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해적의 황금시대 마지막 대해적, 검은 준남작 「바솔로뮤 로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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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노예 운반선의 항해사

'바솔로뮤 로버츠'(Bartholomew Roberts)는 1682년 영국의 웨일스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다른 해적들처럼 그의 출신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13세 무렵인 1695년부터 선원으로서 바다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719년 로버츠는 노예 운반선의 2등 항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탄 선박이 항해 도중 해적의 습격을 받아 서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인 '골드코스트'(가나)의 '아노마보' 인근에서 나포되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로버츠는 해적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당시 그의 선박을 습격했던 해적들의 선장이었던 '하웰 데이비스'가 로버츠의 항해사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해적으로 전직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로버츠는 그동안 적은 임금에 고된 노동, 보람 없는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같은 웨일스 출신인 데이비스가 웨일스어로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포섭하였고, 결국 로버츠는 평범한 선원에서 해적으로 전직하게 된다. 얼마 후 해적단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프린시페 섬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그들은 영국 군함으로 위장하여 입항을 허가받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데이비스는 프린시페의 총독을 선상으로 초대하였는데, 그는 총독을 인질로 삼아 몸값을 받아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총독은 도리어 먼저 와인이나 한잔하고 가라며 그를 요새로 불렀고, 그 요청에 순순히 응했던 데이비스는 도중에 매복 공격을 받아 사망하게 된다. 사실 프린시페의 총독은 그들이 해적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데이비스의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역으로 그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해적들은 급히 프린시페 섬을 빠져나왔지만 선장은 이미 죽은 뒤였는데, 그들은 투표를 통해 다음 선장으로 로버츠를 추대하였고, 이때 로버츠는 어차피 해적질을 할 거면 선장을 하는 게 더 났겠다고 하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가 해적 선장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데이비스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며칠 후 프린시페로 돌아왔으며, 야음을 타고 섬에 상륙하여 철저한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버츠의 행동은 만나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이비스와의 우정으로 인한 복수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고, 아마 해적단의 신임 선장으로서 부하 해적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그들은 그대로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몇 차례 약탈에 성공한 것 같은데, 이를 통해 로버츠는 부하들의 신임을 얻어 선장의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었고, 다음 목표를 투표로 정해 아프리카를 떠나 남미로 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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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준남작

로버츠의 해적단은 브라질의 올세인츠 만에서 포르투갈의 대형 선단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42척의 선박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70문의 대포로 무장한 두 척의 호위함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로버츠와 해적들은 이 선단을 성공적으로 나포하였고, 어마어마한 수준의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40,000여 개에 달하는 포르투갈 금화인 '무이도르'(모이도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곧장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향해 전리품을 처리하였고, 다시 수리남 강에서 슬루프를 나포하기도 하였다. 이때 로버츠는 함선을 부하 '월터 케네디'에게 맡기고 슬루프를 타고 새로운 목표물을 추적하였는데, 무풍으로 인해 8일간 고립되었고, 이윽고 복귀하였을 때 케네디는 이미 그들을 포기하고 떠나가 버린 후였다고 한다. 로버츠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슬루프에 '포츈'이라고 명명하고 기함으로 삼았으며, 흔히 '해적 코드'라고 하는 일종의 행동 강령을 만들어 맹세하도록 하였는데, 배신에 대해 상당히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1720년에는 프랑스의 해적과 연합하였으나, 바베이도스의 주민들이 해적 대책으로 준비해 둔 무장 함선의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었으며, 배를 수리하기 위해 들린 도미니카에서 마르티니크에서 온 해적 사냥꾼의 함선을 만나기도 하면서, 바베이도스와 마르티니크에 대한 원한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로버츠는 포츈을 타고 북아메리카로 향했는데, 그는 노바스코샤의 캔소를 습격하고 인근의 배들을 습격하며 해적질을 이어갔으며, 페리랜드의 항구를 습격하여 한번에 12척의 배를 나포하기도 하였다. 그는 다시 트레패시의 항구를 습격하여 22척의 선박을 나포하였는데,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란 선장과 선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모두 도망쳤다고 한다. 이때 로버츠는 도망친 선장들을 향해 비겁하다고 비난하면서, 총을 쏘며 배를 불태우겠다고 협박하여 선장들을 모두 자신의 배로 집합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로버츠는 이곳에서 나포한 프랑스 선박 중 하나에 '굿 포츈'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 기함으로 삼았으며, 충분히 해적단의 규모를 늘린 후에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로버츠는 세인트키츠섬 인근에서 해적기를 달고 드럼과 트럼펫을 연주하면서 배들 사이를 항해했다고 하는데, 이때 주변의 모든 배들이 깃발을 내리고 항복의 표시를 나타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 이때 마르티니크 총독이 탄 프랑스 군함을 발견하였는데, 로버츠는 이를 습격하여 나포에 성공하였으며, 그대로 선상에서 총독을 처형했다고 한다. 로버츠는 나포한 총독의 군함에 '로열 포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배로 삼았다. 1721년 초의 서인도 제도는 로버츠의 해적단의 횡포로 무역이 거의 정지되다 시피하였고, 토벌대가 올 것을 우려한 로버츠는 다시 서아프리카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로버츠는 자신의 항해사 경험을 살려서인지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였는데, 불리하다 싶은 해역에서는 재빠르게 철수하였고,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많은 배를 손쉽게 나포할 수 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 평소에 럼이 아닌 차를 마셨다고 하며, 선원들이 취해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러한 성향에 더해 키 크고 잘생긴 외모와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기 때문인지 '검은 준남작'(Black Bart)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지막 대해적

