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쇠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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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1737년 런던 남부의 푸트니에서 태어났다. 그는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한때 남해회사 사건에 연루되어 상당량의 재산을 몰수당하였지만, 이후에 복권되면서 다시 재산을 되찾았다고 한다. 기번은 6명이 형제가 있었지만 모두 영유아 시기에 사망하였는데, 기번도 어렸을때부터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는 간호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고 모친에게 냉 대당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어머니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후 고모인 캐서린 포튼의 하숙집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적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던 것 같은데, 1752년 15세 때 옥스포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기번의 높은 지적 수준 때문에 교수들도 가르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이때 기번은 대학에서 종교서적을 많이 접하였는데, 결국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아버지와 종교적으로 갈등을 빚게 되었고, 기번을 스위스 로잔의 칼뱅파 목사의 집으로 보내버렸다. 당시 영국에서는 가톨릭이 소수로 사회에서도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번은 다시 개신교로 개종하였지만, 이러한 갈등을 겪게 되었기 때문인지 기독교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후 기번은 영국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이 시기에 스위스의 역사에 대한 저작물을 쓴 것 같지만 출판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때 군생활을 하기도 하였고, 1764년에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때 로마의 유적들을 보고 로마사의 연구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번은 영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1770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 영국에 정착하였고, 1774년부터는 8년간 하원의원으로 지내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 쇠망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기번은 본격적으로 집필활동을 시작한 것 같은데, 1776년부터 '로마 제국 쇠망사'의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1787년까지 장장 12년에 걸쳐 집필을 완료하였고, 1788년에 출판을 완료하였다. 로마 제국 쇠망사는 로마 제국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부터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를 총 6권에 걸쳐 다루고 있다. 기번은 특히 로마 제국의 오현제 시대를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생각하였는데, '네르바' 황제부터 '아우렐리우스' 황제까지의 시대를 '인류가 보낸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런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이후의 역사학 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 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책을 읽은 나폴레옹이 제국의 야망을 갖게 되었으며,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몇번에 걸쳐 이 책을 읽었고, 후에 회고록을 집필하는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 쇠망사는 당대의 역사학자인 기번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당시에 접할 수 있었던 사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학자들이 연구하는 로마사와는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기번이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로 평가한 오현제의 통치시대에는 이미 로마 제국의 쇠퇴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어찌되었든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이후에 추가적인 집필 활동을 하지 않았고, 1793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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