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최고의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 역사
- 2023. 5. 30.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56년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 속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타키투스는 부유한 에퀴테스 계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로마에서 교육을 받고 로마 정계에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77년경 유능한 원로원 의원이자 로마 군단 지휘관이었던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대부터 공직경험을 쌓기 시작하여, 81년에는 재무관에 당선되었고, 88년에는 법무관에 당선되기도 하는 등, '쿠르수스 호노룸'의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정치적 지위를 상승시켰다. 타키투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로마 밖으로 나와 군단의 고문을 맡기도 했는데, 당시 도미티아누스는 원로원과 대립하여 여러 원로원 의원들이 숙청되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 밖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한 후에 원로원 의원이었던 '네르바'가 집권한 후에도 중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97년에는 '루키우스 베르퀴니우스 루푸스'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집정관의 자리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평온하게 생활한 것으로 추정되며, 113년에는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하기도 하였으나, 이 후로는 사실상 정치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 타키투스
타키투스는 87년 장인인 아그리콜라에 대한 전기(De Vita Iulii Agricolae)를 쓰면서 저술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 라인강 북부의 풍토와 주민인 '게르만족'에 대한 내용을 다룬 '게르마니아'(De origine et situ Germanorum)도 저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110년경에 '역사'(Historiae)와 '연대기'(Annales)도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키투스는 동시대의 역사가인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트란퀼리우스'가 주로 소문 등을 기반으로한 주관적인 추측에 의존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원로원 회의록이나 관보 등을 참조하였고, 실제 황제들의 서한이나 연설을 그대로 옮겨적기도 하였다. 그러나 타키투스 개인은 원로원 의원으로 제정보다 공화정을 옹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원로원 의원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 하였다. 또 도미티아누스 시절에 직접 탄압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칼리굴라'나 '네로', 또 원로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티베리우스' 황제 같은 경우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료를 기반으로한 역사적 서술은, 원로원 중심적인 시선도 포함하여, 당대의 로마 정계에서 상당히 높이 평가를 받았고,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小 플리니우스)는 타키투스를 '키케로'보다 위대한 저술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 타키투스의 서술은 신빙성있는 사료로 널리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