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출신의 군인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는 450년 '일리리쿰' 지역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인이 된 지역 속주민으로 가난한 하층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릴적부터 농업에 종사하다가, 10대 시절에 이민족의 침공을 피해 콘스탄티노플로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이때 유스티누스는 한푼도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경비대에 입대하였다고 한다. 이 선택으로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는데, 유스티누스는 군생활에 상당히 잘 적응한 것 같은데, 아예 고향에 남아있던 아내 '에우페미아'까지 콘스탄티노플로 불러들이고, 본격적으로 전문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유스티아는 동로마 군단의 병사로 '페르시아'와 '이사우리아족'과의 분쟁에서 활약하여 지휘관으로 승진..
전통 귀족 가문 '플라비우스 아나스타시우스'는 430년경 '디라키움'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나스타시우스는 '콘스탄티누스 왕조'와 혈연적으로 연결되어있었고, 이탈리아의 오래된 로마 귀족인 '풀비우스 가문'의 피도 이어받았으며, '세베루스 왕조'와도 연관된 가문의 후예였다고 한다. 아나스타시우스는 청년 시절에 속주에서 재무관을 지내면서 공직 경험을 쌓았다. 491년 '플라비우스 제노' 황제가 사망하였는데, 그의 후계자 후보로 동생인 '플라비우스 롱기누스'가 주목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제노와 롱기누스는 비록 로마인이기는 했지만, 아나톨리아 지역의 소수민족인 '아사우리아족' 출신이었고, '플라비우스 레오'(레오 1세) 때부터 동로마에서 중용되어 권력을 잡은 신흥세력에 속하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은..
아나톨리아 출신 황제 '플라비우스 제노'는 425년경 태어났는데, 그는 로마인이었지만 정확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의 타우루스 산맥에 사는 산악민족인 '이사우리아족' 출신이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레오'(레오 1세) 황제가 당시 동로마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게르만계의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아스파르'를 견제하기 위해 이사우리아 출신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족장이었던 제노는 트라키아 지역의 동로마 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제노의 원래 이름은 '타라시코디사 루숨블라데오테스'였으나, 이때 레오 1세의 딸 '아일리아 아리아드네'와 결혼하면서 그리스식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473년 레오 1세는 72세의 고령의 나이였는데, 그는 후계자로 제노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인 '플라비우스 레오'(레오 2세)를 지명하고 공..
아스파르의 집사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레오'(레오 1세)는 401년 '트라키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레오 1세는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하였으며, 정통파 그리스도 교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에는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아스파르'가 동로마 군단의 총사령관으로 실세였는데, 레오 1세도 아스파르 휘하에서 지휘관으로 있었다고 한다. 457년 동로마의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병으로 사망하였는데, 그는 황제로 추대되었을때 황녀였던 '아일리아 풀케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형식적인 혼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후계자가 없었다. 이 때문에 아스파르 가문의 집사였던 레오 1세는 아스파르의 도움으로 황제로 추대될 수 있었다. 아스파르는 '파트리키우스'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콘스탄티노..
군인출신 동로마 황제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는 396년 '트라키아'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자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으나, 로마 군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하였다. 마르키아누스는 동로마에서 '페르시아'와 '반달족'과의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431년에 북아프리카의 '히포 레기우스' 인근의 전투에서 반달족에게 사로잡혔는데, 이때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에게 끌려가서 다시는 반달족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풀려났다고 한다. 이후 동로마의 실세였던 군단 총사령관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아스파르'의 휘하에 합류하였으며,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서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450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누이인 '아일리아 풀케리아'와 형식..
일곱살의 황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2세)는 40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황제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듬해인 402년부터 공동황제로 선포되어 정식 후계자가 되었으나, 406년에는 어머니인 '아일리아 에우독시아'가 사망하였고, 408년에 아르카디우스도 사망하면서, 겨우 7세의 나이에 동로마의 정식 황제가 되었다. 아버지인 아르카디우스는 서로마의 황제인 작은 아버지인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와 함께 대표적인 무능한 황제로 불리우지만, 임종을 앞두고 어린 아들이 안정적으로 황제의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상당히 고심한 것 같다. 그러나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에서 꼭두각시 황제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 동생인 호노리우스와도 사이가 안 좋아졌기 때문에, 마땅히 아들을 믿..
