 무인가계로 본래 화북출신이었으나, '영가의 난' 이후 서진이 몰락하면서 북방의 이민족을 피해 남하한 명문귀족 가문이다. 서진이 멸망하자 낭야왕 '사마예'는 세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하여 건업에 자리를 잡아 동진을 건국하였는데, 이 때문에 동진은 화북 출신의 피난민들과 강남의 원주민들이 한데 섞여 살게 되었다. 환온의 아버지는 선성태수 '환이'로 동진 '명제' 치하에서 323년 '왕돈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지만, 얼마 안 되어 328년에 '소준의 난' 때 '소준'의 부하인 '한황'에게 패해 처형되었다. 소준과 한황은 난이 진압되면서 죽었지만, 한황의 부하로 환이의 처형을 집행한 '강파'라는 자는 그 3년 후에 사망하였는데, 이때 환온은 조문객인척 찾아가서는 강파의 아들 3형제를 모두 죽여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공신의 아들이었으며, 남강장공주와 혼인한 부마도위로 죄를 따질 일도 없었고, 재능 또한 뛰어나 343년에 낭야태수로 임명되었다가 서주자사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이후 안서장군 유익의 휘하에서 소도독으로 북벌을 준비하였는데, 345년에 유익이 병으로 사망하자 그를 대신하여 형주자사로 임명되었으며, 도독형양사주제군사, 안서장군, 영호남만교위, 가절을 겸하였다.
성한 정벌
이 시기 촉 지방은 이민족인 저족이 세운 '성한'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환온은 성한이 내분으로 인해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할 것을 주장하였고, 347년 동진의 군대를 이끌고 촉으로 쳐들어갔다. 촉 지역은 길이 멀고 험하기 때문에 많은 원정에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환온은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성도까지 점령하였으며, 가맹관까지 도망쳤던 성한의 황제인 '이세'가 항복을 청하면서 성한을 멸망시키고 촉을 점령하게 된다. 사실 성도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환온은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신의 말이 화살에 맞는 등 위태로워지자 퇴각 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북을 쳐 명령을 전달하는 병사가 잘못 알아듣고 진군 명령을 내려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 되었든 촉을 장악한 환온은 몇 달간 그곳에서 머무르며 인재를 등용하고 민심을 달래는 등 지역을 안정시켰고, 동진으로 복귀하는 길에 반란을 평정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동진으로 귀환한 환온은 그 공으로 정서대장군에 개부의동삼사가 되었으며, 임하군공으로 책봉되어 그 명성이 널리 퍼졌다. 환온의 군대가 성한을 정벌하기 위해 촉으로 들어갈 때 부하 중 한 명이 새끼 원숭이를 잡아 애완동물로 삼았는데, 어미 원숭이가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백리나 쫓아왔다고 한다. 결국 어미 원숭이는 기력이 다 해 죽었는데, 그 내장이 전부 끊어져 있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여기서 '애를 끊는다'라는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죽마고우
349년에는 북쪽의 후조에서 후계자 분쟁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지자 북벌을 청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서쪽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 환온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고, 이에 환온과 친분이 있는 '은호'를 발탁하여 견제하게 하였다. 환온은 이러한 조정의 조치에 분개하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은 것 같은데, 351년에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일으켜 50,000명에 이르는 병사를 모았다고 하며, 이에 놀란 '염위'의 서주자사, 연주자사, 예주목, 북형주자사 등이 싸우지도 않고 귀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군장군 '사마욱'이 이를 지적하자, 환온은 한 발 물러서 군대를 해산하고 다른 뜻이 없음을 조정에 상소하였다. 352년 결국 북벌은 은호가 맡게 되었는데, 그는 낙양에 이르러 원릉을 수복하였으며, 위태로운 상황이었던 염위를 도와주고 대가로 '전국옥새'를 되찾아 오는 등 하남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혔지만, 이내 하남 지역의 군벌들과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벌이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은호는 강족의 협력자인 '요양'을 의심하여 반목하였는데, 결국 참다못한 요양이 동진을 배신하면서 은호의 북벌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환온은 적극적으로 은호를 공격하였고, 그를 실각시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때 환온은 은호는 어릴 적부터 같이 죽마를 타며 노는 사이였지만, 항상 자신이 다 타고 놔둔 죽마를 그가 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은호가 자신보다 한수 아래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이 '죽마고우'의 유래가 되었다. 죽마고우는 흔히 어린 시절부터 매우 사이가 좋았던 친구를 뜻하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절친한 친구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능력이나 계급에 의한 뚜렷한 상하관계가 강조된 말이었던 것이다.
