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스물한번째 군주 「무스타파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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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대 튀르크 전쟁

'무스타파 2세'는 1664년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4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시기에도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과 계속해서 충돌하였는데, 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와 '베네치아 공화국, '폴란트-리투아니아', '루스 차르국' 등과 헝가리, '달마티아',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그동안 오스만 제국은 여러지역에서 각각의 적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며 활발한 정복사업을 이어나갔는데, 1683년 '제2차 빈 공방전'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수세로 몰리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신성 동맹'은 패퇴하는 오스만군을 추격하면서 맹공격을 가했고, 루스 차르국을 포함하여 여러 세력이 전후 이익을 얻기 위해 이 대열에 참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 전역을 오스트리아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베네치아에게 빼앗겼다. 결국 1687년 메흐메트 4세는 '제2차 모하치 전투'의 패배의 책임을 지는 형태로 폐위되었고, 동생인 '쉴레이만 2세'가 다음 술탄으로 즉위하게 된다. 쉴레이만 2세는 전황을 뒤집기위해 여러방면에서 노력하였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하였고, 그 와중에 병에 걸려서 거의 2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결국 1691년에 사망하면서 다시 동생인 '아흐메트 2세'가 술탄에 즉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흐메트 2세의 통치하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가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일어난 '슬렌카멘 전투'에서 재상인 사령관 '쾨프륄뤼 파질 무스타파 파샤'가 전사할 정도로 대패하였다. 아흐메트 2세는 집권 4년만인 1695년에 사망하였는데, 계속되는 오스만 제국의 위기로 인해 심적인 부담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대 튀르크 전쟁'이 한창이었던 이때 다음 술탄으로 무스타파 2세가 즉위하게 되었다. 무스타파 2세는 1696년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여, 두차례 전투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1697년 '젠타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더 이상 전쟁을 이끌어갈 여력을 잃게 되었다. 결국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을 체결하면서, 헝가리와 '포돌리아', 달마티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조프 등을 각국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게 된다. 이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은 많은 영토를 잃게되었지만, 대신 '크림 칸국'과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에 대한 권리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에디르네 사건

사실상 전쟁에서 완패한 무스타파 2세였지만, 전임 술탄들과 다르게 책임지고 폐위되지는 않았다. 1701년 무스타파 2세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형태로 '에디르네'로 이동하였으며, 대신 세이훌리슬람 페이줄라 에펜디(Seyhulislam Feyzullah Efendi)가 콘스탄티니예에서 실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약화된 술탄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였는데,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티마르'를 기반으로 하는 '사파히'를 강화하여, 술탄의 지위에 위협이 되는 '예니체리'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로 인해 전쟁 패배의 불만과 혼란이 완전히 잠재워진 것은 아니었다. 1703년 오스만 제국은 인접국가인 '이메레티 왕국'의 내전에 간섭할 목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군인들에 대한 급료가 체불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200명의 예니체리들이 콘스탄티니예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곧 전쟁에서 패배한 무스타파 2세에 대한 불만, 명분없이 술탄의 권한을 휘두르는 페이줄라 에펜디에 대한 불만 등 여러 불만을 가진 계층을 자극하였고, 이에 따라 일부 관료들과 학자들, 민간인과 군인들까지 모여 약 6만에 달하는 대규모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콘스탄티니예를 점거하고, 에디르네로 사람을 보내 페이줄라 에펜디를 해임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페이줄라 에펜디가 이들은 잡아 투옥하였다. 결국 군중들은 에디르네까지 행진을 시작하였고, 무스타파 2세는 부랴부랴 페이줄라 에펜디를 해임하였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여기에 에디르네의 수비병들도 동조하였기 때문에, 일단의 반란군은 에디르네에 무혈 입성할 수 있었고, 결과 페이줄라 에펜디는 살해되었지만, 무스타파 2세는 동생인 '아흐메트 3세'에게 술탄의 직위를 넘겨주고 폐위되는 것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스타파 2세는 그 후 오래 살지 못하고, 이 해의 12월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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