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난 남자 '한니발 바르카'는 로마와 '카르타고'사이에 있었던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카르타고의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이다. 전쟁 막바지에 참전한 하밀카르는 전쟁 수행 의지가 떨어지는 본국의 지원을 받으며 막강한 로마 군단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지만, 카르타고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후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공격당하여, 본국에서 벗어나 '히스파니아'(현재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카르타고의 영향력을 넓히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하밀카르는 9살밖에 안된 아들 한니발을 신전에 데려가 카르타고의 신인 '타니트'에게 로마에 복수할 것을 맹세하게 시켰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로마에 전해 내려온다. 하밀카르는 히스파니아에..
로마의 영향력 확대와 삼니움 족과의 충돌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데는 거의 500년 가까이의 긴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로마 군단은 무작정 강한 군대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로마 군단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면서, 그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전술을 고안하고 받아들이며 발전하였다. 로마 공화국은 중부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같은 중부 이탈리아에 근거를 둔 '삼니움족'과 부딪히게 된다. 삼니움족은 원래 '아펜니노 산맥'을 근거지로 하여 지형이 험한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부족으로, 기원전 354년부터 이탈리아 북쪽의 '갈리아족'에 맞서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기원전 343년 삼니움족이 목초지를 찾아 '캄파니아' 지역으로 진출하며, 먼저 있던 ..
피로스 전쟁 피로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인으로 '에페이로스'의 왕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친척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피로스 전쟁'은 기원전 280년부터 약 5년간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시칠리아 섬에 걸쳐 피로스 왕이 벌인 전투의 총칭이다. 당시 산악 민족인 '삼니움족'과 40년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마그나 그라이키아'라고 불렸던 이탈리아 반도 남쪽을 장악한 그리스 도시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로마는 이미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로마 근처의 라틴계 소도시들을 모두 점령하고, 삼니움족까지 흡수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장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군사 강국이었다. 이런 로마와 전쟁을 치르게 된 그리스계 도시였던 '타렌툼'은 바다 건너 에페이로..
페니키아인들의 국가 콰르트하다쉬트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경에 현재의 튀니지 부근에 세워진 페니키아의 도시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원래 동 지중해의 해안인 현재의 시리아와 레바논, 이스라엘 북부에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항해술이 뛰어나 동 지중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번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페니키아인들은 인류 최초로 알파벳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기원전 650년경에 페니키아로부터 독립해서, 북아프리카 일대와 이베리아 반도 일부, 그리고 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 섬의 일부를 영토로 하며 지중해 연안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이 부르는 말로, 원래 페니키아 말로는 '콰르트하다쉬트'이며 그리스인들은 '칼케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카르타고는 지..
시칠리아 전쟁의 시작 '카르타고'는 현재의 '튀지니' 지역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한 국가로, 북아프리카 일대의 넓은 평원에서 작물을 농업과 지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을 하는 상업이 발전한 국가이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하면서 그리스 헬레니즘 세계가 쇠퇴하면서 떠오른 지중해의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는 국가였다. 당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거의 평정하고 있었는데, 로마와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권을 두고 다투는 유명한 '포에니 전쟁'이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총 3회 충돌하였는데, 제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241년 사이에 20년에 걸쳐 싸우게 된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끝과..
자비로운 황제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가 사망하면서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로 지목된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보이오니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가 15대 황제로 취임하게 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별칭으로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왜 그들이 그를 친근하게 안토니누스 피우스라고 불렀는지 약간이나마 공감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전대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는 생전에 국가 반역죄 등의 구실을 이용하여 정적으로 숙청하고 있었고, 그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가졌던 원로원에 의해서 사후 신격화가 거부되었는데, 후계자였던 안토니누스가 눈물을 흘려가면서 원로원을..
