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점령한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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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동고트족의 왕

'플라비우스 테오도리쿠스'(테오도리크)는 454년 훈족에게 점령당한 '동고트족'의 왕 테오데미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곧 동고트족과 '게피다이족' 등 게르만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네다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훈족이 대패하고, 훈족의 왕 '엘락'이 전사하면서, 훈족은 몰락하고 다시 게르만족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는 동고트족이 '판노니아'에 이주하는 것을 허락하고 식량과 이주 비용을 지원하였는데, 대신 동고트족은 '포이데라티'로 동로마 제국에 군사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다음 황제인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레오'(레오 1세)가 지원금의 지급을 중단하자, 동고트족은 '일리리쿰'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하였고, 이에 레오 1세는 다시 동고트족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하였다. 대신 동고트왕의 아들을 일종의 일질로서 '콘스탄티노플'에 머무르게 했는데, 그게 바로 테오도리크 이다. 461년 테오도리크는 7세의 나이때부터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식 생활하면서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 이후 황제가 된 '플라비우스 제노'의 눈에 들어 483년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동로마 군단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집정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485년에 다시 동고트족의 거주지로 복귀하였으며, 488년에 동고트족의 왕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왕

동고트족은 동로마 제국 내에서 생활하면서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는데, 동고트족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영토와 물자가 부족해지자 자주 주변 지역을 약탈하였고, 다른 게르만부족과도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켰다. 동고트족의 왕이 된 테오도리크는 제노에게 이주할 영토를 요구하였고, 이에 제노는 멸망한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이탈리아를 차지한 '오도아케르'를 처단하면, 그의 영토를 동고트족이 차지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히는 오도아케르도, 동로마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동고트족도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아예 한번에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489년 테오도리크는 동고트족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갔다. 테오도리크는 서고트족의 지원을 받아 이따른 전투에서 오도아케르의 군대를 물리쳤지만, 오도아케르가 라벤나에 농성하면서 전쟁이 길어지게 되었다. 결국 전투는 3년 넘게 지속되었고, 라벤나의 주교의 주선으로 테오도리크와 오도아케르는 평화협상을 시작하였다. 493년 협상 끝에 테오도리크와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를 공동 통치하기로 합의하였지만, 테오도리크는 라벤나에 입성한 10일 후에 열린 연합 축하 연회에서 오도아케르와 그의 가족과 측근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이로서 테오도리크는 오도아케르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이탈리아와 '달마티아', 시칠리아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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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리크의 통치

테오도리크는 명목상 동로마 제국 황제의 신하였지만, 실제로는 영향권 안에 있는 지역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도아케르와 달리 로마인의 보호자를 자처하였으며, 로마인들이 로마의 법과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였고, 동고트족은 그들과 분리된 지역에 머물면서 자신들의 법과 관습에 따라 살았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하여 이교에 대한 배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과 달리 테오도리크는 이단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별로 지지받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도 테오도리크는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등 결혼 동맹을 맺었고, 자신의 딸들은 '서고트족'과 '반달족', '부르군트족'의 왕들과 결혼시켰다. 테오도리크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클로비스 1세의 야심을 막지는 못하였고, 이로 인해 몇번의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하였다. 507년에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2세'가 죽자, 어린 손자를 대신해서 서고트족의 섭정이되어, 사실상 두 고트족을 전부 통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좋은 결과만 내지는 못했는데, 523년에 클로비스 1세의 아들들이 부르군트 왕국에 침입하여, 부르군트 왕국의 왕과 왕비, 왕자를 모두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또 반달족의 왕이 죽고 새롭게 즉위한 왕이 종교적으로 억압하자 전 왕비를 앞세워 반란이 일어났는데, 반란군은 진압당했으며, 전 왕비는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런데 부르군트 왕국의 왕비와 왕자는 테오도리크의 딸과 손자였으며, 반달족의 왕비도 테오도리크의 딸이었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동로마와 내통한 혐의로 여러 부하들을 처형하였으며, 원로원 의원들을 모아놓고 몰살하는 등 사건을 일으켜 로마인들과의 사이가 나빠졌다. 결국 테오도리크는 반달족 정벌을 하기위한 준비를 하다가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져 526년에 사망하였다. 테오도리크 사후 손자인 '아탈라릭'이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10살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딸인 '아말라순타'가 섭정으로 통치하였다. 테오도리크는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없어진 서방에서 조정자로서 여러 게르만 부족들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가 사망하고 나서 급격하게 세가 기울었고, 이후 동고트 왕국은 동로마 제국과 전쟁으로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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