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명군 「안쿠스 마르키우스」, 4번째 로마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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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아 수도

로마의 왕정 시대는 200년 정도 계속되는데, 왕은 단 7명밖에 없다. 로마 시대의 왕은 종신제가 특징으로 한 명 한 명의 통치가 길다. 중국의 왕조나 일본의 막부라면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50년간에 20명 이상 황제가 바뀐 로마의 군인황제시대와도 다르다.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당시 로마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이 다툼이 일어나기 어려웠던 것과 세습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우수한 사람을 왕으로 뽑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 왕국 제4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세습이 아니지만 2대째 왕 '누마'의 딸을 어머니에게 둔 사비니족 출신자로 할아버지와 달리 호전적인 행보를 보였다. 아마 본인의 기질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전보다 커진 로마의 상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티아 정복과 수도 사업

안쿠스가 주변 국가에 침략했다는 것보다 주변 국가가 안쿠스를 모욕하고 싸움을 걸어왔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누마의 손자로 사비니족 출신이라는 것으로 안쿠스는 군사적으로 재능이 없는 왕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하지만 예상을 뒤집을 정도로 안쿠스는 강했다. 선왕인 툴루스의 시대에 정비한 군대의 효과가 있었는지, 안쿠스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높았는지, 연전연승에서 마침내 바다에 인접한 항구 마을 '오스티아'를 그 수중에 거두게 된다. 항구를 손에 넣는 것은 꽤 의미가 크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러시아가 절실하게 부동항을 손에 넣고 싶어 했던 것처럼, 항구마을의 존재는 어느 시대도 큰 것이다. 지금까지 로마 왕국이 대규모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은 침략될 만한 가치가 그만큼 없었다는 면도 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북쪽에 '에트루리아'라는 강대한 왕국이 있었고 남쪽에는 그리스인 세력이 있었다. 그리스인은 당시에 지중해를 무대로 한 문명권에서 상당히 강대한 해양 세력이다. 당시 경제가 지중해 무역과 흑해 무역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면도 크다. 기원전 6세기 무렵의 패자는 그리스인이나 페니키아인으로 당대 해상무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민족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스티아의 정복으로 로마는 지중해 세계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파란에의 개막이기도 하다. 로마는 이것을 계기로 대외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나중에 침략 전쟁을 반복하는 로마는 여기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오스티아를 정복함으로 인해 로마는 스스로 소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소금은 바다에서 취할 수 있지만, 바다에 인접한 도시가 없었던 로마에서는 교역에 의해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물과 소금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둘 중 어나 하나라도 없어서는 살 수 없다. 예로부터 바다에 접한 도시가 발전해 온 것과 소금의 존재는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국가에 의한 소금의 전매가 행해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소금의 밀매로 큰 부를 쌓은 사람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던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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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길은 로마에 통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로마는 가도를 매우 세밀하게 정비를 하고 있는데, 그 기념해야 할 제1호인 '비아 살라리아'라는 이름의 가도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소금의 길'이 된다고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는 속담도 있지만 첫걸음은 소금을 로마로 옮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안쿠스가 한 또 다른 중요한 사업이 수도의 정비이다. 로마의 유명한 수도로 '마르키아 수도(아쿠아 마르키아)'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난 로마의 수도 사업을 정비한 것은 안쿠스의 사업이다라고 한다. 본문의 사진은 마르키아 수도교 유적으로 기원전 144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도는 사람이 생활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중세 유럽은 그다지 수도망이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페스트가 만연해, 거리에는 죽은 사람이 넘쳐난 것을 생각해 보면, 위생면에서 수도의 정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쿠스의 이 사업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안쿠스 마르키우스

대내외적으로 성공적으로 로마를 이끌어나간 안쿠스는 로마를 통치한 왕 중에서도 상당한 명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재위기간은 25년으로 다른 왕에 비해 짧지만 그 기간은 로마가 크게 비약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안쿠스가 암군이었다면 로마는 여기서 멸망했을 것이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안쿠스는 모든 능력치가 꽤 상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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