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6나라의 재상을 지낸 「소진」

반응형

인물화

합종연횡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여러나라가 서로 경쟁하는 시대였고, 많은 사상가와 전략가 등이 명성을 얻고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다. '소진' 본래 '주나라'의 '낙양'사람인데 친구인 '장의'와 함께 '제나라'로 가서 '귀곡자'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하산하여 '진나라' 등을 돌아다니면서 유세하였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출세하지 못하고 빈곤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를 보고, 그의 아내는 짜고 있던 직물을 멈추지도 않았고, 형수는 밥도 주지 않았다고 하니, 상당히 홀대 받은 것 같다. 이에 기분이 상한 소진은 방에만 틀어막혀서 책을 읽고 공부하였는데, 잠이오면 손을 송곳으로 찔러가면서 하였다고 한다. 1년 정도 병법과 독심술을 공부한 그는, 어느날 이정도면 군주들을 설득할 수 있겠다 하여,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 자신의 출신지인 주나라 궁궐로 찾아갔는데, 주나라 대신들은 이미 그를 알고 있어서, 그에 대한 편견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다시 진나라로 찾아갔는데, 이때 진나라에서는 '상앙'이 처단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소진과 같은 자들을 경계하였다. '조나라'에서도 실패한 소진은 마침내 '연나라'에 가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연 문후'에게 연나라, 제나라, '초나라',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의 6국가가 세로로 연합하여(종적), 진나라와 대적하자는 '합종'의 계획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찬성한 연 문후는 소진을 지원해 주기로 하였고, 기원전 333년 결국 소진은 6개국에 걸친 거대한 동맹을 만들어내었고, 이로 인해 진나라는 15년 간이나 '함곡관' 밖으로 군대를 보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는 후에 친구인 장의가 시행한 위나라, 조나라, 한나라, 제나라, 진나라 등을 가로로 연합한 '연횡'과 함께 '합종연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무런 관직도 없던 소진은 이렇게 대단한 외교술을 펼치고, 무려 6개국의 재상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된 소진은 많은 호위병에게 둘러쌓여, 큰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전에는 홀대하던 가족들이 지금은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빈곤하면 부모도 모른척하고, 부귀해지면 친척도 경외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중국 고전의 자료 부족

소진에 대한 기록은 주로 '사마천'의 '사기'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이 기록에는 모순되는 점이 많이 있다고 한다. 친구였다는 장의와 한세대 이상 차이나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동생인 '소대'의 기록을 보아도 수십년 이상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사기에 나온 소진의 주 활동시기에는 합종을 맺어서 대항해야 할 정도로 진나라가 강국이 아니었다고 한다. 애초에 소진의 생몰년 자체도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이며, 비단 소진뿐만 아니라 많은 전국시대의 명사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이는 후에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서 '분서갱유'를 했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소실되어서 이기도 할 뿐더러, 시기 자체가 상당한 고대시대이기 때문에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자료의 손실이나 왜곡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에도 중국의 많은 문화재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나 로마로 대표되는 서양 고대사에 상대적으로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것을 축복받은 일일 것이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