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로마의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야망
- 역사
- 2022. 12. 17.
로마의 첫 에트루리아인 왕
'로마'와 '에트루리아'는 서로 다른 나라이지만,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의 왕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5대째의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이다. 그렇지만 타르퀴니우스는 소위 순혈의 에트루리아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그리스인, 어머니는 에트루리아인이라는 혼혈이었던 것 같다. 북쪽 강국과 남쪽 강국 사이에 끼인 로마에서 양민족의 혼혈이 왕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를 포함해서 당시에는 민족 국가의 폐쇄적인 분위기로 이민족이 사회에 흡수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한 풍속이 원인이 되어 양민족이 쇠퇴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로마는 그러한 부분에 상당히 관대한 풍조가 있어, 출신지나 민족에 대해 편협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점, 필요한 점이 있다면 이문화도 차별 없이 도입하는 유연한 문화가 로마인의 좋은 부분일 것이다. 타르퀴니우스는 로마 역대 왕들과 달리 상당히 야심적인 인간이었다. 원래부터 상당한 부자였던 것 같은 그는 로마에서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왕으로 선출된 인물로 여겨진다. 선왕 안쿠스의 유언집행인이 된 타르퀴니우스였지만, 조국이었던 에트루리아에서 혼혈인임을 이유로 정치적 지위를 얻지 못한 반동인지 왕이 되기를 강하게 원했던 것 같다. 타르퀴니우스는 민중 앞에서 어떻게 자신이 왕에 어울리는지를 연설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러한 점도 있어 평민회는 그를 차대의 왕으로 하는 자가 대다수였다고 하고, 원로원도 거기에 추종했다. 따라서 로마인과 사비니인이 교대로 배출하고 있던 로마왕에 첫 에트루리아인 왕이 탄생하게 된다.
타르퀴니우스의 내정 전략과 외치
타르퀴니우스는 역대 로마왕과 달리 그 지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자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원로원의 의원 수를 두 배로 늘리는 전략을 취한다. 원로원 의원은 왕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원로원에 임명하여 본인의 지위를 굳건히 하는데에 목적이 있던 것 같다. 로마는 왕과 평민회, 원로원의 3권이 분립하는 정치체제이며, 타르퀴니우스는 평민회와 원로원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본인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다. 내부의 우려가 사라진 그는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로마 역대왕들이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을 로마로 이주시킨 반면, 그는 정복지역을 약탈하는 정책이었다. 이들의 금품을 민중에게 나누어주어 인기를 얻은 면도 있지만, 도시의 대규모 개발도 실시했다. 특히 로마의 대하수도인 '클라카 막시마'의 착공을 한 것으로 로마의 도시로서의 기능은 대폭 향상되었다.
유명한 '포로 로마노'의 정비도 그의 사업이라고 한다. 그는 로마 저지대의 습지를 간척해 로마 시가에 가장 큰 경기장인 '서커스 막시무스' 등, 건축물을 건조하고, 가도의 정비도 실시했다고 전승은 전한다.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에트루리아에서 불러온 기술자가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이 무렵부터 로마는 농경도시에서 대규모 상업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하며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타르퀴니우스는 또 주신인 '유피텔'을 모시는 신전을 건조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에는 개선식을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후 전승 때마다 개선식이 행해졌으며, 후일 개선문이 만들어지게 되어, 퍼레이드를 여러 나라가 실시하게 된다. 현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할 때 퍼레이드를 하지만 그 유래는 타르퀴니우스에서부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그는 야심가였지만 그 야심에 맞는 공적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후세 로마의 기초를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지는 관습조차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매우 큰 것이 있었다. 그의 시대에 도시는 크게 발전하고 군대도 대폭적인 확장을 이룬다. 로마는 가치 있는 도시로 변모해 나가지만, 그것은 새로운 싸움의 불씨를 낳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