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건국자 「오스만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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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튀르크족의 오스만

'오스만 1세'는 1258년경 아나톨리아 반도의 비티니아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할아버지인 '쉴레이만 샤'는 본래 중앙아시아 지역의 흔히 '돌궐'이라고 부르는 튀르크계 부족의 족장으로, 당시 위세를 떨쳤던 '칭기츠 칸'의 몽골족의 압박으로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이들은 이 지역의 튀르크계 국가였던 '룸 술탄국'의 용병으로 활동한 것 같은데, 이후 오스만 1세의 아버지인 '에르투룰' 때부터 완전히 정착하여 룸 술탄국의 신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스만 1세가 태어날 무렵부터 이미 룸 술탄국도 몽골의 강력한 영향력에 쇠퇴해가고 있었으며, 지방의 영주들이 독립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에르투룰도 세력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은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몽골족의 압박을 피해 이주해 오는 튀르크계 부족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281년 에르투룰이 사망하고 오스만 1세가 세력을 이어받았는데, 그는 이 세력을 규합하고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성전'을 선포하는 등의 노력을 계승하여, 1299년에 마침내 스스로 독립국의 군주임을 선포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오스만 베이국

그러나 사실 오스만 제국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스만 왕조에 대한 당시의 사료가 부족하고, 전해져 내려온 내용도 진실과 설화가 혼재되어 있어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오스만 1세의 아버지인 에르투룰의 경우는 오스만 1세가 발행한 주화에서 그 이름을 확인 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인 쉴레이만 샤의 경우에는 그 진위를 전혀 알 수 없다. 오스만 1세의 이름도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에 의하면 본래 튀르크식 이름인 '아트만'으로, 후에 후손들에 의해 아랍식의 오스만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건국년도 또한 불명확하여 1299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때 오스만 1세는 '베이'(영주, 장군)의 지위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일 세력의 우두머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스만 1세의 세력은 금방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이들의 세력은 계속 불어나서 1301년에는 동로마 제국의 '니케아'에 까지 닿아 제국의 위협이 되었다. 이때 동로마 제국에서 파견한 군대와 오스만 1세의 군대가 맞붙었는데, 1302년 '바페오스 전투'에서 승리한 공으로 룸 술탄국이 오스만 1세를 정식으로 베이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오스만 1세의 세력만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대도시를 함락시킬 정도의 역량을 갖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의 승리로 많은 튀르크계 부족들의 주목을 받게되었고, 오스만 1세의 세력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 비티니아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 안에 있었지만, 실제로 쇠퇴해가는 동로마 제국에는 이미 관리할 역량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오스만 1세는 비티니아 전역을 손에 넣기 위해서 여러 마을과 거점을 공략하였는데, 1308년경에는 마르마라해에 있는 임랄리 섬을 공략하였고, 1316년에는 울루산 일대의 요새들을 장악하여, 비티니아의 도시 중 하나인 '부르사'를 완전히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오스만 1세는 1317년부터 부르사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본래 유목민족인 튀르크족들은 군대가 기병 중심으로 구성되있었으며, 성벽으로 보호받는 도시를 공격하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금방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외적의 침입과 제국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벅찬 상태였기 때문에, 1326년 아무런 외부의 도움을 얻지 못한 부르사는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이 '부르사 공방전'은 오스만 1세의 아들인 '오르한'이 주도하였으며, 부르사가 함락할즈음에 오스만 1세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확히 언제 사망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바 없다. 오스만 베이국은 점령한 부르사를 새 수도로 삼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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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젊은 시절 오스만 1세는 이슬람 지도자였던 '에데바리'의 초대를 받은 적이있는데, 거기서 잠을 자던 오스만 1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달이 에데바리의 가슴에서 떠올라 자신의 가슴으로 졌는데, 그 자리에서 큰 나무가 자라나서 하늘을 뒤덮었으며, 뿌리에서는 네 갈래의 큰 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에데바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꿈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딸을 오스만 1세와 결혼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진위여부나, 오스만 1세가 정말 에데바리의 딸과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개 유목민 집단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던 오스만 1세는 정식으로 베이국의 군주가 되었다. 나아가 당시 제대로 된 법과 제도도 없었던 오스만 베이국은 후에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오스만 제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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