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서의 자세 1789년 프랑스에서는 당시 소집된 '삼부회'가 귀족 및 성직자들로 구성된 기득권층과 평민들 사이의 불화로 인해 파행되면서 민중 혁명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 봤을 때 혁명은 생각보다 상당히 온건하게 진행되었는데, 왕인 '루이 16세' 또한 개혁에 대해 어느 정도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고, 그가 자신의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대결하는 것을 피하였기 때문에 혁명 세력은 적은 희생으로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또 혁명 세력이 구성한 통치 기구인 '국민의회'에는 개혁적인 귀족 세력들도 참가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드 미라보'같은 왕을 유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