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어린 시절 '칼 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은 1867년 러시아령 '핀란드 대공국'에서 태어났다. 만네르헤임가의 선조는 함부르크에 살던 독일인으로 17세기에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귀족이 되었다. 이후 다시 18세기에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핀란드로 이주하였는데, 만네르헤임의 증조부는 핀란드 대공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었으며, 백작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만넬헤임가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부친은 사업가이자 극작가였는데,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하는 양극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고, 이후 도박에 빠져 1880년에 파산하여 부인과 가족을 버리고 애인과 함께 파리로 가서 보헤미안이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파산과 외도의 충격을 받은 모친은 이듬해에 병사하였다. 이때 만네르헤임은 13세였..
비엔나 회의와 왕정복고 181년 '나폴레옹'이 퇴위하면서 전후처리를 위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유럽 각국의 대표가 모여 '비엔나 회의'(빈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는 혁신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없고, 유럽의 상태를 '나폴레옹 전쟁'이전으로 되돌리는 것만을 우선하였다. 회의는 5대 강국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는데, 주요 참가자는 회의의 주재국인 오스트리아의 외무상인 '메테르니히', 영국의 외무상인 '캐슬레이 자작'과 '웰링턴 공작',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국왕,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 프랑스의 외무상 '탈레랑' 등이었다. 이 회의의 결정사항에 따라 변한 유럽의 국제질서를 '빈 체제'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탈레랑이 주장한 '정통주의'에 따른 '프랑스 혁명' 이전의..
나폴레옹의 등장과 제1제국 프랑스 역사에서 영웅이라고 하면 백년 전쟁의 '잔다르크'와 '나폴레옹'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잔다르크와는 달리 나폴레옹의 역사적 평가는 생각처럼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프랑스 혁명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혁명을 통해 민주정부를 탄생시킨 프랑스를 다시 황제정으로 되돌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과연 민주화의 아군인가, 아니면 적이었는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71년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프랑스의 영토이기는 하지만 그 위치는 이탈리아와 더 가깝다. 성장한 나폴레옹은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당시에 그는 심한 코르시카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이었기에 나폴레옹 본인은 '프랑스 혁명'에는 그다..
발루아 왕조의 절대 왕정 백년전쟁에 승리한 '발루아 왕조'의 권력은 점점 더 공고해지는데, 오랜 기간 전쟁이 지속되면서 봉건 귀족 세력이 극도로 약해지고 있는 반면 왕실은 재정을 정비하고 국왕의 상비군을 강화하는 등 '중앙집권'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럽 국가들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아니라 각자의 영지를 다스리는 봉건 제후들과 기사들의 구심점으로 왕이 존재하고 있는 형태였다. 백년전쟁의 여파로 영국과 프랑스 모두 서양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왕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대이탈리아 전쟁 발루아 왕조의 '샤를 8세'는 이탈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이 전쟁에서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 세력을 가진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충돌이 시작된다. 프랑스와 독일은..
프랑스의 지리적 특징 프랑스의 남부는 지중해에 접해 있어 연평균 온도차가 크지 않은 소위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고 있으며, 서부는 난류인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도 있어 '서안 해양성 기후'로 분류된다. 고위도에 비해서 온난하며, 기본적으로 온대에 속한다. 프랑스의 위도는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홋카이도와 비슷한 정도의 위도에 속하지만, 해류 등의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겨울에는 상당히 춥기 때문에 중세 무렵까지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피 등의 방한용품이 필요했다. 선사 시대 프랑스(기원전 1세기까지) 프랑스는 유구한 역사의 나라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은 기원 1세기경까지는 역사의 표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가 처음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로마의 ..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라는 의미의 별칭으로 본명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이다. 그는 실명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의 폭정으로 로마 왕국이 몰락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인 것 같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그는 왕정 로마 다섯 번의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친아들이며, 또한 6대 왕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사위이기도 하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아들 2명과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딸 2명은 각각 결혼했지만, 루키우스의 아내 '큰 툴리아'(당시 로마이 여성은 가문의 성을 여성형으로 하여 그대로 이름으로 하였다)와 동생 '아르룬스'가 사망하면서, 동생의 아내인 '작은 툴리아'(이하 툴리아)와 재혼한 것으로 보인다. 툴리아는 남편이 죽기 이전부터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
왕정 로마도 이미 말기가 됐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 물은 원래 흐르던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이 일본 고전인 '방장기'의 유명한 서두 부분에 있는데, 이것은 어떤 왕조에도 빗대어 말할 수 있지만, 특히나 로마가 앞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나아가 제정으로 변화하면서도 계속 로마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특히 더 어울리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로마는 이미 목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서, 대국으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출신을 모르는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재능을 간파한 타르퀴니우스의 혜안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출신은 명확하지 않다. 그의 어머니가 '에트루리아'인으로 에트루리아의 도시에 살다가 로마와의 전쟁으로 함락되어 노예가 되어 로마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전..