환온의 북벌
354년 경쟁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환온은 군대를 모아 북벌을 감행하였는데, '전진'의 군대를 물리치며 장안 인근까지 진군하였다. 동진의 위세에 놀란 장안 인근의 여러 군현들은 앞다투어 항복하였고, 본래 서진의 백성들이었던 주민들도 술과 고기를 가져와 환온을 대접했다고 하는데, 이때 나이 많은 노인들은 다시 관군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며 감격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환온의 군대는 더 이상 진격하지 못했는데,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동진의 군대는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었고, 이 때문에 환온은 현지에서 보급을 해결할 요량으로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전진군은 숨을 돌릴 수 있었으며, 환온의 주력군은 내버려 둔 채 동진의 후방 지원병력을 교란하거나, 아직 익지 않은 보리를 베어버리고 불을 지르는 등 동진군의 약점을 공략하였고, 결국 환온은 더 이상의 원정을 포기하여 3,000호의 백성들만 데리고 회군하였다. 이때 전진군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퇴각하는 동진군을 공격하였는데, 동진군은 동관으로 퇴각할 때까지 연패를 계속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356년에 환온은 다시 북벌을 감행하였는데, 이번에는 허창과 낙양을 주요 목표로 하여 동진을 배신한 요양을 공격하였다. 요양은 거짓으로 항복을 청하며 환온을 기만하였지만, 환온은 이에 속지 않고 몸소 갑옷을 입고 싸움을 벌여 적국 수천 명을 전사시키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요양을 잡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낙양을 다시 수복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군대를 남겨 낙양을 수비하도록 한 뒤 3,000여 명의 백성들을 데리고 귀환하였다. 환온은 대사마에 대도독중외제군사를 겸하였는데, 364년에는 양주자사가 되었으며, 369년에 연주자사에 서주자사를 더해 사실상 동진의 거의 모든 군권을 손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세 번째 북벌을 시도하였는데, 이번에는 선비족이 세운 '전연'을 목표로 하여 원정을 개시하였으며, 황하를 이용해 보급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원정 초기에 동진군은 전연군을 압도하며 수도인 업성 인근까지 진출하였지만, 전연의 '모용수'가 보급의 거점인 황하 수로의 석문을 점거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결국 보급이 끊긴 동진군은 점점 기세가 꺾이게 되었고, 식량이 다 떨어진 데다 전진에서 구원군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환온은 원정을 포기하고 퇴각하기로 하였다. 동진군은 퇴각하면서 모용수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였으며, 이어서 다시 전진의 군대를 만나 대패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북벌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환온은 그 책임을 원정에 참여했던 예주자사 '원진'에게 물어 그의 세력을 제거하는 등 동진 내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활용하기도 하였다.
지나친 야심과 최후
환온은 여러 군공을 쌓아 명성을 얻었으며, 세 차례에 걸친 북벌에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보이기도 했고, 일종의 인구조사인 '토단'을 통해 동진의 국력을 정비하는 등 공을 쌓아 사실상 동진의 실권자가 되었으며, 371년에는 당시 동진의 황제였던 '사마혁'을 폐위시키고, 사마욱을 새 황제로 세우는 등 그 권력이 황제를 능가하고 있었다. 사마욱은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는데, 이후 372년에 아들 '사마요'가 10세의 어린 나이로 그 뒤를 이었다. 이때 환온은 이미 황제가 될 목적으로 선양을 받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상 '사안'이 그에게 섭정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등 교묘하게 이를 저지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온은 황제에게 '구석'을 요구하는 등 대놓고 찬탈의 의지를 드러냈는데, 사안 등이 능숙하게 시간을 끌며 버텼고, 결국 환온은 373년에 62세의 나이로 병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환온의 아들 '환현'이 안제 '사마덕종'으로부터 선양을 받는 데 성공하기는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유유'에게 공격당해 몰락하였으며, 촉으로 도망치던 도중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