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를 둘러싼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쟁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쉴레이만 1세'는 동방과 서방으로 원정을 다니면 활발한 정복활동을 벌여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와 충돌하였는데, 1526년에 벌어진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의 왕 '러요시 2세'가 오스만 제국에 패배하여 전사하게되었다. 당시 러요시 2세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후계자가 없었는데, 여기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인 '페르디난트 1세'가 끼어들면서,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은 '카를 5세'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국왕이며, 독일과 이탈리아에 걸쳐, 아무튼 열거하기 힘들정도로 매우 막..
새장에 갇힌 후계자 '이브라힘'은 1615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세'와 '마흐페이케르 쾨셈 술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술탄의 유력한 후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렘이 구석에 있는 '카페스'에서 오랜 기간동안 갇혀지내게 된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술탄이 즉위하게 되면 형제들을 살해하도록하는 법이 있었다. 이는 후계자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자가 술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을 부추기면서, 동시에 탈락한 후계자들에 의한 후환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사실상 '쉴레이만 1세' 이후로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브라힘의 아버지인 아흐메트 1세도 13세의 어린나이에 술탄으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당장 형제들을 제거하였다가 후에 술탄이 후사를 보지 못하게 되면, 술탄..
폴란드-리투아니아 출신의 슬라브인 '휘렘 술탄'의 본명은 '알렉산드라 아나스타시아 리소프스카'로 본래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도시인 로하틴, 또는 르비우 출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정교회 사제의 딸로 오스만 제국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10대 시절에 이 지역을 침공한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에게 생포되어 '크림 칸국'의 궁전으로 보내졌고, 이후 크림 칸국에서 오스만 제국에 공물로서 보내졌다고 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하렘은 '셀림 1세'의 애첩인 '하프사 술탄'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하프사 술탄은 그녀를 아들인 '쉴레이만 1세'에게 주었고, 그녀에게 반한 쉴레이만 1세가 휘렘(즐거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유럽에서는 휘렘 술탄을 보통 '록셀라나'(Roxelana)라고 부른다. 말..
어린 꼭두각시 술탄 '무라트 4세'는 1612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니예에서 술탄인 '아흐메트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622년 형이자 술탄이었던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삼촌 '무스타파 1세'가 다시 술탄으로 복위하였는데, 무스타파 1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듬해인 1623년 다시 강제로 퇴위 당하였다. 이에 무라트 4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는데, 당시 무라트 4세는 11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어머니인 '마흐페이케르 쾨셈 술탄'이 실권을 잡고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오스만 제국이 혼란을 틈타 '사파비 왕조'의 '페르시아'가 침공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빼았겼고, 아나톨리아 북부지역에서는 연이어 폭동이 일어났다. 1631년에는 예니체리들이 다..
적극적인 통치 '오스만 2세'는 1604년 콘스탄티니예의 '톱카프 궁전'에서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재능이 상당히 뛰어났던 것 같은데, 시에 조예가 깊었으며 오스만어 뿐만 아니라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1617년 아버지인 아흐메트 1세가 병으로 사망하고, 삼촌인 '무스타파 1세'가 술탄으로 즉위하였는데, 무스타파 1세는 오랜 카페스 생활로 인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무스타파 1세는 신하들의 터번을 강제로 벗기거나, 수염을 잡아당기는 등 기행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듬해인 1618년 강제로 폐위되었고, 오스만 2세는 15세의 나이로 술탄에 즉위하였다. 오스만 2세는 어린나이였지만 즉위..
창의 마타자에몬 '마에다 토시이에'는 1538년경 '오와리'의 지방 토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551년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으로 들어가 모시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인 1552년에 오다 가문의 내전격인 가야즈 전투(萱津の戦い)에 처음으로 참전하였다. 이후 1556년에 벌어진 '이노우 전투'에 참전하여 활약하였으며, 노부나가가 오다 가문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창설한 일종의 친위대격인 '아카호로슈'의 일원이 되어 출세를 시작하였다. 1558년에는 '호슌인'(마츠)와 결혼하였고, 이 즈음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친분을 가졌으며, 서로의 부인끼리도 사이가 좋아서 부부동반으로 교류를 하였던 것 같다. 이듬해인 1559년 같은 아카호로슈의 일원인 '주아미'와의 갈등으로 그를 살해하여, 노부나가 휘하에서 쫒..
