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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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렌즈 2개를 조합하여 보는 실험은 매우 간단합니다. 때문에 2개의 렌즈를 이용하여 사물을 확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13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였던 로저 베이컨의 저서 '대저작 '(Opus Majus)에는 렌즈 2개를 사용하여 먼 것을 가까이 보는 것과 작은 것을 크게 보는 것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608년에는 네덜란드의 안경 기술자였던 한스 리퍼세이가 볼록 렌즈(대물 렌즈)와 오목 렌즈(접안 렌즈)를 관에 끼운 망원경을 만들어 네덜란드 정부에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기술자였던 야코프 메티우스도 리퍼세이보다 약간 늦게 같은 구조의 망원경으로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2명의 특허는 신청이 거의 동시였던 것이기도 했지만, 망원경 자체가 새로운 발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허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리퍼세이의 망원경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보상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리퍼세이는 그의 실용적인 망원경의 제조 및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리퍼세이가 망원경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1590년경에 자카리아스 얀센이라는 네덜란드 안경제작자가 망원경과 현미경을 제작하였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리퍼세이가 얀센의 물건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얀센도 이미 알려져있는 망원경의 원리를 이용하였을 뿐이고, 1580년대 말에 이탈리아의 박물학자가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망원경을 누가 처음 발명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17세기에 들어 망원경이 매우 편리한 도구로서 유럽에 순식간에 퍼진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갈릴레오가 개량한 망원경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하여 독자적으로 천체 망원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1609년에 천체 관측을 실시해, 목성이나 토성의 위성, 달 표면의 크레이터, 태양의 흑점의 움직임, 금성의 위상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관찰의 결과로부터 당시 주류였던 천동설을 부정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습니다. 그리하여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조합한 망원경을 네덜란드식 망원경 또는 갈릴레오식 망원경 이라고 합니다. 네덜란드식 망원경은 볼록 렌즈를(대물 렌즈)로하고 수렴하는 광선을 오목 렌즈(접안 렌즈)의 허상으로 봅니다. 확대된 것을 정립상으로서 보는 광학기구로서는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지금도 간단한 지상용 망원경이나 오페라 글라스로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율을 높이면 시야가 매우 좁아지는 단점이 있으며 천체 관측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케플러가 고안한 망원경

1611년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네덜란드식 망원경의 단점을 해결하는 망원경으로 볼록 렌즈만 2개를 조합한 망원경을 고안했습니다. 이 망원경을 케플러식 망원경이라고 합니다. 케플러식 망원경은 볼록 렌즈 A(대물 렌즈)로 만든 실상을 볼록 렌즈 B(접안 렌즈)의 허상으로 봅니다. 확대된 것을 도립상으로 봅니다만, 시야를 넓게 유지하면서 배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 천체 관측에서는 도립상으로 보아도 문제 없기 때문에, 천체 망원경으로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지상용 망원경에서는 내부에 프리즘을 넣어 정립상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는데, 이 원리도 케플러가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케플러가 직접 망원경을 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1611년에 케플러가 발표한 것은 이론뿐이었습니다. 그 후 1645년에 오스트리아의 실레(Anton Maria Schyrleus)에 의해, 망원경의 구조나 응용이 자세하게 정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렌즈를 사용한 망원경에는 배율을 올리면 물체의 색을 올바르게 재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키면 무지개 같은 색의 띠가 생기는데 렌즈에도 같은 기능이 있기 때문에 물체에 색을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작 뉴턴은 1618년에 볼록 렌즈와 오목 거울을 사용한 반사 망원경을 생각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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