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장 「전단」
- 역사
- 2023. 2. 4.
제나라의 멸망의 위기
'전단'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전단은 본디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 사람으로, 제나라의 왕족인 '전'씨의 먼 친족이라고 한다. 그는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에서 시장을 관리하는 직책에 있었다고 한다. 제나라는 원래 '태공망'이 건국하여 '여'씨의 국가였다고 하나 후에 신하였던 전씨가 찬탈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284년 '제 민왕'은 강력한 국력을 믿고 교만하였는데, '연나라'의 명장 '악의'가 합종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는 수도인 임치까지 점령하였다. 제 민왕은 '거' 땅으로 달아났고, 전단 또한 안평 땅으로 피난을 가게되었다. 그러나 제나라에는 아직 70개가 넘는 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제나라 사람들은 방심하고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안평으로 피난 온 전단은 사람들에게 수레의 바퀴를 철로 보강하도록 권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악의는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의 성들을 차례차례 공략하였고, 악의가 안평을 공격하여 함락시킬때,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도망치다가 수레가 부서져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전단은 다시 연나라의 군대를 피해 '즉묵'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나라는 5년에 걸쳐 70여 성을 다 빼앗기고, 오직 거와 즉묵만 남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제 민왕은 구원을 위해 '초나라'에서 온 '요치'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인 제 양왕이 즉위하여 거를 지켰다. 악의는 먼저 즉묵을 함락시켜 거를 고립시키기로 한 것 같은데, 즉묵은 '대부'라는 자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는 연나라와의 전투중에 전사하게 된다. 이에 즉묵에 있던 제나라 사람들은 안평에서 지혜를 발휘한 전단을 생각해 내고, 그를 장군으로 추대하여 즉묵을 맡겼다. 이로서 전단은 역사의 전면에 나오게 된다.
이간의 계
그러나 장군으로 즉묵을 통제하게 된 전단에게도 악의가 지휘하는 군대와 싸워서 이길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중 기원전 279년 연나라의 '연 소왕'이 죽고, 태자인 '연 혜왕'이 즉위하였다. 연 혜왕은 악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전단은 이을 이용하여 상황을 타계하기로 마음 먹었다. 전단은 연나라에 첩자를 보내어 '악의가 제나라의 성 두개만 남겨 놓고 시간을 끄는 이유는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며, 제나라 사람들은 다른 장수가 와서 제나라를 멸망시킬까 두려워 한다'고 소문을 퍼트리게 했다. 연 혜왕은 악의를 연나라로 소환하고 '기겁'을 대신하여 파견하였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였으며, 이러한 처사를 본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수년에 걸쳐 악의의 지휘를 받으며 함께 싸워온 병사들 입장에서 보게되면 상당히 불만스러웠을 것 같다. 전단은 자신의 계책이 성공한 것을 보고 연나라 군대를 물리칠 다음 계책을 준비하였다. 먼저 전단은 안으로는 신령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니며, 병사 중 한명을 신령처럼 꾸미게 하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는 것처럼 하고, 신령이 제나라를 돕고 있다고 퍼트려 사기를 고취시켰다. 밖으로는 성 안의 제나라 사람들이 성 밖에 있는 조상들의 무덤이 훼손될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제나라 사람들은 상심할 것이라고 퍼트렸다. 이 소문을 들은 기겁은 연나라의 병사들을 시켜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불태우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으나, 오히려 제나라 사람들은 분노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성벽에서 병사들을 내리고 노인이나 아이들을 올려보내고, 거짓으로 항복을 청하는 등, 안팍으로 우군의 사기를 복돋우며, 연나라 군대가 방심하도록 유도하였다.
화우지계
충분히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전단은 결전을 준비하였다. 성 안에 소 1000마리를 모아서 붉은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소 뿔에는 칼을 달고, 꼬리에는 횃불을 부착하였다고 한다. 한밤중에 몰래 성 밖으로 소를 몰아, 꼬리의 횃불에 불을 붙이고, 연나라 진영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그 뒤로 병사들이 따라가게 하여, 연나라 진영을 급습하였다. 이 싸움에서 연나라를 크게 패하였으며, 적장 기겁은 전사 하였다고 한다. 단 한번의 싸움으로 연나라를 물리친 전단은 기세를 몰아 빼앗긴 70여개의 성을 모두 되찾았으며, 거에 머물던 제 양왕을 수도인 임치로 다시 모셨다고 한다. 전단은 이 공으로 안평군으로 봉해져 제나라의 상국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즉묵의 싸움에서 '화우지계'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전단은 이후에 오랑캐를 정벌하거나 연나라에 빼앗긴 남은 성을 되찾아오는 등의 공을 제나라에서 쌓았다. 기원전 265년에는 조나라의 요청으로 조나라 군대를 이끌고 연나라와 싸웠다고 한다. 이듬해 기원전 264년에는 조나라로 가거 '조 효성왕' 밑에서 재상을 지냈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들은 현대의 역사서들 처럼 시간순서에 따라 명확하게 기록되었던 것이 아니라서 불분명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전단이 제나라에서 조나라로 옮기게 된 경위나 조나라에서 재상이 된 후의 기록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중국의 뛰어난 인물 중에 한명이었다는 것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