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47대 황제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요비아누스」
- 역사
- 2023. 4. 24.
예정에 없던 황제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요비아누스'는 332년경에 '신기두눔'(현재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바로니아누스'인데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근위대장이었다고 한다. 요비아누스도 아버지를 따라 근위대에서 복무했으며,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황제의 근위대장이 되었다. 363년 율리아누스가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단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는데, 이때 요비아누스도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율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은 한때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까지 쳐들어갔으나 심한 저항에 부딫혔고, 이에 다시 로마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율리아누스가 적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적지에서 황제를 잃은 로마 군단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급히 새 황제를 뽑으려 하였는데, 처음에는 '살루스트'를 황제로 권하였으나 그가 계속하여 거절하였기 때문에, 요비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요비아누스는 별다른 업적도 없고,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황제로 선출된 것을 단순히 실수로 간주하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군단의 병사들이 율리아누스의 이름을 외쳤는데, 이것을 요비아누스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말도 있다. 로마 제국은 전쟁 중에 황제가 사망하면 즉시 황제를 새로 선출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되었다고는 하나 최고 지휘관들이 생존에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황제에 대한 집착은 다소 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이번에도 역시 로마 군단에 의해 로마의 근위대장이 새로운 황제로 선출되었다. 요비아누스는 안전하게 로마로 퇴각하고, 빠르게 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서 정식 황제로서 정통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그는 페르시아와 평화협상을 시도하였다. 결과적으로 평화협상은 성공하여 로마 군단은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으나, 그 대가는 사실상 원정에서 로마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요비아누스는 티그리스 강 동쪽의 모든 로마의 영토를 페르시아에 넘겨주었고, 사실상 로마에 종속되어있던 '아르메니아' 왕국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서 중립국 위치를 지키도록 보장해야 했다.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의 동방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기독교인 황제
기독교인 황제였던 요비아누스는 전 황제인 율리아누스에 의해 시행되었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제도를 폐지하였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우대정책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와 마술을 믿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여 사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기독교 우대 정책으로 인해 로마 제국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비아누스의 통치는 약 8개월 밖에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요비아누스는 귀환 도중 '다다스타나'라는 지역에서 숙영하고 있을때, 자신의 천막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독버섯으로 인한 중독사, 혹은 천막 안에 피워놓은 불 때문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너무 짧은 통치기간 안에 황제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후계자 또한 없었고, 이에 다시 고위 관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여 '플라비우스 발렌티니아누스'가 새 황제로 추대되었다. 비록 요비아누스는 짧은 통치기간으로 인해 별다른 업적은 없지만, 그가 행한 정책들은 전 유럽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