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고귀한 혈통의 악녀 「율리아 아그리피나」

반응형

아그리피나

로마 최고의 영웅들의 피를 이어받은 여성

'율리아 아그리피나'는 부계와 모계를 모두 통해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은 카이사르 가의 직계 황족이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혈육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大율리아)이고, 아버지인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옥타비아'의 외손자가 된다. 그녀는 부계와 모계를 통해 로마의 명문 귀족인 '율리우스 가문'과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인 '율리아 안토니아'(小안토니아)를 통해 '안토니우스 가문'의 피도 이어받았다. 이러한 가계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로마 최고의 영웅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의 혈통에, 아버지는 로마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게르마니쿠스이고, 오빠는3대 황제인 '칼리굴라'이며, 남편은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이다. 나아가서는 자녀가 5대 황제인 '네로'이기 때문에, 만약 로마가 혈통 중심으로 승계되는 국가 였다면, 그녀는 황족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녀의 아버지 게르마니쿠스는 그 혈통과 로마 시민들 사이의 인기 등을 고려했을때,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 사후에 황제 취임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동방 원정중 병사하였다. 당시 로마에서는 그와 함께 동방에 있었던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피소가 티베리우스와 친하였기 때문에 티베리우스의 명령으로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로마로 돌아온 그녀의 어머니는 이러한 의심에 빠져서 티베리우스와 공공연하게 대립하였다. 이후 티베리우스의 의도인지 아니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의 독단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어머니와 큰 오빠는 반역죄로 기소된 뒤에 추방되어 그곳에서 사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둘째 오빠도 세야누스에 의해 고발되어, 황궁 지하에 유폐되어 아사하였다고 한다. 가문의 유력자들이 정치적 음모에 의해 처단되면서 자연스럽게 황궁에서 벗어나서 증조모와 조모 아래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녀는 13세에 티베리우스의 주선으로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낳았다. 그러나 도미티우스 가문은 로마 공화정 말기때부터 악평이 자자 했던 것 같은데, 그녀의 남편인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그러한 악평에 피해를 본게 아니라, 본인이 악평을 증명하는 듯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라도 로마의 집정관에 취임했었는데, 결국 집정관 시절에 벌인 범죄로 인하여 고발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37년 티베리우스가 사망하고 칼리굴라가 황제에 취임하면서, 모든 사형수들을 사면하면서 목숨을 건졌다. 오빠인 칼리굴라가 황제에 취임하면서 다시 지위가 올라간 그녀 였지만, 39년 자매들과 매제인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황제 암살을 계획한 혐의로 고발되었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죄를 인정하고 처형되었으며, 아그리피나는 섬으로 추방되었고 모든 재산은 국고로 몰수 되었다.

반응형

로마로 복귀하여 황제와 결혼

칼리굴라가 재위 4년만에 암살되고, 다음 황제로 삼촌인 클라우디우스가 취임하면서, 아그리피나도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아그리피나의 첫남편인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아들을 낳은지 2년만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 파시에누스'와 재혼했었는데, 이시기에는 이미 두번째 남편도 사망한 터라 외아들과 둘만 남았었다. 그러다가 클라우디우스의 황비 '발레리아 메살리나'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사형당하면서, 그녀는 다시 황궁으로 복귀하게 된다. 클라우디우스의 측근인 그리스인 해방노예 비서 3인은, 황제에게 새 황후를 들일 것을 권하였는데, 그 중에 '팔라스'라는 비서가 황제의 정통성을 위해 아그리피나와 결혼할 것을 추천하였다고 한다. 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조카인 아그리피나의 결혼에 대해,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은 강력히 반대하였는데, 황제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하였다. 이 비서인 팔라스는 오래 전부터 아그리피나의 가문에 헌신해왔는데, 그녀는 황궁으로 복귀하자 팔라스와 함께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는 이미 '브리타니쿠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황제로 만들려고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고, 소심한데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온 탓인지 아내들의 행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그리피나는 이런 점을 이용하여 황궁내 유력자들을 자신의 아들에게 붙여주었다. 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딸인 '옥타비아'의 약혼을 파혼시키고,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킨 후, 그대로 아들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에 입적시켜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로 개명시켰다. 그러한 가운데 건강하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갑자기 사망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버섯 요리에 의한 독버섯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람들은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황후에서 황제의 어머니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죽음과 새황제 네로의 취임은 완전히 같은 시기에 공표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죽음을 알았을때는, 이미 네로는 근위대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사실상 쿠데타나 다름없는 형태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아들인 '브리타니쿠스'를 밀어내고 황제에 취임하였다. 아그리피나는 황제이자 아들인 네로가 아직 어린 것을 핑계로 자신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였다. 그녀는 즉시 위험이 될 수 있는 다른 황족중 일부를 숙청하고, 클라우디우스의 측근인 3명의 비서 중 자신과 네로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나르키수스'와 '칼리스투스'를 처형하였다. 그녀는 다른 한명이자 자신을 후원해준 팔라스를 통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인 네로가 성년식을 치룬후에도 그녀는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고 두사람은 점점 갈등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혈통과 브리타니쿠스를 앞세워서 로마 시민들 앞에서 네로를 비판하였고, 그에 호응하는 로마 시민들을 본 네로와 그의 측근들은 위험을 느꼈다. 네로는 즉시 사람을 보내 브리타니쿠스를 암살하게 하고서는, 어머니인 아그리피나와는 화해하는 척 그녀를 선상파티에 초대하였다. 네로는 어머니가 파티에 참석하자, 배를 침몰시켰으나 아그리피나는 헤엄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결국 네로는 세간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병사를 보내서 자신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살해하였다. '이오카스테 콤플렉스' 혹은 '아그리피나 콤플렉스'라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하며 남편의 대리인이나 속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데, 바로 아그리피나와 네로의 관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전반적인 행동을 보면 아들인 네로에 대한 속박이나 의존 보다는, 아그리피나 개인의 권력욕이 두드려져 보이는 것 같다. 어렸을 적의 불행한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혈통에 대한 과대한 자부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결국 불행한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