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히는 수재 '토마스 제퍼슨'은 1743년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버지니아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인 '피터 제퍼슨'은 '알버마를 카운티'의 대농장주이자 측량기사 였으며, 어머니 '제인 랜돌프'도 농장주의 딸로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던 것 같다. 1752년 제퍼슨은 9살때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 같은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4세인 1757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제퍼슨은 이때 약 5,000에이커의 땅과 삼십명 가량이 노예를 상속받았다. 제퍼슨은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학교에 다녔는데, 고전과 역사, 과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1760년에는 16세의 나이로 '윌리엄 & 메리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2년 후인 1762..
출생과 관련된 소문 '원굉'(元宏)은 467년에 태어났는데, 본래 이름은 '탁발굉'으로 아버지는 '북위'의 황제 '헌문제' '탁발홍'이다. 원굉의 어머니 이씨는 369년에 자결을 강요당했는데, 이는 당시 북위에 외척을 경계하기 위해 황태자로 책봉될 경우 생모를 숙청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471년에는 5세의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였는데, 양위 후 헌문제는 스스로 태상황제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 태후였던 문성문명황후 풍씨에 의한 것이었는데, 풍태후는 헌문제의 계모로 이미 헌문제의 통치시기부터 정치에 개입하고 있었고, 헌문제가 성장하여 권력을 놓고 대립하게 되자 폐위되었다. 헌문제는 이후 476년에 22세의 나이로 풍태후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한다. 풍태후는 원굉이 어린 것을 이유로 계속해..
헝가리를 둘러싼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쟁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가 언제인가 하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혹자는 '쉴레이만 1세' 시기를 최전성기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혹자는 쉴레이만 1세 때부터 제국의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자는 '메흐메트 4세' 시기에 오스만 제국의 최대 판도를 실현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를 최전성기로 보기도 하지만, 혹자는 '쾨프륄뤼 시대'에 오스만 제국의 쇠퇴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쉴레이만 1세의 통치시기와 메흐메트 4세의 집권시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오스만 제국의 서쪽 끝으로 원정을 떠난 점에 있을 것이다. 쉴레이만 1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침공에 대한 헝가리의 '서포여이 야노시'의 구원 요청을 명분으로 출정하였고, 그대로 ..
미천한 출신 '유유'(劉裕) 363년 태어났는데, 그는 평민으로 태어났으나, 한고조 '유방'의 동생인 초원왕 '유교'의 21대손이라고 한다. 본래 유유의 집안은 서주 팽성 수흥리에 살았는데, 증조부인 '유혼'이 '영가의 난'으로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서, 장강 이남의 '경구'에 살게되었다. 유유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는데, 어머니는 유유를 낳고 얼마안되어 사망하였고, 이 때문에 기를 형편이 안되었던 아버지는 몇번이나 유유를 버리려고 하였다고 한다. 유유는 큰 키에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났지만, 미천한 집안 출신에 글자도 겨우 읽을 정도로만 익혔기 때문에,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또 유유는 짚신을 엮어팔아 그 돈으로 도박을 즐겼는데, 한번은 도박으로 빚을 져서 잡혀 묶여있었는데,..
농부의 아들에서 변호사로 '존 애덤스'는 1735년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중 하나인 메사추세츠의 브레인트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조할아버지인 '헨리 애덤스'는 영국 에식스주의 브레인트리에서 농부로 살았는데, 그는 1632년경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주하였으며, 새로 자리잡은 곳이 메사추세츠의 브레인트리가 되었다. 존 애덤스의 아버지도 그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그도 농부였으며, 교회의 집사이기도 했다. 또 구두수선공이었으며, 지역 민병대의 부관에 세금징수원, 그리고 브레인트리의 일종의 마을회의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는데, 부유한 집안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넉넉한 집안이었으며, 상당히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했던 것 같다. 존 애덤스도 이런 성실하고 근면한 아버지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존 애덤스는 ..
귀족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오스만 제국만의 방식 오스만 제국은 건국 초기에 잠시 두각을 나타냈던 '챤다르 가문'을 제외하고는 역사의 전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낸 귀족 가문은 따로 없었다. 이는 다른 제국이나 왕국, 뿐만 아니라 공화정과 민주주의로 유명한 그리스나 로마와도 달랐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에도 일부 국가에 아직 귀족이 남아있거나, 혹은 귀족은 아니지만 유력한 정치계, 혹은 경제계의 거물들이 과거의 유력 귀족 가문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도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오스만 제국의 특이한 국가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스만 제국은 국가를 설립한 술탄 가문을 중심으로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해온 튀르크계 군벌과 학자들의 참여로 성립되었지만, 이 튀르크계 유력자들을 ..