트라야누스의 후계자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는 전 황제인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의 후계자로 황제의 자리를 승계했다.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친척으로, 어린 시절부터 트라야누스와 함께 로마의 속주였던 '히스파니아 바이티카'의 '이탈리카'라는 도시에서 지냈다. 하드리아누스 일가는 트라야누스의 집안보다 로마에서 더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에서 출세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트라야누스가 일찌감치 군 생활을 시작하며 공직에 투신한데 반해, 하드리아누스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였고 고향에서 사냥을 다니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는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아페르'로 원로원 의원이자 법무관으로, 로마에서 상당한 부과 정치적 영..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 '하데스'는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같이 '크로노스'와 '레아'의 자식이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쓰러트린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자신도 자식에게 쫓겨난다는 예언을 듣고는 자식을 낳을 때마다 삼켜버렸다. 보다 못한 레아는 막내인 제우스를 낳으면서, 제우스를 몰래 숨겨놓고 대신 바위가 새로 태어난 아이인 것처럼 크로노스를 속여서 삼키게 한다. 후에 장성한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타도하기 위해 형제들의 힘을 빌리기로 하면서,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형제들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다시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게 된다. 사실 아버지를 몰아내고 아들이 권력을 승계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인 우라노스부터 아버지 크로노스에 이어 아..
로마에게 환영받은 황제 로마 제국은 크게 4개의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구성원은 바로 황제인데, 로마의 황제는 동양의 황제와 다르게 문자 그대로 만인지상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인독제체제로 로마의 실질적인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이 있는 것은 맞으나, 그 자신이 로마법이 테두리 안에 존재했으며, 자신을 견제하는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집권하여야 했다. 두 번째는 원로원인데 로마 왕국시절부터 존재해 왔던 유서 깊은 기관으로, 로마 제국이 성립되고 나서 실질적인 정치권력에서 멀어지긴 했으나, 로마의 정치적 유력자의 모임이었던 만큼 그 영향력 자체가 없어지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지휘와 재산, 인맥 등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유령선을 발견하다 1872년 12월 4일 대략 오후 1시, 영국 상선 '디 그라티아호'는 포르투갈 근처 북대서양에서 한 척의 배를 발견했다. 배는 좌우로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는 게 제대로 항해하고 있는 모습 같지는 않았지만, 선체에 눈에 띄는 상처도 없고 신호를 보내도 대답이 없이 단순히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라티아호의 선장은 '메리 셀레스트호'를 알고 있었고, 셀레스트호의 선장인 '브리그즈'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배에 가까워 접근하기로 했다. 그라티아호의 승무원들은 가까이 접근하여 세심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고,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하여 승선해보기로 했다. 그라티아호의 일등항해사였던 '올리버 데보'는 몇몇 선원들과 셀레스트호에 승선하여 수색하였지만 승무원은 ..
해운왕 오나시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는 1906년 '오스만 제국'의 '스미르나'(현재의 이즈미르)의 그리스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정식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로 누가 어디서 봐도 그리스 사람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10대일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독일과 함께 연합국과 맞서 싸웠고, 전후 '세브르 조약'을 맺어 스미르나는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담배상인으로 꽤 부유한 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튀르키예' 독립전쟁에 휘말려 전재산을 잃었고, 1922년 스미르나가 튀르키예에 의해 점령되어 '로잔 조약'을 통해 튀르키예에 반환되면서 그리스 본국으로 탈출하였다. 그는 곧 남미로 이주하여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서 여러 직업을 ..
고령의 나이로 취임한 황제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가 황제로 취임한 것은 그가 66세 무렵으로, 황제였던 '도미티아누스'가 96년 암살되면서 원로원의 지명을 받았다. 그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집정관을 지냈던 것과 암살 당일날 다음 황제로 지명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암살에 관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의 황제 취임 전후의 행적을 봤을 때 그러한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의 가계는 이탈리아 귀족출신으로 대대로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라는 같은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하였는데 증조부가 아시아 속주의 총독이기도 하며, 조부도 집정관에 취임하는 등 정치권력의 테두리 안에 있었으며, 그 본인도 집정관에 두 번이나 취임하고 있기는 하나, 당시 로마 사회에 큰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집단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