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플라비우스 오도아케르」

반응형

그림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인

'오도아케르'는 433년에 태어난 게르만계 헤룰리족으로 훈족과 스키리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오도아케르는 로마식 이름으로 본래 이름은 '아우다와크르스'라고하는데, 그가 속했던 부족이 동고트족에게 괴멸된 뒤 서로마 제국의 로마 군단에 합류하면서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운 것 같다. 그는 꽤 오랫동안 서로마 군단에서 복무한 것 같은데, 서로마 군단의 지휘관으로서 당시 서로마 제국의 실권자였던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휘하에 속해있었다. 472년 리키메르가 사망하고, 이번에는 그의 조카인 '군도바트'가 서로마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군도바트는 리키메르의 부하였던 '글리케리우스'를 새 황제로 추대하였는데, 이후 1년도 채 안되어 '브루군트족'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서로마를 떠나버렸다. 475년 글리케리우스는 다시 동로마 제국에서 보낸 '율리우스 네포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빼앗겼는데, 이때 글리케리우스의 지지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서로마 내부가 혼란에휩 쌓였고, 이틈을 타고 리키메르의 부하였던 '오레스테스'가 이민족들을 등에 엎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쫒아낸 후에 군도바트의 빈자리를 차지하였다. 실권을 장악한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아들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로 세워 서로마 제국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였지만, 실권을 잡은 후에 교만해 졌던 탓인지 이민족들에게 약속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민족들이 오도아케르를 리더로 추대하였고, 476년에 로마로 쳐들어가서 오레스테스를 살해한 후에, 서로마 수도였던 라벤나로 가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고, 나폴리만으로 유배 보냈다. 그러나 오도아케르는 리키메르나 군도바트처럼 이민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직접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서로마 제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리키메르나 군도바트처럼 꼭두각시 황제를 내세워야 했는데, 오도아케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통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바로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없는 서로마 제국 자체를 폐지해 버리고, 주인이 없어진 빈 땅의 왕이 되는 매우 참신한 방법이었다. 오도아케르는 스스로 동로마 제국의 신하를 자처하고,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쓰는 관을 동로마 제국으로 반환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를 잘 섬기겠다며, 은연중에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로서 사실상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는데, 이처럼 서로마 제국이 멸망을 앞두고 사실상 실권을 게르만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서로마 군단도 거의 대부분 이민족 병사들도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이것을 로마 제국으로 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작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동로마 제국에서 정식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 받았던 마지막 황제인 율리우스 네포스가, 자신의 근거지인 달마티아에서 스스로 서로마 황제를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리우스 네포스가 사망하는 480년을 서로마 제국의 완전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반응형

팍스 바르바리카

오도아케르가 집권하면서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지만, 통치구조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또 그는 동로마 제국에서 하사한 '파트리키우스'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표면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신하로서 이탈리아에서의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오도아케르는 원로원을 존중하였으며, 행정은 본래 그대로 관료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들이 오히려 원로원과 관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대신 서로마 군단은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자신이 이끄는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군단으로 대체하였다. 또 이미 서로마 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로마 교황을 우대하고, 이탈리아 주변의 게르만 부족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이탈리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였다. 이후 율리우스 네포스가 사망한 이후에 달마티아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시칠리아 일부도 수복하였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이루어낸 이러한 평화시대를 '팍스 바르바리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오도아케르의 이러한 세력 확장은 동로마 제국의 불안을 불러왔다.

이탈리아의 왕

원래 동로마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제노'(제논)는 서로마 제국을 마음대로 없에버린 오도아케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오도아케르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동고트족의 왕인 '플라비우스 테오도리쿠스'(테오도리크)와 협약을 맺게 된다. 제논은 테오도리크에게 동고트족이 오도아케르를 타도하면, 그의 영토를 동고트족에게 주기로 하였고, 489년 테오도리크는 동고트족을 이끌고 동로마 제국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게 된다. 오도아케르는 서고트족의 지원을 받은 테오도리크에게 연패하였고, 이에 방어하기 좋은 라벤나에 틀어박혔다. 이렇게 전쟁이 길어저 3년이나 지나게 되자, 라벤나의 주교의 주선으로 오도아케르와 테오도리크는 협상을 하게 되었다. 493년에 4년 동안 지속됬던 전쟁이 끝나고 오도아케르와 테오도리크는 공동 통치자로 이탈리아를 통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테오도리크는 입성한지 10일만에 서로의 연합을 축하하는 연회자리에서 오도아케르를 단칼에 살해하였으며, 동시에 오도아케르의 가족들과 부하들까지 공격하여 모조리 살해하였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첫번째 이민족 왕이 또다른 이민족 왕에 의해 축출되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