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 시대의 미남 장군 난릉왕 「고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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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릉왕

북제의 황족 고장공

'고장공'(高長恭)의 할아버지는 '고환'이라는 인물인데 '북위'의 중신으로, 후에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의 둘째 아들인 '고양'이 '북제'를 건국하면서 '신무제'로 추존되었다. 아버지는 고환의 장남인 '고징'인데, 고환이 실권을 잡고 있던 동위의 중신으로 활동하였으며, 29세의 나이로 암살되었다. 사망 당시 고징의 장남인 '고효유'는 13세의 어린나이 였기 때문에, 고징의 동생이었던 고양이 뒤를 이어받았으며, 후에 북제를 건국하면서 고징을 '문양황제'로 추존하였다. 고장공은 고징의 넷째아들인데, 장공은 자로, 그 이름은 숙(肅)이며 효관(孝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541년 고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의 어머니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좋은 신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550년에 고양이 북제를 건국하면서 북제의 황족이 되었고, 559년에 '난릉왕'(蘭陵王)에 봉해졌다. 남북조 시대는 기본적으로 중국 북쪽에 이민족들이 세운 북왕조와 남쪽의 한족이 세운 남왕조가 대립하는 가운데, 여러 나라가 세워지고 쓰러지고를 반복하며, 모략과 싸움이 난무하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이러한 시기에 북제의 황족이자 장군이었던 고장공은 여러 싸움에서 승리하며 공을 세웠다. '병주자사'로 임명된 고장공은 '돌궐'과 싸워 분전하여 요격하였으며, 564년 '북주'가 북제의 수도 '낙양'을 공격하여 10만명의 병사들로 포위하자 구원을 위해 출진하였다. 그가 기병 500명을 이끌고 '금용성'에 이르렀으나 성안이 병사들이 적일까 두려워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하였는데, 고장공이 투구를 벗고 얼굴을 보여주자 단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는 '반악', '송옥', '위개'와 함께 중국의 4대 미남으로 꼽힐 정도라고 하는데, 외모가 아름다우면서도 용맹한 그가 도착하자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서 단번에 적을 격퇴하였다고도 한다. 이 때의 승리를 기려서 병사들이 '난릉왕 입진곡'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불렀으며, 그가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되서 철로 된 가면을 쓰고 다닌다거나, 일부로 투구를 써서 여성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감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전투에서 유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전공과 인기 때문에 그의 사촌이자 북제의 황제였던 '고위'가 그를 시기하였다고 한다.

고장공의 최후와 북제의 최후

고장공은 황제에게 미움을 사 숙청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부로 전리품을 탐하거나 전공을 세우는 것을 꺼리며, 안 좋은 평판이 생기도록하였고, 병이 생겨도 치료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위는 북제의 5대 황제이자 사실상 마지막 황제 였는데, 간신들에게 휘둘리며 유능한 인물들을 숙청하는 등 폭정을 일삼아 북제가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한 고위를 조심한 고장공이었으나, 그 또한 고위의 시기심을 벗어나지 못하여, 573년 고위에게 독약을 받아 숙청되었다. 이후 고작 4년만인 577년 북제가 멸망하게 된다. 고장공은 그 외모와 뛰어난 장군으로서의 능력 뿐만 아니라, 인격도 매우 뛰어났다고 하는데, 군공 등으로 하사받은 물건들을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잘못을 저지른 부하를 안심시키고 작은 벌을 주어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인물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북제가 또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의 기록들은 모호한 점도 많아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을지는 읽는 사람의 판단에 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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