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제국 황제 암살 미수범 악녀 「안니아 루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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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황제의 아내 아우구스타

'안니아 아우렐리아 갈레리아 루킬라'는 로마 제국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황비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 미노르'와의 사이에서 14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많은 자식들이 어렸을때 사망하여, 최종적으로 4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만이 살아남아 성장하였는데, 루킬라도 어렸을때 언니와 쌍둥이 오빠가 죽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녀가 되었다. 이후 그녀의 동생으로 외아들이 된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가 후에 성장하여 17대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녀가 태어났을때는 아버지인 아우렐리우스는 아직 황제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파우스티나의 아버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시기로, 사실상 아우렐리우스가 다음 황제에 취임하는 것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어렸을때부터 황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녀의 첫 남편은 '루키우스 베루스'인데,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같이 공동 황제로 취임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16세에 황후의 자격으로 '아우구스타'의 존칭을 부여 받게 되었다. 164년 루킬라와 베루스는 결혼할때 18살이나 나이차가 났었는데, 사실 베루스의 전 약혼자가 바로 루킬라의 어머니인 파우스티나였다. 그러나 안토니누스 황제의 영향으로 파우스티나가 아우렐리우스와 결혼하게 되면서,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첫 딸을 베루스에게 시집보내게 되었다. 이로인해 루킬라는 전 황제들의 혈통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 황제의 딸이자, 또 다른 공동 황제의 황후로서, 당시 로마에서 명실상부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 존경 받으며, 로마의 정계나 사교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169년에 베루스가 전장에서 귀국하다가 사망하면서, 그녀의 앞길에 어둠이 드리우게 되었다.

황제의 딸이자 로마의 귀부인

당시 로마의 문화는 이혼, 혹은 사별한 여성이 재혼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우렐리우스는 금방 사별한 장녀의 새로운 결혼자리를 주선하였다. 상대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로 황제의 충신이었으며, 뛰어난 군단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루킬라와 파우스티나는 그를 싫어했는데, 그가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군 복무를 통해 벼락 출세한 로마의 신참자이기 때문에, 유서깊은 가문인 루킬라와 격이 맞지 않는다고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와 루킬라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싫어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전남편인 베루스와의 나이차이를 생각하면 그냥 핑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런 표면적 이유 외에, 그 이면에서 이유를 찾기도 하는데, 재혼을 통래 루킬라가 황후의 지위를 잃게 되어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악녀로 대표적인 '발레리아 메살리나'나 '율리아 아그리피나'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에서 악녀 취급 당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데, 당시는 고대사회로 일반적으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관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문의 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을 내세워야 했기 때문에,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위해 음모에 가담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로마의 안정과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위하여 아우렐리우스는 170년 딸의 결혼을 강제로 성사시켰다. 그녀의 새 남편인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는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황제 암살 미수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내인 루킬라와 사이가 좋지 않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에게 신뢰받지는 못 한 것 같다. 어머니인 파우스티나가 사망하고, 176년 콤모두스는 정식 후계자로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콤모두스가 16세가 되던 178년, 아우렐리우스는 콤모두스를 '브루티아 크리스피나'와 결혼시켰다. 그때까지 루킬라는 외적의 침공과 잦은 병세로 황제가 로마에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로마의 정치적 결정들에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콤모두스의 후계구도가 완성되면서 그녀의 영향력은 점차적으로 축소되어 갔다. 이 때문에 그녀는 동생이자 후계자인 콤모두스와 장차 황비가 될 크리스피나에 대해 상당한 시기심을 가진 것 같다. 180년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하고 콤모두스가 황제에 취임하면서, 그녀는 로열패밀리이자 아우구스타로서 정치에 간섭하던 자리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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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암살 미수 사건

182년 콤모두스가 황제가 된지 2년째, 그는 콜로세움에서 암살자에게 습격을 당하였다. 암살자는 콤모두스에게 '원로원이 너에게 이 칼을 보내노라'라고 외치면서 습격하였는데, 이러한 번거로운 행동을 취하느라 암살에 실패하고 호위병들에게 잡히게 된다. 이 서투른 암살자는 바로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로 루킬라의 남편인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의 조카 였다. 암살자가 원로원을 들먹였기 때문에 곧바로 고문을 동반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도 밟지 못하고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 조사에서 암살 미수 사건의 주범이 황제의 누이인 루킬라가 지목되었고, 연루자로 그녀의 딸인 '루킬라 플라우티아' 등 황제의 가족과 친척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콤모두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콤모두스가 황제로서 어울리지 않는 철없는 행동들을 보였으나, 사건 이후 성격이 완전히 바뀐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폭군이 되는 것을 보고, 콤모두스가 로마의 폭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을 루킬라의 탓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콤모두스가 제국을 망가트린 폭군이기 때문에, 루킬라의 이러한 콤모두스 암살의도를 좋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루킬라는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의 주범으로 로마에서 추방되어 '카프리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곧 황제는 부하를 보내 그녀를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싫어했던 그녀의 남편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부탁을 성실하고 충직하게 이행하여 콤모두스를 도우려 했으며,

로마 정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겸손하게 살았던 것 같다. 루킬라는 로마의 악녀 중에 한명으로 평가 받고는 있지만, 메살리나나 아그리피나처럼 사생활에 대한 악평이나, 정치적 악행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는 그녀가 정식적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지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녀가 처단된 이후 집권한 콤모두스의 폭정이 한 몫 하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 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서 로마 제국의 쇠퇴가 확실히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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