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 후기의 정치형태 「도미나투스」
- 역사
- 2023. 4. 13.
첫번째 로마 시민에서 지배자로
로마 공화정은 왕이나 참주같은 권력을 독점하고, 국가를 마음대로 다스리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매우 경계하였다. 이는 비단 로마 통치의 한부분을 담당하던 원로원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 자체의 거부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표면적으로는 '첫번째 로마 시민'(Princeps Civitatis)으로서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황제에 의한 통치가 계속되면서, 점차 시민들은 황제들을 지배자를 뜻하는 '도미누스'(Dominus)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인식개혁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긴 했지만, 황제들은 계속해서 기존의 정치체제를 답습하였고, '원수정'(Principatus)의 형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소위 '3세기의 위기'라고도 하는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가 계속되면서 그러한 정치형태는 완전히 무너졌다. 원로원이 명목상 존재하는 황제의 들러리가 된지는 오래되었고, 황제조차 사실상 그때그때 힘 있는 근위대나, 군단에 의해 마음대로 세워졌다. 로마인은 커녕, 신분과 출신을 막론하였으며, 심지어 황제 자리를 돈받고 팔기도 하였다. 넓어진 로마의 영토는 끊임없이 이민족의 위협에 시달렸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있는 속주의 총독이나 군단의 지휘관들은 상황에따라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황제의 잠재적 경쟁자들이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속주 개편
284년 '페르시아' 원정에서 로마로 귀환하고 있던 군단에서 황제가 암살되자, 그의 경호대장이었던 '디오클레스'가 군단 병사들의 추대로 황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가 되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로 개명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두명의 황제가 통치하도록하였고, 다시 황제아래 부제를 한명씩 둠으로써 4명의 통치자가 제국을 통치하는 사두정치체제로 다스리게 하였다. 이렇게 통치자들이 직접 제국 영토를 관할 할 수 있게 만든 후에 속주 개편을 시작하였는데, 기존의 속주들을 100여개로 작게 분할하여 속주 총독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였다. 또 원로원의 입법권을 제한하여, 사실상 원로원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통치자가 4명이긴 하였으나 사실상 그외의 권력을 배제하였고, 황제 중심으로 권력을 공고히하고, 그 밑에 관료들이 실무를 행하게 되면서,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전제정
일련의 이유로 인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집권기부터 로마 제국의 정치형태를 '전제정'(Dominatus)라고 부른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의 임기를 20년으로 하고, 임기가 끝나면 부제에게 승계하고 물러나야한다고 정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가 황제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황제의 직위에 임기를 두거나, 능력에 따라 황제와 부제가 임명되는 등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완전한 전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사두체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권력 승계체제에 대한 불만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윽고 각 황제와 부제들이 얽힌 내란이 몇차례 지속되었고,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다시 유일한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다. 이로서 사두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콘스탄티누스 1세의 자식들이 권력을 계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