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37대 황제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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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분열된 제국의 황제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는 214년경 '다뉴브 강' 인근의 '일리리아'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현지인의 농민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235년경부터 군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갈리에누스' 황제의 기병대 지휘관인 '아우레올루스' 휘하에서 기병 군단의 장교로 공적을 쌓았을 것으로 보이며, 갈리에누스 암살 이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황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승진하였으며, 269년 발칸 반도를 침략한 '고트족'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작전에서 고트족과 로마 군단에 전염병이 돌았고, 270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도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는 원로원 의원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던 것 같은데, 원로원은 곧 바로 그의 동생이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틸루스'를 다음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다뉴브 강 일대에 주둔해 있던 로마 군단에서 퀸틸루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자신들과 함께 전선에서 싸운 아우렐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원로원은 퀸틸루스의 황제 추대를 취소해 버렸다. 퀸틸루스를 지지했던 군단 병사들도 등을 돌렸고, 그는 사망하였는데, 사망 원인이나 내용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로서 정식 황제가 된 아우렐리아누스 였지만, 그가 통치해야 할 로마 제국은 이미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이 떨어져나가 3개의 제국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게르만족의 침략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키아 속주 포기

아우렐리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 270년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에 속해있던 '팔미라'에서 팔미라 제국의 건국을 외치며 분리독립하였고,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지역을 침공하며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이러한 반역 행위를 용인할 수 밖에 없었는데, 로마 제국에는 더 먼저 처리해야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다. 아우렐리아누스는 먼저 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난동을 부리던 '반달족'을 격퇴하였으며, 이듬해인 271년 '판노니아' 지역까지 쫒아가 반달족은 다뉴브 강 이북으로 완전히 몰아내었다. 그러나 그 틈을타고 이번에는 '알레만니족'이 이탈리아로 쳐들어와서 약탈하였고, 이에 아우렐리아누스는 급하게 이탈리아로 돌아왔지만, 로마 군단은 '플라켄티아'(현재의 피아첸차) 인근에서 매복하고 있던 알레만니족에게 패배하게 된다. 이 패배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면서, 한때 로마는 절망에 빠졌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군단을 다시 수습하여 '파노 전투'에서 알레만니족을 물리쳤다. 그의 공적은 칭송받았지만,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게르만족'의 침략의 위협이 결국 로마에까지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세르비우스 성벽'을 허물어 로마에서 성벽이 완전히 없어진지 300년만에 다시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안정시킨 아우렐리아누스는 이번에는 '다키아' 속주를 침략한 고트족을 막기 위해 출정하였다. 로마 군단은 다키아 속주에서 고트족을 격퇴하고 다뉴브 강 건너까지 추격하여 고트족의 왕인 '칸나바우데스'를 죽이기도 하였지만,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략에 취약한 다키아 속주를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키아 속주는 로마 제국의 영토 북쪽으로 돌출된 형태였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불리하였고, 실제로 갈리에누스는 집권동안 계속되는 이민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갈리아 제국의 분리독립을 용인하는 등 로마 제국 내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아우렐리아누스는 과감하게 영토를 포기하여 전선을 줄이고, 로마 제국 내부를 관리하는데 집중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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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 제국의 멸망

272년 팔미라 제국은 이집트에서 로마로 수송되는 곡물의 수출을 막아, 로마의 식량사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에 아우렐리우스는 그동안 로마의 북쪽 전선을 안정시키는데 힘쓴 보람도 있어, 로마 제국의 동방 영토를 안정시키기 위해 원정을 떠나게 된다. 아우렐리우스는 부하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에게 함대를 주어 이집트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직접 군단을 이끌고 소아시아 지역을 통해 팔미라 제국으로 쳐들어갔다. 팔미라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제노비아'는 자신의 아들이자 표면적인 통치자인 '셉티미우스 바발라투스'와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저항했다. 그러나 로마 군단은 거점 도시들을 차례로 무너트렸고, 이러한 연승에 더해 아우렐리아누스의 관대한 처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팔미라 제국에 가담한 도시들의 결속력이 약해졌다. 팔미라 제국의 군대은 제노비아와 '셉티미우스 자브다스' 장군의 지휘 아래 '안티오키아'와 '에메사'에서 두번이나 로마 군단과 격돌하였지만 패배를 면치 못하였고, 이내 팔미라로 돌아가 농성하였다. 그러나 이집트까지 함락되면서 팔미라 제국은 무너지게 된다. 제노비아는 도시를 탈출하여 도주하였으나 생포되어 포로가 되었고, 자브다스는 이후 도시를 포기하고 항복하였지만 책임을 물어 처형당했다.

갈리아 제국의 멸망

274년 제국의 동쪽을 안정시킨 아우렐리아누스는 서쪽의 갈리아 제국을 다음 목표로 삼았다. 두 제국의 군대가 대치한 가운데 아우렐리아누스는 먼저 외교적으로 이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하였다. 당시 갈리아 제국의 황제였던 '테트리쿠스 1세'는 자신의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아들이자 공동 황제인  '테트리쿠스 2세'와 함께 로마로 귀순하였다. 그러나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는데, 이 사실을 알게된 갈리아 제국의 병사들이 로마에 항복한 두 황제를 비난하고 결사 항전을 표명한 것이다. 결국 로마 군단과 갈리아 제국의 군대가 맞붙었고, 치열한 격전 끝에 갈리아 제국은 로마 제국에 복속되었다. 갈리아 제국을 점령한 아우렐리아누스는 팔미라 제국을 점령할때와 같이 관대한 처분을 내렸는데, 점령된 갈리아 제국의 관료들이 계속 자신의 자리에서 정무를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루그두눔'(현재의 리옹)을 점령하고서는 막대한 벌금을 내렸다고 한다. 사실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은 분리되기 이전에 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며, 다시 영향권안에 넣고서는 즉시 제국의 일원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관대한 처분을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로서 로마 제국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황제암살

로마 제국의 적들을 물리친 아우렐리아누스는 제국 내부의 개혁을 시작하였다. 그는 '솔 인빅투스'(Sol Invictus)를 중심으로하는 태양신 숭배를 통해 제국을, 신앙을 통해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리고 저질 동전을 양산하는 주조업자들을 단죄하고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5%의 은을 함유한 새로운 동전을 주조하게 하고, 오래된 저질 동전들을 회수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 로마에 난립한 경재단체들을 제제하고, 주식인 밀의 유통구조를 일원화하여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로마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던 무상배급을 조정하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이렇게 군사적인 부분도, 내정적인 부분도 높은 평가를 받는 뛰어난 황제였지만, '군인 황제 시대'의 황제다운 최후를 피하지는 못 하였다. 275년 로마는 페르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동방 원정을 감행하였는데, 원정 중 아우렐리아누스와 마찰을 빚은 비서 한명이, 사형집행서를 위조하였고, 이를 빌미로 관료들을 협박 및 회유하여 황제를 암살하였다. 이때 아우렐리아누스는 61세로 황제가 된지 5년만이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유능한 만큼 지나치게 엄격했는데, 그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예외가 없었으며, 많은 범법자들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위조문서에 속은 자들이 처형될 것을 두려워해서 암살을 했다는 것인데, 지나치게 엄격한 만큼 재판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발행된 사형집행서에 속았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어쨌거나 암살 이후 이 문서가 위조인 것이 밝혀졌고, 이에 암살에 가담한 자들은 후회했으며, 일부는 스스로 자결하였다고 한다. 나머지 가담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이런 유능한 황제의 갑작스러운 암살때문인지, 이후 몇개월간 로마에는 황제가 비어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가 원로원에 의해 선출되어 다음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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