대진 건국과 찬탈 '부견'(苻堅)은 337년경 '후조'의 장수였던 '부웅'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웅은 후조의 유력자였던 '부홍'의 아들인데, 이들은 본래 티베트계인 '저족' 출신으로 후한 말 어지러워진 중원에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오호십육국시대'에 '흉노', '선비', '강', '갈'족과 함께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다. 부홍은 본디 '포홍'으로 '포'(蒲)성을 썼는데, 당시 항간에 떠돌던 예언인 '초부응왕'(草付應王)에 따라 '草'자와 '付'자를 합쳐 '부'(苻)성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부견이 태어났을때 등에 붉은 글씨로 초부응왕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부홍이 후에 왕을 칭하면서 성을 바꾼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부견은 어릴때부터 남달랐는데, 그는 다른 평범한 저족..
측량기사 워싱턴 '조지 워싱턴'은 1732년 영국의 아메리카 대륙 버지니아 식민지의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에서 '어거스틴 워싱턴'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메리 볼 워싱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워싱턴 가문은 본래 영국의 귀족 가문이었지만, 청교도 혁명이후 몰락하여 1657년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주하였는데, 상류층에 속하는 부유한 집안으로 상품작물인 담배를 재배하는 농장과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아버지인 어거스틴 워싱턴은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의 판사이기도 했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11살때 아버지가 사망하였는데, 이후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 '로렌스 워싱턴'이 가장 역할을 하였으며, 이때 버지니아 민병대의 지휘관이었던 로렌스의 영향으로 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은 어렸을적부터..
하세키 술탄 '마흐페이케르 쾨셈 술탄'은 1590년경 그리스의 티노스 섬에서 그리스 정교회 사제의 딸로 태어났는데, 본명은 '아나스타샤'였다고 한다. 1604년경 해적들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고, 당시 보스니아의 총독에 의해 콘스탄티니예로 보내져, 술탄이었던 '아흐메트 1세'의 후궁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마흐페이케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가, 이후 '쾨셈'으로 개명하였다. 아흐메트 1세의 총애를 얻은 쾨셈 술탄은 금방 '하세키 술탄'으로 하렘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는데, 이전의 하세키 술탄이었던 '사피예 술탄'은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하면서 사실상 유폐되었고, 아흐메트 1세의 어머니인 '한단 술탄'은 즉위 이듬해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쾨셈 술탄의 경쟁자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은 유력한 후계자..
날건달의 개심 '서서'(徐庶)의 본래 이름은 '서복'(徐福)으로, 자는 '원직'(元直)을 쓰며, 예주 영천군 장사현 사람이다. 그는 미천한 집안 사람은로 친척이 없고, 모친과 함께 생활한 것 같은데, 서서에 대한 별도의 개별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러한 가정환경이었기 때문에, 서서는 어렸을적부터 불우한 생활을 한 것 같은데, 젊었을때부터 검술을 좋아하고, 그에 뛰어났다는 것을 보면, 사실상 날건달에 가까운 생활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던 도중 다른 사람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였는데, 도중에 관원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서서는 관원들의 심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관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수레에 묶고 돌아다니며, 그를 아는 사람들 찾았는데 아무도 ..
대 튀르크 전쟁 '무스타파 2세'는 1664년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4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시기에도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과 계속해서 충돌하였는데, 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와 '베네치아 공화국, '폴란트-리투아니아', '루스 차르국' 등과 헝가리, '달마티아',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그동안 오스만 제국은 여러지역에서 각각의 적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며 활발한 정복사업을 이어나갔는데, 1683년 '제2차 빈 공방전'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수세로 몰리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신성 동맹'은 패퇴하는 오스만군을 추격하면서 맹공격을 가했고, 루스 차르국을 포함하여 여러 세력이 전후 이익을 얻기 위해 이 대열에 참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 전역을 오..
고부간의 권력 쟁탈 '메흐메트 4세'는 1642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이브라힘'과 아내 '투르한 하티제 술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브라힘은 술탄으로 즉위하기 전에 오랫동안 '카페스'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메흐메트 4세가 갓난아이였을때 하렘에 출입하는 유모의 돌봄을 받았는데, 이브라힘은 자신의 아이인 메흐메트 4세보다 유모의 아이를 더 귀여워했다고 한다. 어느날 하티제 술탄이 이를 보고 이브라힘에게 불만을 표시하자, 화가난 이브라힘은 메흐메트 4세를 들어다가 연못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메흐메트 4세는 하인들의 빠른 구출 덕에 목숨을 건졌지만, 일설에 의하면 메흐메트 4세의 이마에 있는 상처가 이때 생겼다고 한다. 이처럼 이브라힘의 정신적 문제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