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41대 황제 「마르쿠스 누메리우스 카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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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사산왕조의 페르시아 원정

'마르쿠스 누메리우스 카루스'는 222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의 출생지나 부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카루스가 본래 로마인이 아니었다는 내용도 있는데, 당시가 '군인 황제 시절'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카루스의 출세 경위나 공직 경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행정적인 경험과 군사적인 경험 모두 풍부하며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했던 것 같다. 282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황제의 근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프로부스는 바로 그 해에 '페르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동방 원정을 떠났는데, 원정 도중 이루어진 토목 공사에 대해 불만을 품은 군단의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켜, 병사들의 손에 의해 살해 되었다. 이후 근위대와 군단의 병사들의 추대에 의해 카루스가 황제에 취임하게 된다. 선 황제가 암살되고 근위대장이 다음 황제로 추대된 만큼 계획된 암살을 의심해 볼 수 있지만, 카루스는 사건에 연루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고, 관련자들을 처벌한 후에 원로원에 자신이 황제가 된 경위를 통보하는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는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도 있다. 카루스는 황제가 된 후에도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원정을 계속하기로 하였는데, 자신의 두 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우스 누메리아누스'를 후계자로 선포하고, 카리누스는 로마 제국의 서쪽을 안정시키도록 보냈고, 누메리아누스는 자신과 함께 원정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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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을 맞고 죽은 황제

카루스는 먼저 '사르마티아족'을 공격하여 '일리리아' 지방의 안전을 확보하였고, 소아시아 지역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쳐들어 갔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은 '바흐람 2세'였는데, 페르시아 내부의 문제 때문에 로마의 침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이는 로마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카루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은 '셀레우키아'와 '크테시폰'을 함락시켰으며, '티그리스 강' 유역까지 진군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은 로마의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283년 카루스는 원정 중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심한 폭풍우가 몰려왔고, 뇌우가 쏟아져서 주둔지가 혼란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벼락이 황제의 천막에 내리쳤다. 천막에 붙은 불은 금방 진화하였지만, 카루스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폭풍우가 몰아친 틈을 타서 황제를 암살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런 변고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으며, 더 이상의 원정을 거부했다고 한다. 황제위는 후계자인 그의 아들들이 물려받게 되었지만, 이듬해인 284년에 누메리아누스가 먼저 암살 당하였고, 285년에는 카리누스도 누메리아누스가 암살되고서 황제로 추대된  '디오클레티아누스'와의 분쟁에서 부하에게 배신당하여 암살당했다. 군인 황제 시대에 많은 황제들이 주로 암살을 통해 죽음을 맞았지만, 벼락을 맞고 죽은 지배자는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아주 드문 경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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