동로마 제국 첫번째 황제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는 377년경 '히스파니아' 지역에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들로 테어났다. 이 시기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의 공직에서 은퇴하여 히스파니아에서 은거하고 있었는데, 378년에 당시 로마 제국 황제였던 '플라비우스 그라티아누스'의 명을 받고, 로마 제국 영내에서 날뛰는 고트족을 진압하기 위해 발칸 반도로 부임하였다. 이듬해인 379년에는 그라티아누스에 의해 아예 공동 황제로 선포되어 제국의 동방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이에 아르카디우스는 일개 로마 제국 시민의 아들에서, 일약 로마 제국 황제의 아들이 되었다. 아르카디우스는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였으며, 말과 행동이 굼뜨고 늘 졸린듯한 표정이었다고 하는데, 거기다가 ..
동고트족의 왕 '플라비우스 테오도리쿠스'(테오도리크)는 454년 훈족에게 점령당한 '동고트족'의 왕 테오데미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곧 동고트족과 '게피다이족' 등 게르만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네다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훈족이 대패하고, 훈족의 왕 '엘락'이 전사하면서, 훈족은 몰락하고 다시 게르만족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는 동고트족이 '판노니아'에 이주하는 것을 허락하고 식량과 이주 비용을 지원하였는데, 대신 동고트족은 '포이데라티'로 동로마 제국에 군사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다음 황제인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레오'(레오 1세)가 지원금의 지급을 중단하자, 동고트족은 '일리리쿰'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하였고, 이에 레오 1세는 다..
스핑크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에 대해 조금 알아봅시다. 라이오스는 카드모스의 자손으로 테바이의 정통 계승자였지만, 어린시절 아버지인 랍타코스 왕이 죽으면서, 랍타코스의 외작은할아버지에 해당하는 뤼코스가 섭정으로서 테바이를 다스렸습니다. 안티오페는 뤼코스의 조카였는데,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서 암피온과 제토스라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뤼코스의 아내 디르케는 안티오페를 싫어해서 그녀를 학대했다고 합니다. 암피온과 제토스는 어머니를 괴롭히던 디르케와 뤼코스를 살해하고 테바이를 차지하였습니다. 테바이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카드모스의 핏줄이 테바이를 다스리기를 바라면 라이오스를 펠롭스가 다스리는 피사로 피신시켰다고 합니다. 펠롭스는 이후에 피사의 여왕 히포다메이아와 결혼..
게르만족 로마 군단 '알라리크'는 370년에 게르만계 '서고트족'의 유력한 가문의 일원으로 다뉴브강 하류 지역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 게르만족들은 동쪽의 '훈족'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로마 제국과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도 쇠퇴해 감에 따라 부족해지는 군사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포이데라티'라는 이름으로 게르만족을 비정규 로마 군단으로 편입시키는 대신 제국의 영내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혼란이 있었지만, 379년 로마의 공동황제로 선포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테오도시우스 1세)의 지휘아래 서고트족은 '트라키아' 지역으로 이주 할 수 있었다. 알라리크도 로마 군단에서 복무하였는데, 394년에 일어난 '프리기두스 전투'에서 알라리크..
술의 신의 탄생 세멜레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딸로 테바이의 공주였습니다. 세멜레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알게된 헤라는 복수하기 위해 세멜레의 유모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접근하였습니다. 헤라는 세멜레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사실은 제우스를 사칭하는 것 일지도 모르니, 제우스의 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라고 꼬드겼습니다. 헤라의 속임수에 넘거안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본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하였고, 세멜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스틱스 강에 맹세한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멜레는 주신 제우스의 모습을 보고 새카맣게 불타 죽게 되었는데, 이때 이미 제우스의 아이를 몸에 베고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죽은 세멜레의 배에서 아이를 꺼내어, 자신의 허벅지 안에 넣고..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인 '오도아케르'는 433년에 태어난 게르만계 헤룰리족으로 훈족과 스키리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오도아케르는 로마식 이름으로 본래 이름은 '아우다와크르스'라고하는데, 그가 속했던 부족이 동고트족에게 괴멸된 뒤 서로마 제국의 로마 군단에 합류하면서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운 것 같다. 그는 꽤 오랫동안 서로마 군단에서 복무한 것 같은데, 서로마 군단의 지휘관으로서 당시 서로마 제국의 실권자였던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휘하에 속해있었다. 472년 리키메르가 사망하고, 이번에는 그의 조카인 '군도바트'가 서로마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군도바트는 리키메르의 부하였던 '글리케리우스'를 새 황제로 추대하였는데, 이후 1년도 채 안되어 '브루군트족'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서로마를 떠나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