현재의 인도네시아와 지리적 특징 인도네시아는 현재 공식적으로 인구 약 2억 3700만 명(2010년 조사), 비 공식적으로 2억 6700만(추정)을 가진 거대 국가(인구 세계 4위)로 수도는 '자바'섬 있는 '자카르타'이다. 인도네시아는 크고 작은 1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국가로, 특히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술라웨시', '뉴기니'의 5개의 큰 섬이 주요 섬으로 국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열대성으로 구분되며, 기온은 연중 거의 비슷하지만 계절에 따라 강우량이 크게 변화하며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5월부터 10월 정도까지가 건기, 11월부터 4월 정도까지가 우기가 되어,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스콜'이라고 불리는 집중 호우가 자주 일어난다. 종교적은 무슬림이 많아 세계 최..
로마의 첫 에트루리아인 왕 '로마'와 '에트루리아'는 서로 다른 나라이지만,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의 왕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5대째의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이다. 그렇지만 타르퀴니우스는 소위 순혈의 에트루리아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그리스인, 어머니는 에트루리아인이라는 혼혈이었던 것 같다. 북쪽 강국과 남쪽 강국 사이에 끼인 로마에서 양민족의 혼혈이 왕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를 포함해서 당시에는 민족 국가의 폐쇄적인 분위기로 이민족이 사회에 흡수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한 풍속이 원인이 되어 양민족이 쇠퇴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로마는 그러한 부분에 상당히 관대한 풍조가 있어, 출신지나 민족에 대해 편협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점, 필요한 점이..
로마의 왕정 시대는 200년 정도 계속되는데, 왕은 단 7명밖에 없다. 로마 시대의 왕은 종신제가 특징으로 한 명 한 명의 통치가 길다. 중국의 왕조나 일본의 막부라면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50년간에 20명 이상 황제가 바뀐 로마의 군인황제시대와도 다르다.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당시 로마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이 다툼이 일어나기 어려웠던 것과 세습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우수한 사람을 왕으로 뽑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 왕국 제4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세습이 아니지만 2대째 왕 '누마'의 딸을 어머니에게 둔 사비니족 출신자로 할아버지와 달리 호전적인 행보를 보였다. 아마 본인의 기질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전보다 커진 로마의 상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정 로마의 역사는 제정 로마에 비해 관심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후에 제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로마의 기반이 이 시대에 나왔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누마' 이후 세 번째로 로마의 왕좌에 앉은 것이 바로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이다. 다시 라틴계가 왕으로 초대인 '로물루스'가 라틴계, 2대 왕 '누마'가 사비니계, 그리고 툴루스가 다시 라틴계이다. 라틴계가 왕이 되면 로마는 상당히 호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이후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등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라틴 민족은 비교적 공격적인 것 같다. 툴루스는 왕좌에 앉자마자 라틴 민족 통일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쟁을 시작한다. 이 무렵 로마는 아직 라틴 민족의 하나의 부족에 불과했다. 툴루스가 제일 처음 공격한 것..
'누마 폼필리우스'라는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마 서양사, 그중에서도 유럽의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제국 이전의 로마 왕국의 2대째 국왕 누마 폼필리우스. 왕좌를 거절한 누마 갑자기 없어져 버린 초대 왕인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갈 다음 왕을 선출하는 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로마'라는 것은 참 재미있는 국가로, 초기 왕정 로마에서 제정 로마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는 '세습'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전세계 모든 국가 중 세습의 생각이 없는 왕정은 드물다. 고대부터 시작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의 영국이나 일본의 왕실에 이르기까지 세습제가 기본이다. 로물루스가 사라진 후에도 로물루스의 혈족이 뒤를 이은다는 생각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