서아프리카에서 로버츠는 자신을 추격해 온 프랑스 군함 두 척을 역으로 습격하여 나포하는 등 시작부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대로 두 척의 군함을 함대에 추가하였다. 이후 라이베리아에서 두 척의 대형 선박을 나포하였는데, 여기에는 케이프코스트 성으로 호송되는 병사들이 실려있었고, 이들 중 많은 숫자가 해적에 가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1722년 배냉의 우이다 항구에서는 그곳에 정박하고 있던 11척의 선박을 나포하였는데, 선장들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해방해 주었으며, 그중에 합의에 거부한 선장의 배는 그 자리에서 불을 질러서, 화물로 배 안에 실려있던 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대로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로버츠의 해적단은 서아프리카의 해안을 따라 내려가며 해적질을 이어갔는데, 가봉의 케이프 로페즈 인근에서 영국의 군함 '제비호'(HMS Seallow)를 만나게 된다. 제비호는 해적 함대를 만나자 방향을 돌려 도망치는 상선인척 유인하였는데, 해적 함대에서 레인저호 한 척만이 추적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윽고 제비호와 레인저호는 로버츠의 해적단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질 수 있었고, 기회를 노리던 제비호가 포격을 시작하면서 레인저호는 제압당하였고, 해적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이후 제비호는 다시 케이프 로페즈로 돌아왔는데, 이때 로버츠와 해적단은 전날의 습격이 성공한 것을 축하하느라 대부분 숙취상태였다고 한다. 해적단은 제비호를 너무 늦게 발견하여 도주하지 못하였는데, 로버츠는 한 번의 포격을 나눈 후 이탈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마저 실패하였다. 제비호가 다시 로열 포츈에 포격하였을 때 로버츠는 포도탄을 맞고 즉사하였으며, 부하들은 그의 시체를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그대로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결국 로버츠의 해적단은 모두 붙잡혔는데, 교전으로 죽은 해적은 3명밖에 없었다고 하며, 로버츠의 시체를 끝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로버츠는 죽지 않았으며 그가 무적이라는 소문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로버츠 휘하의 해적단은 총 272명이었는데, 그중 해방노예였던 65명은 다시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 54명만이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그중 2명은 형이 유예되었다. 로버츠는 사략 해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는 순수한 해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해적활동을 하며 400척이 넘는 배를 약탈하고 막대한 전리품을 챙겼다고 하는데, 알려진 내용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의 해적단의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거나, 혹은 그의 업적이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이며, 그것도 아니라면 해적이 창궐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또 해적이 몰락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 혜택을 보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이후 해적들은 확실히 몰락하여 더 이상 대해적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로버츠는 마지막 대해적으로 해적의 황금시대를 끝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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