형제 살해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 '아흐메트 1세'는 1590년 '메흐메트 3세'의 아들로 '마니사'에서 태어났다. 1603년에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하자, '사피예 술탄'의 주도로 13세였던 아흐메트 1세가 오스만 제국을 계승하였다. 이때 오스만 제국의 계승한 관한 법률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었는데, 술탄의 모든 남자형제를 살해해야 된다는 기존의 내용이 없어지고, 대신 황궁 내의 하렘 한쪽 구석에 만들어진 '카페스'(Kafes)라는 공간에 유폐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권력의 계승은 술탄의 가장 능력있는 자식이 잇도록 하였으며, 술탄이 전쟁이나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 카페스에서 지내던 후계자들 중 한명이 권력을 계승하였다. 이러한 변혁에 대해서는 갑작스러운 술탄의 죽음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전쟁 '메흐메트 3세'는 1566년 아버지 '무라트 3세'가 '마니사'의 총독으로 있을때, 마니사에서 어머니 '사피예 술탄'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595년 무라트 3세가 사망하면서 메흐메트 3세가 다음 술탄으로 즉위하였는데, 이때 19명의 형제들을 처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딱히 메흐메트 3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법률에 술탄의 형제들을 처형하도록 되어있기도 하였고, 무라트 3세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로 하렘에서만 생활하면서 100여명에 가까운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흐메트 3세가 즉위하는 동안에도 서유럽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루돌프 2세'를 중심으로, '트란실바니아'와 '몰다비아', '왈라..
부전자전 '무라트 3세'는 1546년 오스만 제국의 군주 '셀림 2세'와 하렘의 '누르바누 술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누르바누 술탄은 본래 '라셀'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누르바누 술탄은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으로, 바다를 여행하다가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술탄에게 바쳐졌다고도 한다. 무라트 3세는 셀림 2세가 '마니사' 총독으로 있을때 마니사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때부터 프랑스어와 아랍어 등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1558년에 셀림 2세와 동생 바예지드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반목하자, 쉴레이만 1세가 두 사람의 영지를 변경하였는데, 이때 셀림 2세가 남쪽의 '카라만'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무라트 3세는 콘스탄티니예로 보내져 쉴레이만 1세의 곁에서 지냈다..
압도적인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은 처음에는 아나톨리아 반도를 근거지로 한 소국에 불과했지만, 이내 발칸 반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서유럽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었다. 이에 서유럽에서는 몇차례 십자군을 편성하여 보내기도 하였는데,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니코폴리스 십자군'이 오스만군에게 패배하였으며, 1444년에는 '바르나 전투'에서 '바르나 십자군'이 패배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1453년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기도 하였다.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쉴레이만 1세'의 통치기에 오스만 제국은 흑해와 에개해를 내해로 삼고, 서쪽으로는 헝가리를 장악하고 오스트리아의 빈을 위협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 진출하여 예맨과 아덴까지 진출하여, 인도 일부지..
주어진 술탄의 권력 '셀림 2세'는 1524년 오스만 제국의 군주인 '쉴레이만 1세'와 황후 '휘렘 술탄'의 아들로 태어났다. 셀림 2세는 슬라브계였던 황후를 닮아 금발이었다고 한다. 본래 쉴레이만 1세는 하렘의 후궁인 '마히데브란 술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무스타파'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같은 후궁이었던 휘렘이 정식으로 쉴레이만 1세와 결혼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군주들은 전통적으로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고, 주로 하렘의 노예 출신 후궁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후계자 경쟁을 통해 차기 술탄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쉴레이만 1세는 다른 경쟁상대가 될 형제들이 유년기에 모두 사망하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에서 유일하게 이러한 경쟁과정 없이 술탄의 자리를 차지할 ..
노부히데의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는 1492년경 태어났는데, '오다 노부사다'의 신하였던 아버지를 따라, 노부사다의 아들인 '오다 노부히데'를 섬겼으며, 노부히데의 중신으로 주로 외교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마사히데는 다도나 와카 등에도 능했는데, 1533년에 '오와리국'을 방문한 공가의 '야마시나 토키츠구'로부터 칭찬받을 정도 였다고 한다. 1543년에는 노부히데의 대리인으로 교토로 헌상품을 보내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때 조정과의 외교 활동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1534년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나자, 노부히데에 의해 후견이 중 한명이 되었으며, 노부나가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1547년에 노부나가의 첫 전투때에도 후견인으로 참전하여 보좌하였다. 또 1548년에는 노부히데와 '미노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