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세번째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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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틸리우스

왕정 로마의 역사는 제정 로마에 비해 관심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후에 제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로마의 기반이 이 시대에 나왔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누마' 이후 세 번째로 로마의 왕좌에 앉은 것이 바로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이다.

다시 라틴계가 왕으로

초대인 '로물루스'가 라틴계, 2대 왕 '누마'가 사비니계, 그리고 툴루스가 다시 라틴계이다. 라틴계가 왕이 되면 로마는 상당히 호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이후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등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라틴 민족은 비교적 공격적인 것 같다. 툴루스는 왕좌에 앉자마자 라틴 민족 통일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쟁을 시작한다. 이 무렵 로마는 아직 라틴 민족의 하나의 부족에 불과했다. 툴루스가 제일 처음 공격한 것은 인접국인 알바 왕국이다. 로물루스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로물루스의 출생국이며, 로물루스는 알바 왕국의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국경 부근에서의 농민의 싸움을 이유로 툴루스는 알바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 근처에는 거대한 에트루리아 왕국이 있었기 때문에 알바와 로마가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면 에트루리아가 어부지리를 얻게 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양국의 전쟁은 3대 3의 결투로 대결을 한다는 색다른 방식이 되었다. 아무래도 라틴 민족은 결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과의 결투가 없어졌지만 소와 사람과의 결투를 보고 있는 정도니까 말이다. 결국 결투에 이긴 것은 로마였다. 6명의 참가자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호라티우스' 한 명으로 나머지는 모두 죽어버렸다. 나중에 로마에는 투기장을 만들어 결투를 볼 정도니까, 싸움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알바는 로마의 종속국이 되었으나 알바의 왕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앞에서는 로마를 따르는 척하면서, 뒤로는 '피데나이'와 '베이이'라는 말한 주변 국가를 로마와 적대하도록 공작을 하기 시작한다. 옛날부터 비겁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탓할 수는 없다. 주변 국가를 격파한 툴루스는 알바를 공격하고 순식간에 왕을 사로잡았다. 이 배신자인 알바 왕은 소위 '거열형'의 말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극형을 선고받는다.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가 실시한 잔학한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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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스 없이는 카이사르도 없다

툴루스는 알바를 철저히 파괴했다. 그리고 거기에 사는 자들을 로마로 이주시켰다. 툴루스가 뛰어난 것은 알바의 백성을 노예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로 이주한 알바인은 로마인으로 받아들여졌고, 일부 유력자에게는 귀족의 지위가 주어졌다. 이때 귀족의 지위가 주어진 것은 퀸틸리우스 씨족, 세르비우스 씨족, 그리고 율리우스 씨족이다. 율리우스 씨족은 나중에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배출하고 로마의 역사,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크게 바꾸는 인물이 된다. 이 카이사르라는 남자의 이름을 독일어로 읽으면 '카이저(Kaiser)', 러시아어로 읽으면 '짜르(Царица)'이며, 그가 가진 군사적 지위가 '임페라토르(Imperator)'인데 영어로 하면 되면 엠펠러(Emperor)가 된다. 카이사르 본인은 황제가 된 적이 없음에도 황제라고 불리는 지위에는 카이사르의 이름이 붙는 것이다. 툴루스의 정책이 없었으면, 카이사르도 로마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툴루스도 역사를 바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 툴루스 평가

툴루스의 공적도 로마 전체로 보면 매우 높다. 로마가 라틴 민족의 패자가 된 것은 실질적으로 툴루스의 시대였고, 알바의 병합에 의해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어나 세수도 늘었다. 또 병역의 의무가 로마에는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강대한 국가로 성장한 것도 이 시대다. 로마를 도시에서 국가로 성장시킨 것이 이 툴루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툴루스의 통치 34년은 로마 도약의 기간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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